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올해의 인물 ’휴대폰’

◆이택 정보가전부장 etyt@etnews.co.kr

 10여년 전 시사주간 ‘타임’이 연말이면 어김없이 선정·발표하는 올해의 인물에 사람이 아닌 ‘PC’를 내세운 것은 충격이었다. 역사성과 기록성을 동시에 추구하는 것은 언론의 속성이다.

 우리 언론도 예외는 아니다. 벌써부터 나름의 대상자를 내부적으로 저울질 하고 있다. 그러나 올해는 그 흥미가 반감될 것이다. 1주일 후면 새로운 대통령이 결정된다.

 2002년 한국의 인물은 당연히(?) ‘그’가 될 것이다. 경제산업 분야만을 따로 떼어내 최고의 인물을 선정하는 경우도 있다. 전자신문도 2002년을 빛낸 인사들을 차례로 소개하고 있다. 어디 언론뿐인가. 협회나 단체, 각 대학교에 이르기까지 ‘인물 뽑기’는 관행적 연말행사가 됐다.

 우리 산업계의 진정한 ‘올해의 인물’은 휴대폰이다. 타임은 PC를 선정하면서 “인류의 삶을 바꿀 ‘인물’이다”고 했다. 2002년 한국의 휴대폰도 그에 못지않다. 산업지형도를 다시 그렸다. ‘아성’을 구축한 반도체를 제쳤다. 내친 김에 한 발 더 나아갔다. 최고의 호황을 구가한 자동차까지 밀어내고 마침내 전체 수출 1위에 등극했다. 휴대폰이 불황에 허덕이던 IT업계를 먹여살리고 우리 경제의 버팀목 역할을 했다. 휴대폰업체는 기본이고 부품업계에 솔루션기업, 사업자까지 수혜를 입었다.

 증권가에서는 관련기업의 주가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너도 나도 돈을 잘 버니 기업가치가 올라갔다. 고급두뇌를 유치할 수 있게 됐고 기술 재투자 여력을 갖췄다. 휴대폰이야말로 선순환을 통해 국제경쟁력이 계속 강화되는 대표적 사례다.

 이 정도는 눈에 보이는 것이다. 더 큰 것은 숨어 있다. 국가 브랜드가 높아졌다. 해외에서 국산 자동차를 볼 때면 뿌듯하다. 아쉬운 것은 벤츠나 렉서스(도요다)보다 한 등급 아래라는 것뿐이다. 휴대폰은 다르다. 가장 비싼 값에 최고 제품으로 인식된다. 한해 4억대가 팔리는 이 시장에서 한국은 1억대를 공급한다. 전세계인의 호주머니를 한국산 휴대폰이 점령하고 있다. 덕분에 PC를 비롯한 여타 IT제품도 고가전략을 구사할 수 있게 됐다. 이쯤 되면 우리 산업사상 일대 혁명적 사건으로 기록됨직하다.

 물론 여기까지 온 것은 사람의 힘이다. 정치판과는 너무도 다른 애국자가 그들이다. ‘혼을 넣어 만든다’는 근로자들이 있다. 세계 최고의 연구기술진이 뒷받침한다. 마케팅과 시장 트렌드를 꿰차고 있는 초일류 경영진도 든든하다.

 정부 역시 총력을 기울인다. ‘자랑스런 그들’이 휴대폰 신화를 낳았다. 그래서 한국 휴대폰은 어느 특정인의 전유물로 돌리기에는 비중이 너무 크다. 업계 전체, 우리 경제계와 정부, 국민의 신화요, 산업이다.

 중국이 견제하고 노키아와 모토로라가 달려들어도 한국 휴대폰은 질주한다. 그를 둘러싼 ‘사람들’이 방심하지 않고 초심을 유지하고 있다.

 일단 신바람이 나면 누구도 못말리는 게 한국인이다. 휴대폰은 이미 선순환구조가 정착됐다. 세밑에도 ‘휴대폰 사람들’은 밤을 도와 물건을 만들고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2002년 올해의 인물 ‘휴대폰’은 그 애국자들의 손에서 만들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