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다시 이공계를 생각한다

◆고은미 IT리서치부장

 수능점수가 발표됐다. 또다시 입시 경쟁이 치열할 것이다. 수능이 치러지고 대입 합격자가 발표될 때쯤이면 씁쓸함을 감출 수가 없다. 우수학생들의 전공편중현상이 매년 되풀이되기 때문이다. 법대·의대를 나와야만 앞길을 보장받을 수 있는 것처럼 ‘돈 되는 학문’에 대한 인기는 식을 줄 모른다.

매년 학력 저하를 경험한다는 일선 공대 교수들은 이맘때가 되면 더 우울해진다고 한다. 내려가기만 하는 공대 지원학생들의 성적이 올해는 얼마나 더 떨어질 것인가, 의과대학과의 차이는 얼마나 더 벌어질 것인가, 대학원 정원은 채울 수 있을까, 어렵지만 꼭 필요한 전공강좌에는 학생이 몇 명이나 들 것인가 하는 문제로 근심걱정이 끊이질 않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서 이공계를 걱정하는 소리가 들린 지 꽤 되었다. 그렇지만 아직 해결책이 나오지 않았다. 다시 이공계가 걱정이다. 우선 대입수능 자연계 응시자가 96년 35만명에서 올해는 20만명 이하로 급감했다. 이공계 대학 경쟁률은 지난해 이미 1대 1 이하로 떨어져 산술적으로는 누구나 원하면 대학에 가는 세상이 되었다. 청소년의 장래 희망으로 의사나 변호사처럼 돈 잘 버는 직업이 많고 과학기술인 희망자가 적은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어려운 공부를 하고 나서도 자아실현의 길이 막혀 있다면 누가 이공계로 진학하려고 하겠는가. 설사 좋아서 공과대학에 진학하더라도 그후의 좌절로 공대 공부를 한 우수한 학생들이 사법고시를 보겠다고 고시촌을 기웃거리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이공계는 정말 설 자리가 없는 것인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먼저 국가는 과학기술에 대한 장기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과학을 하는 사람에게 부와 명예가 함께 주어지는 사회풍토가 조성되지 않는 한 우수인력을 확보할 가능성은 희박하기 때문이다. 훌륭한 교육을 받은 이공계 인재들이 사회에 나가서 다른 전문직이 받는 경제적 보상보다 불리한 대우를 받지 않도록 기업과 사회가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대통령이 과학입국을 부르짖으며 빈번히 대덕단지를 드나들던 70년대와 대통령은커녕 주무장관 얼굴보기도 어려운 90년대 이후 우리의 과학기술단지는 어떻게 되었는가.

 “그때는 고달파도 과학인의 긍지와 보람이 있었는데 요즘은 편해도 힘이 빠진다”는 노 연구원의 자조는 무엇을 말하는가.

 다음으로 급한 것이 교육여건을 선진국 수준으로 갖추는 일이다. 우리나라 공대의 학생대 교수 비율은 40대 1이 넘는다. 주요 선진국에 비하면 2배나 높다. 실험기자재도 상당히 낙후돼 있다. 열악한 환경에서는 좋은 교육이 이뤄지기 어렵다.

 단기적인 것에 집착하기보다 장기적 연구과제를 진행할 수 있도록 연구환경도 변해야 한다. 퀄컴에 핵심기술을 의존한 채 6개월 단위로 겉모양만 바꿔대는 한국 휴대폰보다 2년 단위로 패러다임의 혁신적 변혁을 이루고 있는 노키아의 원천기술이 더욱 강력하게 시장을 지배하는 것이 IT시대에도 통하는 진리다.

 컴퓨터 전문가 안철수씨는 의대 출신이다. 만약 그가 의사 생활에 만족했다면 우리 정보통신기술은 지금같이 발전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유능한 의사도 필요하지만 정보통신이나 생명공학의 천재도 반드시 있어야 한다.

 “60, 70년대 과학기술자 우대정책과 청소년의 이공계 선망 분위기가 그후 한국의 고도성장을 낳았다. 그렇다면 현재의 이공계 기피현상 속에서 미래의 한국 모습을 예측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미국의 ‘더 사이언스’지가 진단한 한국 과학기술의 미래다. 걱정스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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