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국내 정보통신서비스 산업은 사상 최대의 호황을 누렸으나 고조되는 IT산업 위기론 속에 빛을 잃었다. 통신서비스업계의 투자는 날로 위축됐고 급기야 정부가 나서 IT투자펀드를 조성하기도 했다. 통신정책 분야에 있어 올해는 유선과 무선, 방송과 통신, 음성과 데이터의 대통합 추세에다 공기업 민영화로 등장한 민간경쟁체제에 맞게 방향선회를 모색한 해로 기억될 듯하다.
◇양대 민영화 성공과 통신업계 구조재편=올해 통신업계의 화두는 KT와 파워콤의 민영화였다. 두 공기업의 지분을 가진 정부는 공기업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지분매각을 서둘렀고 마침내 성공했다.
통신산업계의 지존인 KT는 정부지분이 일체 없는 완전한 민간기업으로 탈바꿈했다. 비록 SK텔레콤의 기습적인 지분매입으로 퇴색되기는 했으나 막대한 지분이 순식간에 민간자본에 골고루 배분되는 성공을 거뒀다. 더욱이 SK텔레콤과 KT는 상호 보유한 지분을 맞교환하기로 합의함으로써 분쟁의 불씨는 사실상 사라졌다.
파워콤도 데이콤이라는 새로운 주인을 맞아 민간기업으로의 행보를 시작했다. 헐값매각이라는 논쟁도 있었고 매각과정에서 데이콤과 하나로통신의 감정싸움도 고조됐다. 정부와 한전은 앞으로 파워콤의 나머지 지분을 모두 매각할 방침이어서 100년 정도 정부 지배하에 있던 통신업계는 완전 민영체제라는 새로운 환경에 놓이게 됐다.
특히 데이콤의 파워콤 인수는 KT와 SK텔레콤 양강구도인 통신업계 판도를 LG가 새로 가세한 ‘솥밭’체제로 바꿔놓았다. 3강에 소속되지 않은 나머지 통신업체들은 어떤 형태로든 3강에 포함되느냐 퇴출되느냐의 갈림길에 놓였다. ◇이동전화 3000만, 초고속인터넷 1000만 돌파=올해 국내 통신서비스산업은 양적으로 급팽창했다. 무선에선 이동전화가, 유선에선 초고속인터넷의 성장이 눈부셨다. 이동전화는 지난 봄 가입자 3000만명을 돌파해 유선중심의 통신산업 구조를 무선중심으로 바꿔놓았다. 초고속인터넷도 지난 10월말 1000만 가입자를 돌파해 유선의 새로운 활로가 데이터임을 제시했다. 이동전화와 초고속인터넷의 성장은 우리 정보통신의 대외적인 위상을 한껏 높여놓았다. IT인프라 고도화의 일등공신이다.
이제는 질적인 성장이라는 새로운 화두까지 던져줬다.
무선인터넷의 활성화가 그것이다. SK텔레콤과 KTF 및 KT아이컴은 3세대 서비스 시장의 주도권 경쟁에 벌써 돌입했다. SK텔레콤은 최근 프리미엄 멀티미디어 브랜드인 준을 선보이고 공격적인 마케팅을 진행중이며, KTF는 EVDO 브랜드인 핌과 KT아이컴의 지큐브로 시장을 넓혀가고 있다.
◇날로 치열한 시장경쟁과 유효경쟁 논란=시장 전체규모가 커졌으나 지배적사업자로의 쏠림현상도 심해졌다.
KT는 여전히 시내외전화·국제전화·초고속인터넷 등의 유선시장을 독점하다시피하고 있으며 완전민영화에 성공하면서 지배력은 더욱 강화되고 있다. 하나로통신·데이콤·온세통신 등 후발사업자들은 비대칭 규제의 효과가 서서히 나타나면서 실적은 호조됐으나 여전히 마이너업체의 틀을 벗어나지 못했다.
