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보사피엔스 이야기](50)전화기 속의 로봇

 창피한 고백부터 해야겠다. 나는 휴대폰 벨소리를 바꾸거나 문자메시지를 보내본 적이 없다.

 발신자번호도 확인하지 않는다. 음성통화 이외의 목적으로 휴대폰을 쓰지 않는 구세대인 셈이다. 하루가 다르게 바뀌는 최신 휴대폰의 기능을 숙지하기도 귀찮거니와 결국 통신업자들 배불리는 부가서비스에 대한 의식적 반감 때문이다.

 이런 상황이니 요즘 쏟아지는 첨단 휴대폰의 기술적 진보는 그저 놀랍고도 경이로울 따름이다. ‘전화받으세요’란 앳된 목소리가 휴대폰 벨소리란 사실을 알았을 때, 내 얼굴이 휴대폰 카메라에 찍힌다는 사실 앞에 느꼈던 문화적 충격은 아직도 생생하다.

 요즘 젊은이들은 인류의 경이로운 발명품인 휴대폰을 너무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그들에게 휴대폰은 이미 신체의 일부이자 심심할 때 놀아줄 사이버 애완동물로 진화하는 중이다.

 이 휴대폰의 놀라운 진화는 21세기 로봇산업의 향방에도 매우 중요한 변수로 떠오를 전망이다. IT세상의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블랙홀. 휴대폰 속으로 일부 로봇시장까지 휩쓸릴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세계 10억 인구의 필수품이 돼버린 휴대폰은 누구도 예상치 못한 속도로 진보하고 있다. 휴대폰은 그 얇은 본체 속에 무선PDA, MP3플레이어, 녹음기, 디지털카메라, GPS항법장치를 넣더니 이제는 고화질TV와 캠코더, PC까지 통째로 집어삼킬 기세다. 이는 반도체를 능가하는 황금시장으로 성장한 휴대폰사업에 몰려든 다국적 기업들의 거대자본과 기술력이 빚어낸 기적이다.

 앞으로 휴대폰이 TV, 영화 등 세상의 모든 콘텐츠를 수용한 이후에는 어떤 형태로 진화할까. 아마도 휴대폰에 독자적인 기동성을 부여한 일종의 로봇형태로 발전할 것이다. 이런 상상을 해보자. 현재 시판중인 카메라폰에 전동바퀴가 달린 모바일 크래들을 결합시키면 주인이 없어도 원격조정으로 집안을 돌아다니며 방범활동을 할 수 있다. 휴대폰은 가장 저렴하고 실용적인 로봇플랫폼으로 엄청난 잠재력을 갖고 있다. 로봇왕국 일본에서는 벌써 휴대폰기반의 가정용 보안로봇을 상용화한 바 있다.

 전화기 속의 로봇세상은 곳곳에서 조짐이 보인다. 자동으로 안테나가 튀어나오고 폴더까지 여닫는 휴대폰은 이미 구식이다. 한 벤처기업은 배터리가 떨어지면 콘센트를 저절로 찾아가는 휴대폰 이송장치를 구상중이다. 휴대폰사업에 지금과 같은 대규모 기술투자가 지속된다면 10년 뒤에 두발로 걷거나 하늘을 나는 무선전화기가 등장한 데도 놀랄 일이 못된다. 결국 휴대폰에 로봇기능이 결합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언젠가는 ‘애니봇’이란 국산 휴대폰기반 로봇제품이 세계시장을 휩쓸지도 모를 일이다. 나는 향후 휴대폰업체가 차세대 로봇시장에 새로운 돌파구를 열 것이라는 가능성에 한 표를 던지겠다. 휴대폰에 발이 달려 담배까지 사온다면 친구들이 부러워하지 않겠는가.

 bailh@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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