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특집-기업의 혈류를 뚫어라]벤처육성 선결과제는

 ‘코스닥 대란설’이 테헤란밸리를 강타하고 있다. 수많은 근거 들이 ‘대란설’의 존재를 뒷받침한다. 불과 2년 전 대두됐던 ‘2000년 10월 벤처 대란설’과는 사뭇 무게가 다르다. 존재감이 더욱 강한 것은 이미 ‘위기’가 눈앞에 펼쳐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지난해 10월에만 4개의 코스닥 등록기업이 최종부도로 퇴출을 경험한 데 이어 1조3000억원대의 허위 자본금 납입 사건과 알에프로직의 납품사기 사건이 줄이어 터지면서 ‘대란설’은 어느 때보다 힘이 실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코스닥시장 침체로 돈줄이 막히면서 코스닥 등록기업들이 전반적으로 자금난을 겪고 있다는 것도 ‘대란설’을 뒷받침하는 또 다른 요소다.

 코스닥 기업들이 지난해 증권시장을 통해 조달한 자금 규모는 모두 3조8621억원이다. 이는 지난 2001년 5조8655억원에 비해 34%나 감소한 것이다. 유상증자, 전환사채(CB) 발행 등 유통시장을 통한 자금조달 규모는 2조7400여억원으로 지난 2001년보다 40%나 줄어들었다. 유상증자 등의 건수도 273건으로 지난 2001년 445건에 비해 급감했다.

 기업공개(IPO)를 통한 자금조달 금액도 지난 2001년에 비해 15% 감소한 1조1200여억원이었다.

 그러나 이 수치는 자금조달 능력이나 유동성이 양호한 일반 대기업들까지 포함한 것이다. 결국 일반 벤처기업들의 실제 자금 사정은 이보다 더 악화됐다는 것이 일반적인 시각이다.

 이처럼 증시를 통한 자금조달이 크게 위축된 것은 IT 경기위축으로 주가가 전반적으로 크게 하락한데다 부실기업 퇴출 등과 맞물려 등록심사 통과도 한층 까다로워졌기 때문이다.

 신규 자금 유입의 급감은 지난 99년 이후 등록한 기업들이 공모나 유상증자 등을 통해 쌓아둔 현금 유동성이 바닥을 드러내면서 그 심각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 대부분의 수익을 코스닥에 의존해온 벤처캐피털들도 어려움은 마찬가지다.

 코스닥 등록이 갈수록 어려워지는 가운데 등록되더라도 벤처캐피털이 충분한 수익을 올리기에는 한계가 있으며 심지어 원금이 손실 되는 경우도 있다.

 펀드 결성도 급감, 중소형 창투사들이 운용하는 자금의 규모도 2년 전보다 30% 이상 줄었다. 창투사의 한 심사역은 “200억원 내외 펀드를 운용하는 회사들 은 이제 버티기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며 “지난 98년 이후 결성된 펀드들의 만기가 서서히 돌아오고 있다는 점도 우려감을 더한다”고 말했다. 벤처캐피털 자금마저 선순환 고리가 끊어진 것이다.

 이에 따라 코스닥 등록을 앞둔 업체들에까지 그 멍에가 씌워지고 있다.

 한 교육 벤처업체의 K 사장은 “창업투자 열풍이 사라진 것은 분명한 사실”이라며 “실적을 기반으로 충분한 자금을 유치하는 몇몇 업체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자금난에 시달리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최대주주의 가지급금 문제와 함께 가장납입, 납품사기, 최종부도 등이 사건이 연이어 터지면서 코스닥 시장에 대한 투자심리가 위축된 것도 자금난에 한 몫하고 있다.

 한 코스닥등록 보안업체 권모 대표는 “가공매출 사건 등이 현실화되는 가운데 코스닥 몇몇 업체들이 연루돼 있다는 사실이 코스닥시장에 대한 투자 심리를 위축시키고 있다”며 “투자주체들도 코스닥에 대해서는 한 발 물러선 태도를 보이고 있어 자금 구하기는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같은 투자심리 위축과 자금 경색의 근본적인 원인을 단순히 최대주주의 전횡이나 사기사건에서 찾을 수는 없다고 시장관계자들은 지적한다.

 시장성 없는 기술로 수익을 낼 리 없으며, 실적이 뒷받침되지 않는 주가는 주저앉게 마련이라는 것이다. 주가 하락으로 유상증자를 통한 자금 조달 규모도 급격히 줄어든 것이 최근 코스닥시장 자금난의 원인이 됐다는 설명이다. 장외 기업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한 코스닥등록 게임업체의 재무관계자는 “내수시장에 대한 검증없이 무분별한 벤처지원을 집행한 것이 코스닥의 위기를 불러온 것 같다”며 “내수시장이 더욱 위축되는 가운데 자금 시장마저 왜곡되면서 위기가 가중되고 있다”고 말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사업성과 영업력에 대한 충분한 검증을 거치지 않은 기술이 갖가지 지원을 등에 업고 시장에 모습을 드러낼 때부터 위기는 예정돼 있었다고 꼬집는다.

 충분한 내수시장도 뒷받침되지 않은 상황에서 정부지원 벤처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 황금의 땅 테헤란밸리로 몰려들기 시작한 직후부터 이른바 ‘대란설’의 씨앗은 싹트기 시작한 것이다. 공급이 수요를 창출한다는 ‘세이의 법칙’은 국내 시장에는 적용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

 한편 낮은 액면가가 단타매매를 유발, 주가 하락을 부추긴다는 점도 지적됐다.

 코스닥위원회 관계자는 “최근 등록기업들이 대부분 액면가를 500원으로 낮추면서 발행주식수가 지나치게 많아졌다”며 “착시효과에 따른 개인투자자들의 단타매매가 주가 하락을 유발, 증자시 자금 유치에 어려움을 겪게 하고 있다”고 말했다.

 어쨌든 ‘코스닥 대란설’만은 벤처 육성에 대한 의지를 천명한 노무현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진정되는 분위기다. 그러나 왜곡된 자금시장과 IT산업 불황이라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위기설’은 언제든 또 다시 고개를 들게 된다.

 이같은 코스닥 시장의 왜곡을 바로 잡을 수 있는 대안으로 많은 증시 관계자들이 기업간 M&A를 해결책으로 꼽고 있다. 동종업계 혹은 시너지 창출이 가능한 업체들 간의 M&A가 활성화되면 시장내 경쟁이 완화되는 동시에 규모의 경제도 실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최대주주나 대표이사의 윤리의식이 문제의 핵심이 아닌 만큼 기업의 실적 개선을 위한 M&A는 일종의 ‘탈출구’로 인식되기도 한다. 또 단순히 퇴출요건만을 강화할 경우 투자자 피해가 속출할 우려가 있다는 점에서 M&A는 완충장치의 역할도 함께 가지고 있다.

 이와 관련, 코스닥위원회가 M&A 활성화 방안에 대한 제도 개선을 추진하고 있지만 위원회가 시장관리자라는 위치에 있는 만큼 크게 기대하기는 힘들 것이다.

 결국 정부 차원의 근본적인 제도적 보완없이 M&A가 긍정적인 효과를 낼 것으로 기대하기는 힘들다. 또 그 방향도 정부가 끌고 가는 형태가 아니라 시장원리가 가장 효과적으로 작용할 수 있는 터를 만드는 쪽으로 이뤄져야 할 것이다.

 <홍기범기자 kbhong@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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