무선시장에서 SK텔레콤은 신세기통신과의 합병에 대한 점유율 규제에도 불구, 시장지배력은 더욱 커졌다. 반면 KTF와 LG텔레콤의 불만은 고조됐다.
쏠림현상이 심화되자 후발사업자들은 요금인하를 비롯한 공격적인 마케팅을 벌였으나 지배적사업자의 견제로 인해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
◇유효경쟁 논란과 정책개선 목소리 높아=정부가 추진하는 유효경쟁 정책의 실효성 논란도 제기됐다. 후발사업자들은 현 경쟁체제가 지배적사업자의 입지만 강화한다며 유효경쟁을 위한 더욱 강력한 조치를 연중 내내 요구했으며 지배적사업자는 시장논리를 줄기차게 주장해 갈등을 벌였다.
특히 이동전화 시장의 비대칭 규제정책은 여전히 논란을 빚고 있다. 정부는 지난 3월 상호접속요율시 비대칭 규제를 실시했으나 효과가 미약한 것으로 나타났다. LG텔레콤 등은 SK텔레콤의 보조금 사용 규제, 신세기통신간의 합병 인가조건 이행여부 감시 등을 강력히 촉구했음으나 보조금 법제화를 제외한 나머지는 흐지부지됐다. 후발사업자들은 최근 SK텔레콤의 브랜드 가치 파괴를 위해 번호공동사용제 등을 주장하고 있다.
반면 SK텔레콤은 지배적사업자에 대한 과도한 규제는 하향평준화를 야기한다며 후발사업자 위주의 규제정책에 이의를 제기했다.
이에 정부는 통신시장 경쟁환경을 면밀히 분석해 내년초까지 새로운 통신서비스 경쟁정책을 수립할 예정이다.
◇투자축소 논란=통신사업자들은 막대한 이익창출에도 불구하고 투자에 게을리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특히 이러한 비판은 이동전화사업자들에 쏟아졌다.
이동전화3사는 cdma 1x EVDO 등 주력 분야에 일부 투자를 집중했으나 회사합병 등을 이유로 WCDMA 등 차세대 투자를 차일피일 늦췄다.
반면 KT를 비롯한 유선사업자들은 예정된 투자를 지속적으로 집행했으며 VDSL과 같은 차세대 투자도 서둘러 추진중이다.
이동전화사업자의 투자가 위축되자 정부는 이통3사를 중심으로 IT투자펀드를 결성하고 WCDMA 투자를 독려하기도 했으나 실효성은 미지수다.
◇해외시장 공략 시동=올해엔 국내 통신사업자의 해외투자가 본격화됐다. 하지만 초고속인터넷과 무선인터넷 플랫폼 수출을 제외하곤 별다른 성과를 올리지 못했다. 초고속인터넷은 월드컵을 계기로 해외에 널리 소개되면서 유망 수출품목으로 등장했다.
반면 한동안 활발했던 CDMA서비스 운영 등의 수출은 여전히 지지부진했다.
통신서비스산업의 특성상 해외진출이 용이하지 않으나 그래도 전혀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확인한 해였다.
◇3세대 서비스 기술 확인=투자가 지연되고는 있으나 월드컵을 계기로 3세대 이동서비스의 이전 가능성을 확인했다. 올초 2㎓ 대역 비동기식(WCDMA) IMT2000 서비스가 기술적으로 구현이 어렵다는 주장이 통신사업자들로부터 대두됐으며 양승택 장관도 이 견해를 지지해 WCDMA 서비스가 무한정 연기될 듯했다. 그렇지만 산업발전협의회 등이 조직 및 기술개발 현황 등을 점검했고 KT아이컴이 시연에 성공해 기술논란을 완전히 종식시켰다.
