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경영환경의 가속화로 GE·지멘스 등의 선발 IT주자는 물론 삼성·LG 등 일류기업을 표방한 기업과 후발기업간 생존을 위한 힘겨루기가 본격화되고 있다.
후발주자의 약진으로 선두와의 기술격차가 급격히 줄어들고 급기야 평준화 현상마저 보이기 시작하면서 선두업체의 독주체제에 급브레이크가 걸리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패권을 유지하려는 업체들과 이들의 아성에 도전하는 후발기업 사이의 세력다툼은 흡사 중국 전국시대에 하늘을 얻기 위한 것과 비교할 만하다.
이는 후발업체들이 그동안 자체 연구활동을 통해 기술력을 축적, 세계 최강으로 평가받던 기업들의 아성을 시나브로 잠식하면서 지키려는 자와 빼았으려는 자 사이의 경쟁이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IT산업의 쌀로 불리는 반도체 시장, 캐시카우인 가전, 새로운 수익원으로 급부상하고 있는 휴대폰, 무공해 산업으로 불리는 게임산업 등의 분야에서 도전과 응전은 상당 기간 지속될 전망이다.
따라서 천년제국을 과신했던 일본 반도체업체들은 약세를 보이고 있으며, 노키아·모토로라·지멘스 등 서방 강자들도 영원한 영토로 간주했던 휴대폰 시장에서 삼성전자를 비롯한 다수의 신흥강자에 밀리고 있는 상황이다.
또한 디지털가전·게임 시장에서 강세를 보였던 일본·미국·유럽 등 선두업체들도 한국·중국 등 후발업체로부터 1위를 위협받고 있어 뉴밀레니엄 시대엔 영원한 강자가 없다는 것을 실감케 한다.
◇반도체=세계 1위 업체인 인텔을 포함한 반도체업체들은 서로 죽이지 않으면 죽어야 하는 절체절명의 상황에 놓였다.
특히 삼성전자·텍사스인스트루먼츠·도시바·인피니온 등이 벌이는 시장경쟁은 치열함을 넘어 처절한 상황이다. 이를 증명하듯 올해 영업이익 30위권에 포함된 업체 가운데 7개 업체를 제외한 23개 업체의 순위가 자리바꿈하는 등 시장판도에 지각변동이 일 것으로 iSuppli는 예측했다.
이 가운데 반도체 종주국 미국의 강세에 이어 90년대 D램 시장에서 전성기를 구가했던 일본 업체들은 최근 대부분 10위권 밖으로 밀려나 권불십년을 떠올리게 하고 있다.
특히 지난해 2인자였던 도시바는 올해 영업이익이 지난해보다 5.5% 줄어든 61억8500만달러에 그쳐 순위가 5위로 내려앉을 것으로 전망된다.
반면 뒤늦게 반도체 시장에 진입한 삼성전자는 올해 영업이익이 지난해보다 50% 가량 증가한 100억달러 규모에 육박, 지난해 4위에서 2위로 수직 상승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밖에 우리에게 잘 알려진 마쓰시타전기와 인피니온은 각각 3계단·2계단 상승할 것으로 전망된 반면 AMD와 아기어시스템스는 각각 4계단·7계단 주저앉은 16위와 22위로 예상되는 등 치열한 생존게임이 펼쳐지고 있다.
◇가전=한국·대만 업체들의 본격적인 시장 진입으로 선두자리를 줄곧 위협받아온 유수 가전업계는 중국의 급부상으로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지난 96년 후반 한국·대만 업체와 에어컨·디지털캠코더·세탁기·디지털TV 부문 등에서 한 차례의 격전을 치렀는데 또다시 겪게 됐기 때문이다.
더욱이 한국·대만 등의 업체들도 중국의 저가공세에 경계를 늦추지 않아 1위 다툼은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이어지고 있다.
중국이 생산능력과 내수소비 시장을 기초로 선발업체들의 숨통을 조여와 생사의 기로에 놓였기 때문이다. 실제 중국의 가전산업은 지난 90년대부터 급성장, 2000년 전세계 생산량 1위를 기록했으며, 내수소비도 미국 다음이다.
특히 하이얼·리옌상·창흥 등의 가전 및 PC업체는 아시아 1000대 기업에 포함된 25개 중국 기업 가운데 각각 13위·16위·20위를 기록할 정도로 거대하다.
중국 가전업체들은 특정품목의 비중을 높이는 전략으로 세계 유명 가전업체를 위협하고 있다. 창흥은 컬러TV 전문기업이며 하이얼·롱셩·신페이 등은 냉장고, 메이더·춘란은 에어컨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결국 해당품목에서 축적된 기술력과 생산능력을 확보, 해외시장을 적극 공략한다는 전략은 유럽·일본·미국·한국 등의 시장잠식으로 이어지고 있다.
특히 커리·TCL·춘란·샤오티엔어 등 대형업체들은 저가품이라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독자적인 연구·설계·제품개발·영업 등의 능력을 확보해 고가품으로 결전을 준비하고 있다.
소니·GE·지멘스 등의 업체들은 과거 우리나라와 대만이 저가를 무기삼아 해외시장에 진출한 전례를 뼈저리게 기억, 중국 업체들과의 전략적 제휴를 체결하거나 생산비용을 낮추기 위해 중국으로 생산기지를 이전했거나 이전을 계획하고 있다.
◇휴대폰=노키아·모토로라·지멘스·삼성전자·에릭슨 등으로 구성된 휴대폰업계는 떠오르는 거대시장 중국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다.
