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 IT산업 총결산](9)벤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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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90년대 후반부터 전세계적으로 확산됐던 인터넷 붐이 2000년을 고비로 힘을 잃게 되면서 인터넷, 통신, 바이오 등 하이테크 분야에서 융성했던 벤처기업들도 위기를 맞고 있다. 벤처의 요람인 미국뿐 아니라 유럽 등에서도 이러한 사정은 마찬가지다. 우리나라도 예외일 수 없어 많은 벤처기업이 어려움에 처해 있으며 주요 자금원인 벤처투자조합의 활동도 부진하고 코스닥시장은 탈진상태에 빠져있다.

 게다가 올해 벤처업계는 새해벽두부터 연이어 터진 게이트로 인해 어느 해보다 심한 시련을 겪었다. 연초에 터진 패스21 사건은 그 전주곡이었다.

 자금난을 견디지 못한 벤처기업들이 줄도산하고 코스닥기업의 주금가장납입 등 사건이 끊이지 않았다. 일부 벤처기업인들이 구속되면서 21세기 한국경제를 이끌 집단에서 경제를 어렵게 만드는 한 축이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어둠의 늪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는 벤처업계지만 희망의 불씨는 사라지지 않고 남아있다.

 거품의 대명사였던 인터넷기업의 경영성적이 흑자로 돌아섰으며 휴맥스, 에스디 등 성공적으로 해외시장을 개척한 벤처기업이 속속 등장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내실을 다지려는 벤처업계 자정의 목소리도 이어지며 벤처업계가 재도약의 기틀을 다지고 있다. 이제 앞으로 다가올 새로운 벤처 부흥기에 대비한 벤처업계의 신뢰회복이 절실한 시점인 것으로 파악된다.

 ◇자금난=재도약을 위한 과도기를 겪고 있는 올해 벤처업계의 최대 화두는 역시 자금난이었다.

 경기부진으로 적자기업이 급증했으며 공모자금이 바닥난 코스닥기업들이 심각한 자금난에 휘말릴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지난 2000년 72개사(15%)에 불과하던 코스닥 적자기업수는 지난해 193개(28%), 올 상반기에는 255개(34%)로 증가했다. 코스닥 벤처기업 중에서는 41%가 상반기에 적자를 냈다.

 일반 벤처기업의 사정은 더해 기업인수 및 합병(M&A)시장을 기웃거리는 기업이 무려 2000여개에 달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특히 코스닥 등록요건 강화로 벤처업계의 자금난은 가중됐다. 올해 코스닥에 등록된 기업은 147개로 지난해보다 12% 줄었다. 될 만한 기업만 도전했는데도 미끄러진 기업이 많았다. 특히 코스닥위원회가 주간사 증권사로부터 접수한 내년 등록 예비심사청구계획서에 따르면 청구예정기업이 올해 431개사보다 31.8%나 줄어든 294개사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계속된 벤처비리=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올해도 사이비 벤처들의 머니게임과 부적절한 커넥션으로 전체 벤처기업이 지탄을 받았다. 지난해 정현준, 진승현으로 이어졌던 게이트가 올초 터진 패스21 사건으로 이어진 것이다.

 대박을 노린 일부 기업인의 비뚤어진 경영은 결국 몰락을 자초했다. 연초 터진 패스21 사건은 몇몇 벤처기업의 신화가 돈으로 덧칠된 것임이 드러났다.

 최근에는 벤처신화 1세대로 불리던 새롬기술 오상수 대표와 프리챌 전제완 대표가 비리로 구속됐다.

 ◇인터넷기업 흑자전환=벤처가 허황된 꿈이 아니라는 것을 다음커뮤니케이션, 옥션 등 1세대 인터넷기업들이 증명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입증하며 거품의 상징에서 당당히 산업으로 편입됐다.