<신화수기자 hsshin@etnews.co.kr>
■올 정보통신업계 사람들
올해 통신산업계에서 가장 관심을 모은 인물은 이상철 정보통신부 장관이다. 이 장관은 배순훈·남궁석 전 장관에 이어 대기업 CEO 출신으로 정통부 장관이 된 인물로 정통부 장관을 하려면 대기업을 거쳐야 한다는 말도 나돌았다. 이 장관은 취임하자마자 IT펀드 결성 등 통신사업자의 IT투자 확대를 이끌어내고 KT민영화의 뒷수습을 끝내는가 하면 디지털콘텐츠산업 육성, 유비쿼터스코리아 비전제시 등의 성과를 통해 6개월짜리 장관이라는 말을 무색케 했다.
이 장관이 어느 정권이 들어서도 IT분야에서 중용될 인물이라고 평가를 받고 있다.
양승택 전 장관은 그간 의욕적으로 추진한 비대칭 규제(통신3강), IMT2000 정책이 사실상 실패로 돌아가는 것을 지켜봐야만 했다. 재임기간 정통부 간부들과의 잦은 마찰도 구설수에 올랐다. 하지만 임기종료를 앞두고 산자부와의 통합에 대해 ‘하향평준화할 수 없다’는 발언으로 정통부 관료들로부터 박수를 받았으며 2004년 ITU 부산유치위원장으로 활약하는 등 IT전도사로서의 활약에 대한 기대가 높아졌다.
이용경 KT 사장과 이경준 KTF 사장은 이상철 장관의 입각으로 인해 CEO의 자리에 올랐다. 이용경 사장은 민영 KT의 초대 수장이라는 타이틀과 함께 한국의 통신산업을 주도하는 인물로 부상했다. 따라서 그가 향후 1∼2년간 어떤 성과를 보이는 것에 따라 통신산업계의 그림도 달라질 전망이다.
이경준 사장은 우체국 말단 공무원 출신으로 박사 출신이 즐비한 대형 통신업체의 CEO 자리에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로 화제를 모았다. 이 사장은 조영주 KT아이컴 사장과 함께 회사합병을 순조롭게 진행시키고 있으며 ‘청바지 입는 CEO’로서 공기업 이미지를 씻는 데 앞장서고 있다.
박운서 데이콤 부회장은 하나로통신과의 지리한 파워게임 끝에 결국 파워콤을 인수해 실력을 만천하에 과시했다. 물론 박 부회장의 막강한 산자부 인맥에 따른 것으로 평가되고 있지만 어쨌든 박 부회장은 이번 인수로 통신LG의 최고 실력자로 부상했으며 통신업계내 파워도 막강해졌다.
반면 신윤식 하나로통신 회장은 역점을 둔 파워콤의 인수실패로 통신업계 리더로서의 입지마저 흔들리게 됐다. 신 회장은 이달중 대표이사 사장을 임명하고 경영일선에서 사실상 물러날 예정이다. 그렇지만 ADSL시장 선도 등 신 회장이 그간 보여준 성과에 대해선 긍정적인 평가가 높으며 향후 행보에 여전이 업계의 이목이 집중됐다.
표문수 SK텔레콤 사장은 KT 지분인수로 올 한해 혹독한 시련을 겪었다. 표 사장은 전격적인 지분인수로 화제를 모았으나 그 과정의 말바꾸기와 독점가능성에 대한 비난이 쏟아졌으며 정부와 업계의 고강도 압박에 시달렸다. 결국 KT와 주식맞교환에 합의해 표 사장에게 KT 지분인수는 올해 잊고 싶은 일이 됐다. 반면 사상 최대의 실적은 큰 위안거리다.
통신업계에서 올해 추락한 대표적인 인물은 오상수 전 새롬기술 사장이다. 벤처신화를 열었던 오 사장은 친인척 비리, 방만한 경영 등으로 결국 사장자리를 내놓게 됐으며 구속수사를 받고 있다. 오 사장의 몰락은 특히 벤처 1세대의 몰락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정보통신팀>
관련 통계자료 다운로드 가전통신서비스 매출액(2002년 1월~8월 누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