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강에 도전한다](13)셋톱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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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5월 미국 뉴올리언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케이블TV 전시회 ‘케이블2002’. 여느 전시회와 별반 다르지 않은 분위기였지만 이채로운 플래카드 하나가 관람객들의 발길을 붙잡았다. ‘2000만대의 디지털 셋톱박스 공급’이라는 큼지막한 플래카드는 전시회 내내 화제가 되었다. 이를 내건 주인공은 다름 아닌 모토로라였다. 휴대폰 업체로 잘 알려진 모토로라가 디지털 셋톱 시장의 선두업체임을 세상에 과시하는 상징적인 신호였다.

 비슷한 시기에 한국에서도 의미심장한 행사가 열렸다. 장소는 경기도 분당 8층 건물의 휴맥스 벤처 빌딩. 행사는 지난 4월 말 휴맥스의 영국법인 휴맥스일렉트로닉스가 영국 여왕이 수여한 ‘퀸 어워드’상 수상을 자축하기 위한 자리였다. 휴맥스 영국법인은 국제무역·혁신·개발 등 3개 분야로 나눠 수여하는 36년 전통의 퀸 어워드 중에서 국제 무역 분야의 상을 수상한 것이다.

 이는 휴맥스 브랜드를 해외에서 처음으로 인정한 공식적인 사례라는 면에서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수상을 계기로 휴맥스는 앞으로 5년 동안 영국 왕실의 왕관이 새겨진 엠블렘을 제품에 부착해 판매할 수 있게 된다.

 휴맥스와 모토로라, 사실 휴맥스는 모토로라와 덩치뿐 아니라 브랜드에서도 비교 대상이 되지 못한다. 지난 해 매출 규모는 모토로라가 300억달러인데 반해 휴맥스는 2억4000만달러 수준이었다. 지난 28년에 창업한 모토로라는 45개 국가에 1100개 사업장, 70여 곳에 생산 기지를 갖추고 있지만 89년 설립된 휴맥스는 300명의 직원, 7개 현지법인, 2곳의 생산 기지를 두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디지털 셋톱 분야만 놓고 보면 이야기가 다르다. 휴맥스는 알다시피 셋톱박스 한 제품으로 유럽 시장을 석권한 우리나라의 대표 벤처기업이다.

 지난해 3151억원의 매출과 887억원의 순익을 기록한 휴맥스의 매출과 순이익 증가율은 단연 돋보인다. 99년 이 후 연평균 100%라는 경이적인 실적을 올렸다. 벤처 종사자뿐 아니라 일반인에게도 휴맥스는 이제 새로운 신화로 자리잡았다.

 소매(리테일) 시장에서는 더 이상 맞수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세계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다. 셋톱박스 시장은 크게 방송사에 대량으로 공급하는 사업자 시장과 개인 소비자에게 직접 물건을 파는 소매 시장으로 나뉜다. 물론 방송사 시장 규모가 휠씬 크다. 전체 시장에서 소매 상품이 차지하는 비중은 20% 정도이다.

 유럽 내 다섯 가구 중에서 한 가구는 휴맥스 셋톱박스를 구매했다는 얘기다. 지난 해 휴맥스가 생산한 제품 가운데 90% 이상을 개인에게 팔았다. 소매 시장은 물량은 적지만 개당 판매 단가와 이윤이 높다.

 모토로라는 어떤가. 모토로라의 지난해 전체 매출액은 300억달러. 이 중 셋톱 박스를 포함한 광대역 사업부에서 올린 매출은 28억5500만달러이다.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규모는 비록 작지만 디지털 케이블용 셋톱시장에서는 확고부동한 리딩 업체다.

 세계 디지털 케이블 시장에서 70% 이상을 차지하는 북미 시장에서 최대의 시장 점유율을 지키고 있다. 미국 시장에서 사이언티픽애틀랜타(SA)가 최대 경쟁자지만 기술력이나 실적 면에서 모토로라를 따라 오지 못하고 있다. 모토로라의 강점은 셋톱뿐 아니라 브로드캐스팅 관련 종합 솔루션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케이블 모뎀·멀티미디어 플랫폼·디지털 케이블·위성방송 전송 플랫폼까지를 모두 지원한다. 모토로라의 주력 셋톱 모델인 ‘DCT 시리즈’은 양방향 서비스와 게임·전자우편·채팅·주문형 비디오(VOD) 등 셋톱박스보다는 일종의 ‘만능 컴퓨터’에 가깝다.

