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경쟁력’인 시대다. 디지털 지식경제사회가 진전할수록 뛰어난 한 사람이 평범한 1만명을 먹여 살리는 구조가 정착되고 있다. 이에 본지는 지난 일년간 ‘세계최고 IT강국 한국’을 화두로 ‘사람’의 중요성을 일깨우고자 대학·기업·연구소 등 각계각층의 인력현황과 구조적 문제점, 그리고 나아갈 방향 등을 제시하는 ‘사람이 경쟁력이다’ 기획시리즈를 연재했다.
시리즈가 나가는 동안 산업계·학계는 물론 심지어 학생과 주부까지도 성원을 보내주었으며, 또 일부 학교에서는 커리큘럼을 재편하겠다는 선언도 있었다. 매주 월요일자로 총 49회에 걸쳐 진행된 이번 ‘사람이 경쟁력이다’ 기획시리즈를 끝내면서 취재기자들이 지난 일년간 현장에서 느꼈던 점들을 난상토론식으로 정리하는 방담회를 가졌다.
△참석자
방은주 국제부 차장
최정훈 산업기술부 기자
이은용 엔터프라이즈부 기자
강병준 정보가전부 기자
명승욱 e비즈니스부 기자
장지영 문화산업부 기자
김인진 IT산업부 기자
김인순 산업기술부 기자
◇명승욱=그동안 정부의 이공계 인력 육성에 대한 지적은 많았지만 실제 교육기관의 부실에 대해서는 언론 역시 심층적인 취재가 부족했습니다. 이번 시리즈는 대학교, 일반 사설학원 등의 편법적인 교육현장도 다뤘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취재과정에서 드러난 것을 보면 교수들의 연구비 착복, 정부 지원금을 위한 급조된 학과과정 등 대학의 부실 고리는 깊었습니다. 학원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소위 ‘삐끼’ 수준의 학원생 모집, 부실 강사진, 경영자들의 정부 지원비 착복 등 전방위적으로 퍼져있는 부패현상에서 열악한 우리의 교육현실을 다시 한번 느꼈습니다.
◇방은주=고급 IT인력 양성과 한국의 IT산업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대기업과 벤처기업이 다른 시각을 가지고 있는 것도 흥미로웠습니다. 예컨대 대기업 측은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 같은 플랫폼으로 한국이 승부 걸기에는 너무 위험이 따르고 성공하기 어려우니 대신에 애플리케이션에 치중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반면에 벤처기업들 특히 게임업계에 종사하는 벤처기업인들은 ‘무슨 소리냐, 플랫폼으로도 충분히 세계시장서 겨룰 수 있다’는 반응이었습니다.
◇이은용=다양한 기관에서 정보기술(IT)자격증을 남발하면서 실무능력이 없는 자격증 보유자가 많아졌습니다.
이에 따라 기업들은 IT자격증을 인사선발의 기준에서 배제시키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늘어난 자격증의 신뢰도가 하락하고 있는 것이 문제입니다.
특히 외국계 대형 IT기업들의 제품을 이용해 정보시스템을 개발하거나 관리하는 전문가인증(CP)을 획득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국내시장 잠식과 외화유출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강병준=이번 시리즈를 취재하면서 많은 에피소드도 있었습니다. 첫 회부터 반응이 뜨거웠으며 산업계는 물론 학계 심지어 학생과 주부 까지도 성원을 보내 왔습니다. 하지만 정작 내용적인 면에서는 기대만큼의 성과를 올리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특히 해외취재 분야는 직접 현장에 다녀오지 못하고 간접취재에 그쳐 더욱 생생하고 풍부한 정보를 주지 못했습니다.
◇김인진=정부정책 편을 취재하면서 정책의 기본도 갖춰져 있지 않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담당사무관에게 지금까지 정부가 펼쳐온 인력정책을 정리한 자료를 부탁했지만 그런 자료는 없다는 대답을 들어야만 했습니다.
몇년전부터 인력육성책을 시행하고 있지만 그간 어떤 정책이 시행되었는지 정리나 기록은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말입니다. 도대체 기록작업 없이 어떻게 정책의 성과를 평가하고 새로운 정책을 입안할 수 있다는 말인지 황당할 뿐이었습니다.
대통령 선거에서 실현 불가능한 공약을 남발하는 것처럼 우리 정부의 인력정책 역시 장기적인 마스터플랜에 의한 것이기보다는 이벤트처럼 비춰져 아쉬웠습니다.
◇장지영=IT인력난은 대학에서 첫 단추가 잘못 꿰어지기 때문에 빚어지는 측면이 강합니다. 사람은 많은데 당장 쓸 만한 인재가 없는 것도 대학교육이 낡은 교육방식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 기업들이 한해 동안 인력 재교육을 위해 1조원 가량의 뭉칫돈을 투입한다는 전경련의 보고서는 부실한 대학교육이 낳은 사회적 낭비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낡은 커리큘럼을 개편하는 것은 물론 산업계 교수인력을 적극 활용하는 등 대학에서 하루빨리 현장지향 교육이 정착되지 않으면 이같은 악순환은 되풀이될 것입니다.
◇김인순=이공계 기피현상은 올해 커다란 사회문제로 대두되면서 갖가지 지원책이 제시됐습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모든 정책들이 단기적인 현상을 해소해 보려는 수준입니다.
이런 지원책을 바라보는 학계나 연구계 등 현재 이공계에 몸담고 있는 인재들 역시 그런 정도의 지원책으론 이공계 기피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최정훈=이공계 기피현상을 타파하기 위해 이공계생들에게 등록금을 지원하는 식의 미봉책보다는 근본적인 개선책 마련이 시급합니다. 또 마련된 개선책에 대해선 지속적인 실천이 필요하지만 우리는 그동안 이를 간과해 왔습니다.
