[이사람]3급 뇌성마비 장애인 정훈기

 서울대 출신의 뇌성마비 장애인이 비장애인들과 같은 조건에서 대기업 공채에 합격해 화제가 되고 있다.

 선천성 뇌성마비 중증 장애를 딛고 서울대에 들어간 뒤 졸업 5년 만에 지난 1월 1일부로 60대1의 경쟁률을 뚫고 SK그룹 계열 SI회사인 SK C&C에 입사한 정훈기씨(29)가 바로 그 주인공. 그동안 소아마비 장애인이 대기업에 입사한 일은 있었지만 양손과 오른쪽 다리가 불편한 3급 뇌성마비 장애인으론 정씨가 처음이다.

 학창시절 부자유스런 몸으로 친구들의 놀림을 겪기도 했던 정씨는 곱은 손에 볼펜을 끼우며 책과 씨름한 끝에 94년 서울대 임산공학과에 입학해 당시 화제를 불러 일으켰었다.

 지난 98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할 때까지 ‘뇌성마비 최초의 서울대생’으로 유명세를 치른 그에게도 취업관문은 바늘구멍이었다. 졸업직후 자그만 벤처회사에서 수습 6개월 동안 업무보조를 할 수 있었을 뿐, 그를 정식으로 채용하려는 곳은 없었다.

 그러자 그는 과감하게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지난 99년 일본재활협회에서 실시하는 ‘더스킨 아시아태평양 장애인 리더 육성사업’에 1년간 한국 대표로 참가했던 그는 히로카네 겐시가 쓴 ‘인생을 변화시키는 작은 원칙들’을 우리말로 번역해 출간한 것을 계기로 보통 샐러리맨의 삶을 꿈꾸게 된다.

 ‘20대에 대기업 면접까지 간 것만으로도 대성공’이라고 생각할 만큼 어려운 도전이었지만, 그는 지난달 SK C&C공채에 합격함으로써 그 꿈을 이뤄냈다. 그는 SK 입사전형 과정에서 답안지 마킹과 별도 고사장 서비스를 요청했을 뿐 어떤 특혜나 차별도 받지 않았다.

 “합격 소식을 듣고서야 비로소 성인식을 치른 기분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제게 장애를 극복한 인간승리라고 하지만, 그건 사회가 만든 평범한 기준들을 제가 용케 잘 넘어간 것뿐이죠.”

 지난 2일부터 시작된 신입사원 연수를 받고 있는 정씨의 새로운 꿈은 ‘핸디캡’이 있어도 불편하지 않은 세상을 만드는 IT엔지니어다.

 “2019년쯤에는 우리나라도 고령사회가 된다고 하네요. 저도 한 120살까지 살 생각인데, 휠체어를 타고 귀가 어두워지고 눈이 침침해져도 불편없이 IT의 혜택을 누릴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제 몫을 다하고 싶습니다.”

 <온기홍기자 khohn@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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