 인터넷 포털사이트 다음은 올해 2300억원의 매출과 60억원의 순이익을 예상하고 있으며 인터넷 경매업체 옥션도 올 3분기까지 수수료 기준 매출액이 250억원을 기록, 지난해 전체 매출액을 벌써 넘었다. 순이익도 14억원 흑자로 전환했다. 인터넷 포털인 NHN도 올 3분기까지 매출 498억원, 순이익 167억원을 거뒀다.

 ◇벤처 옥석가리기=이같은 분위기 속에서 정부는 위축된 벤처업계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지난달 ‘벤처기업 재도약 방안’을 발표했다.

 논란을 빚었던 벤처확인제도는 오는 2005년에 종료하고 더 이상 연장하지 않기로 했다. 당초 정부가 목표로 세웠던 2002년까지 2만개 벤처기업 육성이 어렵다는 점을 인정한 셈이다.

 정부는 올해 벤처기업 실태조사를 강화하며 자격요건 미달이나 휴폐업한 기업의 벤처지정을 취소했다. 지난 14일 현재 벤처기업 수는 모두 8965개로 지난해 말 1만1392개에 비해 2427개(21.4%) 줄었다. 이같은 벤처기업의 경영난과 위축으로 벤처정책의 성패 여부에 대한 논쟁이 뜨거운 한해였다.

 ◇그래도 벤처는 희망=그러나 희망의 불꽃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다. 올해 벤처기업 수출은 56억1200만달러로 지난해보다 28.1%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전체 수출증가율의 5.6배에 달한다.

 전체 수출에서 벤처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지난해 3%에서 올해 4%로 커졌다. 벤처기업이 가능성을 보여준 증거다.

 1세대 벤처기업인 휴맥스의 올해 예상매출액은 3659억원으로 중견기업 수준을 뛰어넘고 있으며 에스디는 간암·폐암 등을 한방울의 피로 5분내에 진단할 수 있는 키트를 세계에서 세번째로 개발, 현재 미국·유럽·일본 등 세계 70개국에 수출중이다.

 네오엠텔은 휴대폰 동영상 기술로 미국 퀄컴사로부터 로열티를 받고 있다. 이밖에도 수많은 벤처기업이 우수한 기술력으로 중국시장을 비롯한 해외시장에서 이름을 날리고 있다.

 벤처업계에 폭넓게 인식되고 있는 현재의 위기의식은 벤처붐 이후에 겪는 상대적인 상실이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과거 데이터를 비교하면 현 수준이 극도로 위축됐다고만은 볼 수 없다. 여기에는 비교시점의 문제가 뒤따른다. 벤처기업 및 캐피털의 역사가 가장 긴 미국의 경우 지난 99년부터 벤처붐으로 인해 비약적인 발전이 있었다. 2001년도 투자실적이나 2002년도 예상실적이 99년에 비해 낮은 것이지 98년에 비하면 여전히 양호한 편이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지금이야말로 다음 벤처부흥기에 대비, 탄탄한 벤처토양을 조성해야 할 시점인 것이다.

◆화제의 인물

 올해 벤처업계는 벤처침체가 지속되면서 99년, 2000년 유례없던 국내 ‘벤처붐’을 이끌었던 1세대 벤처CEO들이 경영과정에서의 과실로 사법처리를 받는 등 줄줄이 불명예 퇴장을 했다. 반면 최악의 상황에서도 화려한 비상에 성공한 CEO도 있다.

 새롬기술의 오상수 전 사장과 프리챌의 전제완 사장은 가장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다.

 한때 현대자동차와 시가총액을 견주며 대한민국 최고의 벤처기업가로 주목받았던 오상수 전 사장은 지난 99년 유상증자 당시의 허위공시와 배임혐의로 검찰에 기소되는 몸이 됐다.

 한때 200만원을 호가했던 주가도, 3700억원에 달했던 유동자금도 한바탕 꿈에 지나지 않은 셈이다. 새롬기술의 경영권을 넘겨받은 새롬벤처투자의 홍기태 사장은 새롬기술을 통해 큰 돈을 벌었던 개인투자자 출신이라는 점은 인생의 아이러니라고 할 수 있다.