 모토로라가 이 제품을 주력으로 디지털 셋톱 분야에서 튼튼한 아성을 구축할 수 있던 것도 유무선 통신 분야에서 갈고 닦은 탄탄한 기술력이 한 몫했다. 시장 역시 소매보다는 사업자 중심으로 포진돼 있다. 미국은 물론 유럽·남미 중동 등 대부분의 방송 사업자가 모토로라의 주요 고객이다.

 두 기업은 주력 모델은 다르지만 한 가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바로 기업 경영의 최우선을 기술력에 두고 있다는 점이다. 기술력은 다름 아닌 사람이다. 모토로라의 기업 철학은 ‘인간 존중’이며 매년 연 매출의 최고 12%까지를 연구 개발과 사람에 투자하고 있다. 휴맥스는 전체 직원 300명 가운데 70%가 엔지니어이며 매년 15% 이상을 개발비에 쏟아 붓고 있다.

 불행스럽게도(?) 모토로라와 휴맥스는 아직 정면으로 맞부닥친 적이 없다. 타깃시장과 공격 대상이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년부터는 사정이 다르다. 먼저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개화하는 국내 디지털 케이블 시장이 두 회사의 최대 승부처다.

 여기에 휴맥스는 내년부터 미국시장 공략의 고삐를 바짝 쥘 계획이다. 그동안 다소 소홀했던 사업자 시장도 적극 진출한다는 전략이다. 휴맥스는 미국 시장에서 다소 취약한 브랜드를 만회하기 위해 이미 삼성전자와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주력 제품의 라인업도 디지털 위성 방송 중심에서 인터넷(IP) 셋톱박스, 홈 서버 등으로 새롭게 재편하는 상황이다.

 디지털 셋톱박스 시장은 지난 해 3400만대(62억달러) 규모에서 오는 2005년 9000만대(138억달러)로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할 전망이다. 지역별로는 유럽과 중남미 시장은 주춤한 대신 북미와 아시아태평양 지역이 주력 시장으로 떠오르고 있다.

 세계시장을 이미 평정한 ‘골리앗’ 모토로라와 셋톱 분야에서 이 자리를 넘보고 있는 ‘다윗’ 휴맥스가 과연 어떤 승부를 펼칠지 주목된다. <강병준기자 bjkang@etnews.co.kr>

 

 ◇휴맥스

 휴맥스(대표 변대규)는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답게 항상 화려한 수식어구가 따라 다닌다. ‘코스닥의 황태자’ ‘셋톱박스의 국내 대표 주자’ ‘벤처 기업의 성공 모델’ 등등. 하지만 휴맥스를 가장 잘 표현한 말은 아마도 ‘세계로 뛰는 벤처 기업’이라는 말이다. 전체 매출의 95% 이상을 해외에서 벌어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휴맥스의 성공 스토리는 지난 몇년간 성적표가 그대로 보여 준다. 지난해 매출은 3151억원, 순익은 887억원, 수출액은 2억2000만달러. 성장률은 더욱 경이롭다. 99%(98년), 91%(99년), 164%(2000년), 121%(2001년). 해마다 매출이 2배 정도는 늘어났다. 순이익 증가율은 이보다 더 높다. 98년 순이익이 전년 보다 320% 증가했다. 99년은 829%, 2000년 258%, 2001년은 142%다. 매년 순익이 몇 배씩 점프 업했다.

 90년 후반 국내에 벤처 붐과 맞물려 화려하게 전면에 등장한 휴맥스는 사실 10년이 넘은 중견기업이다. 휴맥스의 모태는 지난 89년 건인시스템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에는 셋톱박스와 관계없이 노래방 반주기 등을 생산하고 있던 ‘그저 그런’ 업체 중의 하나였다. 휴맥스는 주력 모델을 셋톱박스로 바꾸면서 일약 스타덤에 오르게 된다. 휴맥스 브랜드로 첫 셋톱박스가 개발된 것은 지난 96년. 당시 대부분의 국내업체가 아날로그 방식에 주력한 데 반해 휴맥스는 디지털에 승부를 걸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디지털 셋톱박스는 유럽과 중동 시장으로 날개돋친 듯이 팔려 나갔으며 97년에는 코스닥에도 성공적으로 안착했다. 이어 97년 영국, 99년 중동, 2000년 독일에 순차적으로 현지법인을 설립하고 탄탄한 해외 유통망을 구축했다. 당시 부품 재고가 없을 정도로 대박을 터뜨렸다. IMF 외환 위기로 리스크 경영을 염두에 둔 휴맥스는 몸을 가볍게 하기 위해 공장도 전격 매각했다. 미래기업의 승부처는 회사 규모나 생산 시설이 아니라 기술에 있다는 판단에서다.