중국의 경우 IT보국을 모토로 정부 주요 요직에 이공계 출신자들을 배치하고 지속적인 IT강화정책을 유지하는 환경마련에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정책입안자가 정책의 실천 및 최종 마무리까지 확인할 수 있는 기본적인 환경을 조성해야만 합니다. 발의된 정책이 이후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 반드시 점검하는 시스템이 마련돼야 합니다.
◇명=취재도중 만난 서울대 대학원생들의 말이 아직도 기억에 남습니다.
“대학연구실의 하루하루가 왠지 남보다 뒤처지고 있다는 생각뿐이다. 70∼80년대 정부의 과학기술 육성에 대한 비전은 도대체 어디로 갔는가. ‘사이언스 키드’ 세대인 우리에게 이제 선택할 수 있는 길은 고시촌밖에 없다.”
교수들의 목소리에서도 우리 교육현실을 통감할 수 있었습니다. 한 교수는 “20년을 공부에만 몰두했다. 그저 안정적인 직장에서 연구에만 전념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자조섞인 말을 털어놓았습니다.
국가 과학발전의 첨병인 이들의 근심 가득한 얼굴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이미 과학 한국의 미래에 빨간불이 켜졌습니다. 우수한 두뇌들에 대한 획기적 지원책이 절실합니다.
◇강=시리즈와 관련해 각 분야 전문가들을 만나면서 느낀 점은 다소 이율배반적인 시각입니다.
일각에서는 인력이 없어서 아우성인데 다른 한 편에서는 인력이 남아돈다는 것이 대표적 사례입니다. 이는 그만큼 우리나라가 전문인력, 우수한 인력을 키우는데 아직도 인색하다는 것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누구나 다 필요로 하는 경쟁력 있는 인력은 사실 기업의 큰 자산입니다.
기업의 첫째 임무가 리소스(자원)를 위한 투자임을 감안할 때 고급인력을 밖에서 찾기보다는 안에서 양성할 수 있는 시스템이 시급히 갖춰져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우리나라에서도 어디에 내놔도 부끄럽지 않은 세계 일류기업이 끊임없이 탄생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공계 인력과 관련한 국가 차원의 마스터플랜이 없다는 점도 문제입니다. 정통부, 산자부, 교육부, 과기부 등 각 부처에서 나름대로 기술인력이나 고급인력을 양성하기 위한 정책이 있지만 이를 통일적으로 묶어 범정부 차원의 교육양성 프로그램이 없는 실정입니다. 이 때문에 부서별로 중복되거나 불필요한 분야에 지나치게 투자되는 등 인력과 관련해 상당히 비효율적으로 운영되는 상황입니다. 대통령 직속의 기술인력 기획단 등을 고려해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입니다.
◇방= IT인력의 근간을 이루는 시스템통합(SI)업체에 근무하는 사람들은 한국에서는 결코 빌 게이츠가 나올 수 없다고 하소연하고 있습니다. 즉 한국이 세계적 IT국가로 부상하기 위해서는 빌 게이츠 같은 큰 그림을 그리는 아키텍터가 필요한데 한국에서는 전산학을 전공하고 시스템통합(SI)기업에 취업한다고 해도 단순히 코딩(소프트웨어 짜는 것)만을 하는, 그래서 기계적 시스템 관리자로 전락하고 마는 악순환이 계속된다는 겁니다. 비범한 고급두뇌 한 명이 1000명의 보통 사람을 먹여 살리는 디지털 지식경제 시대에 모두가 고민해야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이=과학기술 육성을 위한 정부지원금이 특정대학 연구소에만 지원돼 창의적인 연구를 하는 연구소들이 고사당하고 있는 것도 문제입니다. 대학부설연구소에 대한 엄격한 관리를 통해 21세기 과학, IT인재들에게 안정적인 연구환경을 마련해줘야 할 것입니다. 정부의 IT지원책은 대부분 ‘몇년간 얼마를 투자하겠다’는 식입니다. 보다 주도면밀한 계획하에 인재를 발굴하고 육성해야할 시점입니다.
◇장=핵심 기술인력의 재교육 프로그램이 태부족한 것도 문제입니다. 어느 정도 규모를 갖춘 기업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기업이 어깨 너머로 배우는 도제식 교육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당장 먹고 살기에 급급한 벤처들로서는 인력 재교육이 배부른 소리일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핵심인력 재교육 문제는 정부차원에서 적극 지원할 필요가 있습니다.
정부가 나서면 예산확보뿐 아니라 해외 유명강사 섭외 등도 쉬워 개별기업보다 훨씬 양질의 교육이 보장될 것입니다.
정부부처의 해묵은 영역다툼은 인력양성 정책에서도 전개되고 있습니다. 이름만 다르지 실제내용은 똑같은 교육기관이 비일비재한가 하면 부처마다 서로 선심성 지원에 경쟁적으로 나서고 있습니다. 막대한 돈이 인력양성에 투입되고 있지만 중복투자와 과잉투자라는 비판이 끊이지 않는 것도 바도 이 때문입니다. 이는 새해에 유관부처끼리 업무조정을 하지만 지속적으로 관리하거나 조정하는 기관이 없기 때문입니다.
◇김인순=선진기술을 연구해야 하는 국책 연구기관의 공동화 현상이 심각한 것도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국책 연구기관의 젊고 유능한 연구원들은 대학의 교수직으로 가기 전에 연구소를 디딤돌로 삼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 때문에 선진 기술연구가 연속적으로 되지 않아 국가 과학기술 발전에 큰 저해가 되고 있습니다. <정리=김인순기자 insoon@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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