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해석 숭실대학교 교수 ohs0909@yahoo.com
계미년 새해가 밝았다. 올해는 양띠 해로 양처럼 순박하고 따뜻한 느낌을 주는 한 해가 되기를 기원한다. 새해가 되면 누구나 새로운 각오를 다지게 마련이다. ‘작심삼일’이라는 말처럼 굳게 각오한 일을 사흘을 넘기지 못한 해가 부지기수일지라도 새해 초 각오 하나쯤 새겨보는 것이 어느새 우리네 연례행사가 되고 말았다.
각오보다 한층 고매한 새해 출발로 가훈을 짓고 액자에 담아 거실에 걸어보는 것도 세상을 품위있게 살려고 노력하는 분들에게서 볼 수 있는 의미있는 인생사 중 하나일 것이다.
특히 가훈으로 받들어 모실 만한 빛나는 글귀는 너무 많다. 순수한 우리말로 된 가훈도 좋지만 중년세대에서는 한자로 된 가훈을 선호하는 경향이 높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하늘의 명을 기다리라’는 뜻을 담은 가훈으로 선호도가 꽤 높은 문구 중 하나다. 새기고 또 새겨봐도 가훈으로서 훌륭한 의미를 담고 있다. 사람이 할 수 있는 근면, 성실, 노력, 학습, 창의, 협력, 절약, 이해, 포용, 위기관리를 다한 후 더 바랄 것이 있다면 ‘하늘의 뜻’밖에는 없지 않겠는가.
기업가 중에는 이 문구를 소중하게 실천하는 분들이 많다고 듣고 있다. 반면 지난 몇 년을 돌이켜 보면, 우리 벤처 기업가들 가운데 아쉽게도 진의가 왜곡된 벤처 정신을 ‘정도’인 것처럼 믿고 실천하다가 궤도를 벗어나 버린 사람들도 적지 않다.
바로 ‘벤처 CEO고발, 무늬만 벤처, 벤처 게이트, 코스닥 주가 조작, 벤처 윤리강령 제정’이란 말은 탈선한 벤처기업가들의 비행을 증명해 주는 증거인 셈이다. 그들이 혹시 또 다른 의미가 담긴 가훈을 받들고 있지나 않았는지 궁금하다. 진전사대검명(盡錢事待檢命), 즉 ‘돈 되는 일은 닥치는 대로 다하고 검찰의 소환명령을 기다리라’는 가훈 말이다.
5년 전 DJ정부가 출범할 때만 해도 IMF 극복방안의 한 축으로서 벤처 육성정책은 국민의 절대적 호응을 받으며 뿌리를 내렸고 결국 이는 초유의 외환위기와 경제 불황을 치유하는 데 지대한 공헌을 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특히 몇몇 벤처기업들이 잇달아 기술력있는 제품들을 내놓고 이들 기업의 거래실적과 주가가 거래소 상장 업체를 추월하면서 코스닥 시장이 형성되는 등 잠시나마 벤처 전성기를 이루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빛나는 공과 뒤에는 결코 있어서는 안되며 벤처 역사 최대의 오점인 머니게임이라는 빗나간 공식이 도사리고 있었다. 결국 이 때문에 새정부 출범을 2개월도 채 남기지 않은 지금, 벤처업계는 5년 전 이맘 때와는 전혀 다른 매우 냉랭한 분위기에 휩싸여 있다. 게다가 대통령직 인수위가 내놓은 주요 정책에서 벤처산업은 여전히 뒷전 신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아쉽게도 그 원인은 벤처업계 내부에 있다고 본다. 기업가들이 정부에 바라는 바 가운데 그 첫번째가 제발 정부가 기업에 간섭하지 말아 달라는 주문이다. 하지만 정부의 규제속을 잘 살펴보면 분명 지긋지긋한 채찍과 입맛 돋우는 당근이 공존하고 있다. 어쩌면 우리 벤처기업들이 현 정부에서 기대 이상의 당근을 얻었을는지 모른다. 그렇다면 채찍이라는 규제를 싫어하듯 이제부터는 당근이라는 지원에 의존할 생각도 버려야 한다.
가훈의 뜻을 지켜나가는 일처럼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벤처에 쏟아 다시 한번 5년 전의 벤처 불씨를 살려내보자. 지난 국민의 정부 시절을 벤처기업 태동기라고 보면 새 정부를 벤처기업 중흥기로 명명할 수 있다. 그렇게 또 새로운 5년을 ‘진인사대천명’하면 우리 벤처의 미래는 밝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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