 휴맥스는 올해를 기점으로 또 한 번의 변신을 모색하고 있다. 새로운 사업 모델을 구상중이며 전체 셋톱박스 시장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방송 사업자 시장을 개척하기 위해 심혐을 기울이고 있다. 올해 판매량의 30% 정도를 방송사에 공급할 계획이다. 이미 세계 곳곳의 방송사와 계약을 맺었다.

 ‘어제의 휴맥스는 없다’는 변 사장의 말처럼 미래를 위해 뛰는 기업 휴맥스는 또 한 번의 신화를 위해 세계 시장을 위해 힘찬 용트림을 준비중이다.

 

 ◇모토로라

 ‘세계적인 휴대폰 생산업체’

 모토로라(대표 크리스토퍼 갈빈)의 현주소를 단적으로 알려 주는 말이다. 하지만 모토로라는 단순한 휴대폰 업체가 아닌 삼성전자와 같은 종합 전자그룹이다. 반도체부터 무전기와 휴대폰 등 통신 단말기, 위성과 무선 통신시스템까지 다양한 제품 라인업을 가지고 있다. 일반인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모토로라가 세계 정상을 고수하는 사업은 따로 있다. 사실 휴대폰은 판매 규모 면에서 2위 수준이다.

 하지만 내장형 컨트롤러, 자동차용 반도체, 개인용 무전기 분야에서는 부동의 세계 정상이다. 여기에 디지털 셋톱박스 시장에서도 세계적인 기업으로 명성을 얻고 있다.

 매출 규모를 놓고 보면 셋톱박스를 포함해 광대역 사업부(BCS) 매출이 지난 해 30억달러로 전체의 10%에 불과했다. 하지만 셋톱은 대표적인 디지털 품목으로 광대역 시스템과 함께 모토로라가 미래에 역점을 두는 사업이다. 모토로라는 매년 연매출의 10∼12% 정도를 이 분야 연구 개발비로 쏟아 붓고 있다.

 모토로라는 기업의 연혁 자체가 통신의 역사라 불릴 정도로 이미 자타가 인정하는 다국적 기업이다. 모토로라는 1928년 폴 갈빈에 의해 설립됐다. 갈빈은 총 자본금 565달러로 종업원 다섯 명과 함께 시카고에 갈빈 제조회사를 창업하고 당시 배터리로만 작동하던 라디오를 가정용 전기로 직접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정류기(Eliminator)를 개발했다. 1930년대 자동차용 라디오를 개발, ‘모토로라’ 라는 상표로 판매한 이 후 1947년부터 회사의 이름으로 이를 사용했다. 2차 세계대전 중에는 군사 통신에서 없어서는 안 될 휴대형 핸디토키·워키토키와 같은 무선 통신기기를 개발해 연합군의 승리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이어 1950년대 말 미국 애리조나 주에 반도체 제조 공장을 설립했으며 1960년대에는 모토로라가 미국 우주개발 프로젝트에 적극 참여하게 됨에 따라 많은 우주선의 통신장비와 설비를 개발했다. 1969년 처음 달 착륙에 성공한 닐 암스트롱이 이용했던 통신장비가 바로 모토로라의 작품이다. 1970년대 중반에는 컬러TV·오디오기기 등의 가전제품 분야를 과감히 정리하고 기술 집약도가 높은 통신산업 분야에 기업의 역량을 집중시켰다.

 미국 시카고 근교의 샴버그에 본사를 둔 모토로라의 총 매출액은 2001년 기준 300억달러로 세계 45개국에 1100개 사업장, 17개국에 70여개의 생산기지를 두고 있다. 현 경영자인 크리스토퍼 갈빈은 1998년 취임했으며 ‘모든 제품을 디지털로’라는 모토를 기치로 아날로그에서 디지털 기반으로 주력 제품군을 새롭게 바꿔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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