세계시장 점유율 1위라는 명성을 활용해 중국시장에서도 우월적 지위를 확보하려는 노키아와 중국시장에서의 입지구축을 통해 세계 1위에 도전하기 위한 업체간 경쟁열기는 그 어느 때보다도 뜨겁다.
특히 전세계 단말기 시장이 침체를 보이고 있는 상황에서 주요 휴대폰업체들은 늘어나는 적자를 흑자로 바꿀 수 있는 황금어장으로 중국을 겨냥, 업체간 경쟁은 점입가경이다.
업계 1위인 노키아는 현재 순위를 유지하기 위해 분주하다. 이에 힘입어 노키아는 지난해 영역을 더욱 넓히면서 37%의 점유율을 차지했다. 2위 업체인 모토로라의 2배가 넘는 수치다. 수익도 20%대의 고마진율을 기록했다.
노키아는 자신의 영역을 ‘철옹성’으로 유지하기 위해 고·중·저가의 다양한 제품군과 혁신적인 물류시스템을 무기로 삼고 있다. 특히 다소 인텔(제품력)과 같은 개발능력에 애플·델컴퓨터의 효율적인 물류시스템을 더해 경쟁자를 뿌리친다는 전략이다.
반면 최근 들어 경쟁력이 급상승하는 삼성전자의 세계 최고를 향한 노력도 지대하다. 삼성전자는 고성능·고가품(하이엔드) 시장에서 세계 최고 브랜드를 만들어가는 전략을 고수하고 있다. 이에 힘입어 노키아가 중저가 시장에서 ‘골리앗’으로 성장하는 동안 삼성전자는 하이엔드 시장의 3분의 1을 장악하며 경쟁력을 키우고 있다.
단순히 시장 점유율을 늘리기 위해 중저가 제품을 만들어 파는 것보다 튀면서도 좋은 제품을 만들어 제값을 받자는 전략이 중요한 것이다.
◇게임=‘닌텐도·소니를 추격하라.’ 게임 종주국 일본 업체들에 대한 업계의 도전이 거세다. 마이크로소프트는 X박스를 무기삼아 이들과 힘을 겨루고 있다.또 엔씨소프트 등을 주축으로 한 국내 업체들은 온라인 게임을 토대로 이들 업체를 추격하고 있다.
선두기업인 닌텐도는 반도체업체인 NEC일렉트로닉스와 공동으로 차세대 게임기 그래픽칩을 공동 개발하는 등의 제휴를 통한 시장유지를 전술을 펼치고 있다. 두 기업은 닌텐도 게임기인 게임큐브의 차세대 제품에 쓰일 그래픽 처리용 시스템칩을 공동 개발하고 있다.
NEC일렉트로닉스는 지난 11월 NEC에서 분사한 일본 2위의 반도체업체로 분사 이전 게임큐브의 시스템칩을 공동 개발하면서 닌텐도와의 협력관계를 지속적으로 유지해왔다.
특히 닌텐도는 지난해 9월 출시된 게임큐브를 바탕으로 2000년 출시 이후 4160만대가 팔린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PS)2를 위협할 전망이다.
국내 게임업체인 엔씨소프트는 미국 게임개발업체 아레나넷(ArenaNet)을 187억원에 인수하고 자회사로 합병하는 등 게임경쟁에 본격 참여했다.
아레나넷은 국내에서도 널리 알려진 ‘스타크래프트’ ‘워크래프트’ 등의 네트워크 플레이 시스템인 ‘배틀넷’의 핵심 개발진이 설립한 회사다.
엔씨소프트가 자회사로 편입한 아레나넷은 인터랙티브게임 네트워크의 개발과 전문 게임플레이어를 위한 양질의 온라인게임 기획 및 제작 업무를 담당하며 해외시장에서의 경쟁력을 보안하는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부품=부품업계의 경쟁은 그 어느 때보다 달아올라 용광로를 방불케 한다. 시장 점유율을 지키려는 일본 업체의 굳히기 작전과 저렴한 원가정책을 통해 시장 점유율을 높이려는 중국 업체의 전략 그리고 이들의 경계에 선 한국 업체의 전략이 정면으로 맞붙으면서 한겨울 추위마저 녹일 듯한 분위기다.
특히 2차전지 분야의 경우 생산종주국 일본을 추월하고자 하는 삼성SDI·LG화학 등의 국내 업체와 저렴한 비용을 토대로 도전장을 던진 BYD·B&K·ATL 등의 중국 업체들로 혼전을 거듭할 전망이다.
국내 업체들은 휴대폰 생산업체를 안정적인 공급처로 확보하고, 이를 전세계 모바일기기 업체로 확대하고 있어 만만치 않은 상대다.
국가 주도하에 2차전지 산업을 전략적으로 육성하는 중국은 다크호스로 급부상하고 있다.
특히 중국은 매년 해외에서 돌아오는 수천명의 과학기술 전문가를 무기로 삼아 일본의 아성을 공략하고 있다. 이로 인해 일본 전지업체뿐만 아니라 국내 업체들도 바짝 긴장하고 있다.
전지업계의 관계자들은 “중국 업체들은 과거 국내 업체들이 가전시장을 공략하면서 구사했던 저가정책을 사용, 빠르게 세계시장을 잠식하고 있다”며 “앞으로 한·중·일 업체 사이의 패권다툼이 뜨거울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박지환기자 daebak@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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