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보사피엔스 이야기](47)쓰레기로봇

 스필버그의 영화 ‘A.I.’에는 가까운 미래에 지능형 로봇이 생활 속에 보편화될 경우 환경측면에서 어떤 부작용을 야기할지 시사하는 명장면이 나온다.

 인간의 마음을 지닌 로봇소년 데이비스는 부모에 의해 숲에 버려진 뒤 산더미 같은 로봇 쓰레기장을 발견한다. 그곳에서는 자신처럼 버려진 고철로봇들이 고장난 신체를 수리할 폐부품을 찾아 쓰레기 더미를 뒤지고 다닌다. 영화 속의 거대한 로봇무덤은 머지않아 현대산업사회가 쏟아내는 온갖 폐기물 목록에 로봇이 신종 쓰레기군으로 추가될 운명을 암시한다.

 로봇기술이 초래할 환경문제가 상상이 잘 안되는 분들은 불과 십수년만에 전국의 가정과 사무실에 쫙 깔린 PC를 생각해 보라. 골동품 XT기종에서 최신 펜티엄4까지 이른바 정보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당신이 갈아치운 컴퓨터와 주변기기가 얼마나 되는지 기억나는가. 끊임없는 기술 진보는 어제의 첨단제품을 오늘은 쓰레기로 만든다. 로봇이 일단 산업현장을 벗어나면 유한계층의 취향을 만족시키는 가전제품 혹은 고급 장난감으로 자리잡는 수밖에 없다. 소비자가 로봇에 기대하는 요구사항은 방청소에서 아이보기, 은밀한 잠자리시중까지 사실상 끝이 없기 때문에 가정용 로봇은 다른 어떤 문명의 이기보다 교체주기가 짧은 특성을 갖게 된다. 자동차는 좀 낡아도 10년 이상 타지만 하루가 멀다하고 성능이 향상되는 가정용 로봇을 그렇게 오랫동안 사용할 소비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결국 생활 속의 지능형 로봇이란 PC, 휴대폰만큼 잦은 업그레이드가 필요하고 이에 비례해 엄청난 산업쓰레기를 유발하는 ‘환경의 적’이 될 가능성이 크다.

 에너지측면에서 볼 때도 로봇의 확산은 골칫거리다. 붙박이식 가전제품과 달리 로봇은 자체기동과 작업활동에서 훨씬 많은 전기를 소모한다. 집집마다 보급된 PC가 국내 전력수요의 6%를 차지하는 상황에서 모터가 여러개 달린 가정용 로봇이 대량 보급될 경우 불필요한 전력낭비를 부채질할 것이다. 인간의 몸이란 본시 기계로봇보다 훨씬 효율적인 기관이다. 100㎉의 열량을 소모할 때 인간은 1㎞를 걷지만 화석연료를 쓰는 자동차는 85m, 두 발로 걷는 이족보행로봇은 불과 20m밖에 이동하지 못한다. 인간형 로봇은 비슷한 덩치의 사람보다 50배 이상 에너지를 소모하는 괴물인 셈이다. 자동차에 비유하자면 로봇은 최악의 연비를 지닌 차량임에 분명하다. 생태주의자가 아니라도 단지 인간의 편리를 위해 온갖 가사노동을 기계로봇에게 떠맡기는 경향이 확산될 경우 지구차원의 에너지위기가 심화되는 것은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일이 아닌가.

 21세기는 환경의 시대다. 우리의 차세대 로봇산업이 친환경적이며 에너지소모를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첫단추를 끼워야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bailh@etnews.co.kr

브랜드 뉴스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