 최근 터진 프리챌의 전제완 사장 구속사태도 적지 않은 충격이다.

 사업자금 고갈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점은 익힌 알려진 사실이지만 프리챌마저 CEO가 배임 및 가장납입혐의로 구속될 줄은 몰랐다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사업초기 막대한 자금을 쏟아부으며 인터넷커뮤니티사업을 의욕적으로 벌였던 전 사장은 다음에 이어 커뮤니티 2위 업체로의 진입에는 성공했지만 뚜렷한 사업모델이 없어 그동안 고전해왔다.

 지난 11월 최후의 수단으로 커뮤니티 전면 유료화에 나서 12월 현재 약 15만명의 유료회원을 확보하는 ‘절반의 성공’에 그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터져나온 전 사장의 구속으로 프리챌은 현재 내우외환을 겪고 있다.

 인터넷 전도사로 명성을 날렸던 이금룡 전 옥션 사장도 지난 7월 대표이사직을 내놓으면서 세인의 관심에서 멀어졌다. 인터넷붐 초기이던 지난 99년 인터넷경매업체 옥션의 전문경영인으로 영입된 그는 한국인터넷기업협회 설립을 주도, 국내 인터넷발전에 공헌하기도 했다. 그러나 옥션 사이트내 카드깡 문제가 불거져 곤혹을 치르기도 했다.

 그는 옥션을 국내 최대 e마켓플레이스로 성장시켰다는 평가를 받지만 대주주인 이베이와의 이견으로 결국 지난 7월 중도하차했다. 더군다나 KT커머스로부터 대표이사직을 제의받고도 퇴사후 1년 이내에 동종업종에서 일할 수 없다는 이베이측과의 계약조건 때문에 이러지도 저리지도 못하는 상태다.

 ‘광고를 클릭하면 돈을 준다’는 비즈니스 모델로 벤처 1세대의 주축으로 떠올랐던 김진호 골드뱅크(현 코리아텐더) 전 사장도 골드뱅크 대표재직시 공금횡령혐의로 지난 8월 검찰에 구속기소됐다. 김 전 사장은 구속기소되기 전인 지난 2월 온라인게임업체 오즈인터미디어의 공동대표로 컴백을 시도했지만 결국 재기에 성공하지 못하게 됐다.

 반면 당초 기대치를 뛰어넘는 실적이나 아무도 실현가능성을 믿지 않았던 사업모델을 정착시키며 새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CEO들도 있다. NHN의 이해진 사장과 넷마블의 방준혁 사장, 하우리의 권석철 사장 등이 대표적이다.

 네이버와 한게임이 결합한 NHN은 올해 약 650억원의 매출과 약 200억원의 순이익으로 닷컴업계 최고의 순이익률을 낼 것으로 보인다. 이 사장의 오랜 숙원이던 코스닥등록도 삼수끝에 통과해 현재 NHN은 다음을 밀어내고 닷컴업계의 간판주로 자리를 잡았다.

 넷마블의 방준혁 사장은 올해 게임업계에 혜성처럼 등장했다.

 웹게임사이트 넷마블을 앞세워 지난 3월부터 본격적으로 유료화에 뛰어들어 올해 약 250억원의 매출과 130억원의 순이익 달성을 눈앞에 두고 있다. 지난해 매출 7억원과 7억원의 적자를 기록한데 비하면 가히 경이적인 변신이다. 게다가 올해 중반부터는 한게임을 제치고 국내 1위 웹게임사이트로 자리를 굳히고 있다.

 하우리 권석철 사장도 눈길을 끈다. 권 사장은 경쟁사인 안철수연구소가 통합보안업체로 사업영역을 넓혀가는 틈을 노려 하우리를 앤티바이러스 전문업체로서 입지를 다지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국내의 안연구소, 해외의 시만텍 등에 가려져있던 회사 인지도를 이들과 어깨를 견줄 정도로 끌어올린 점은 그가 올해 거둔 가장 큰 성과다.

 <홍기범기자 kbhong@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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