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기초연구 강제탈락제

 정부가 내년부터 기대이상의 성과를 올리지 못하는 기초과학기술 개발과제를 일정비율 탈락시킬 것이라고 한다. 과학기술부는 연구개발비를 철저히 관리하고 연구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현재 과학재단이 집행하고 있는 기초연구과제를 중간 평가해 연구성과가 부족한 과제를 중심으로 매년 20%씩 중도에서 강제 탈락시키기로 했다. 아직까지 구체적인 탈락 선정기준 등이 마련된 것은 아니지만 실행에 옮겨지면 파급정도가 적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과학재단이 지원하고 있는 기초사업 과제는 2000개 정도 된다. 이 중 20%를 강제로 탈락시킨다고 보면 내년에 적어도 400개의 과제가 사실상 중단되는 셈이다. 물론 정부의 이같은 조치에 수긍이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성과없이 연구개발비만 낭비하는 기초과학기술 과제를 퇴출시키고 연구개발의 생산성을 촉진한다는 측면에서 보면 이같은 조치는 일면 타당하다고 본다. 하지만 어떤 기준을 통해 퇴출과제를 선정하고 이에 투입됐던 인력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문제가 적지 않다. 더욱이 과제의 성공가능성 여부를 고려하지 않고 상대평가에 의한 정량적인 방법으로 과제 중 20%를 강제로 탈락시킨다는 점도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정부의 이같은 조치에 대해 연구계의 입장은 부정적이다. 연구계 관계자들은 기초과학기술 연구는 당장의 성과물을 기대하기보다는 향후 과학기술이 발전해갈 방향의 토대를 제공하는 기초인프라라는 점을 고려할 때 이를 상대평가해 중도 탈락시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같은 기초연구 강제 탈락제가 당초 목표인 연구생산성을 높일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연구계는 장기적인 지원이 필요한 기초분야의 특수성을 감안하지 않은 탁상행정이라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의 연구개발 투자에서 기초연구비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 11개국 중 10위로 최하위 국가에 머물러 있다고 한다. 이는 기초연구에 대한 투자가 그만큼 미흡함을 의미한다.

 기술·자본이 강한 일본과 제조업 경쟁력이 뛰어난 중국 사이에서 우리의 활로는 기술 경쟁력에 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기술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는 기초과학기술 개발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사정이 이럴진대 정부가 그동안 진행해온 기초과학기술 개발을 매년 20%씩 줄인다는 발상은 제대로 된 정책이라고 보기 어렵다.

 이러한 점을 고려할 때 이번 과기부의 방침은 재고돼야 한다고 본다. 기초과학기술을 적극 개발하기 위해선 자금지원 등 실무적인 조치만으로는 미흡하다. 기초과학기술 투자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조치가 강구돼야 한다. 우선 처음 과제를 선정할 때보다 체계적인 평가방법으로 성공가능성이 높은 과제를 도출해야 한다.

 일본의 경우 기초연구사업에 대한 중간평가나 결과평가를 계량화하기보다는 연구의 내실화를 유도하고 있으며 연구결과가 좋지 않을 경우에도 일본학술진흥회가 연구자에게 직접적인 페널티를 주기보다는 차기 연구비 신청 때 평가에 반영하는 보완제도를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일본의 이러한 기초연구사업 추진사례는 기초과학의 효율성을 높여야 할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이 되고 있다.

 정부는 연구원들이 자유롭고 창의적인 사고로 기초기술을 연구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연구개발의 사후관리에 힘쓰는 것은 물론 기초연구에 대한 투자를 더욱 늘려 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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