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통신의 미래를 생각하는 모임>벤처기업의 위기극복 방안

 

 국내 정보기술분야 산·학·관·연 전문가 모임인 ‘정보통신의 미래를 생각하는 모임(회장 한상기 벤처포트 사장)’ 11월 월례 조찬토론회가 29일 오전 7시 서울 강남 리츠칼튼호텔에서 열렸다.

 벤처기업 및 벤처캐피털 분야 전문가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이날 토론회에서는 문규학 소프트뱅크벤처스코리아 사장(벤처의 공식을 다시 만들자)과 김홍선 시큐어소프트 사장(벤처 위기의 극복을 위하여)이 주제발표를 통해 최근 벤처위기와 해결방안을 제시했다.

 최근 국내외 기업환경의 달라진 점과 벤처 및 벤처캐피털의 위상변화 및 대응방안과 문제점 등을 놓고 진지한 토론을 벌인 주제발표와 토론내용을 요약한다.

 

 ◇안철수(안연구소 사장)=국제통화기금(IMF) 때도 요즘과 같이 기업들의 영업환경은 좋지 못했다. 많은 노력에도 한계를 느꼈던 시기였다. 따라서 역량강화를 위한 R&D에 주력했고 이러한 생각이 맞아떨어져 99년에는 매출이 4배나 뛰어오르는 성과를 거뒀다. 불황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지금도 마찬가지라고 본다. 그러나 앞으로도 기회는 있다고 생각한다. 요즘은 우수한 IT고급인력을 구하기 쉬워졌다. 고급인력을 확보해 미래를 대비할 수도 있고 고성장시절을 지나온 직원들이 많다면 내부 분위기를 추수릴 수 있는 계기도 마련할 수 있다.

 ◇박기순(아라리온 사장)=매출위주로 회사의 가치를 평가하는 풍조가 만연해 있다고 하지만 전문경영인 입장에서 보면 곤란한 점도 많다. 사실 대부분의 등록기업은 주주들의 시선 때문에 매출을 무시할 수 없게 된다. 매출을 올려야하기 때문에 유통회사와 같은 형태로 변모하는 회사도 코스닥시장에는 충분히 많다. 또 최근 벤처위기의 원인인 다수의 플레이어와 관련, 남들이 하니까 나도 한다는 식의 개발경쟁은 사실 왠만한 기업에서 이를 무시한다는 것이 오히려 이상할 정도다. 자본문제도 있고 매출도 신경써야 하기 때문에 중지하기가 어렵다. 이런 위기를 넘길 수 있는 방법이 뭐냐는 문제는 공허한 외침일 수 있다. 방법론 측면에서 문제가 많기 때문이다. M&A가 대안이라고 하지만 대주주의 결단이 무엇보다도 필요하다. 시장 전체적으로 플레이어의 과잉이 문제가 된다면 M&A를 유도해야 하는데 보편타당한 잣대를 가진 전문가들의 존대가 시급해진다. 정부도 관련기관도 이런 문제를 숙고하고 있을 것이다.

 ◇장인경(마리텔레콤 사장)=한창 한국에서 기업을 할 때 왜 코스닥에 가지 않느냐고 질문을 많이 받았다. 글로벌 마켓에서 활동하고 싶다는 취지에서 미국시장을 택했지만 사실 처음부터 주눅이 든 상태였다. 물론 많은 고생을 했지만 현재 얻은 값진 교훈은 우리가 피상적으로 알고있는 미국과는 실상이 다르다는 것이다. 먼저 우리는 하이테크 컴플렉스에서 벗어나야한다. 단적인 예로 모뎀을 들 수 있다. 사실 거대한 시장이라는 미국은 모뎀사용자가 70%가 넘는다. 우리가 3∼4년 전에 가치없다고 버린 기술이 아직까지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시선으로 보면 이해할 수 없을지 모르겠지만 미국에서 개발하는 애플리케이션을 어쩔수없이 모뎀속도에 맞춰 개발하고 있는 실정이다. 때문에 막연하게 가졌던 강대국이나 하이테크 컴플렉스를 탈피하고 우리의 수준을 뒤돌아보게 됐다.

 우리가 지금까지 알던 미국은 자본과 체제면에서 상당히 견조한 틀을 갖추고 있는 것으로 이해했다. 투명한 기업경영과 광대한 소비시장, 효율적인 분배구조와 보편적인 가치체계 등등일 것이다. 그러나 미국도 이런 견조한 틀이 한번 깨지기 시작하니까 우리보다 못한 경우도 많이 발생하고 또 우리보다 못하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우리의 초고속 정보통신망이면 세계 최고 수준이다. IT응용기술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약간의 서비스만 묶는다면 좋은 결실을 갖출 수 있는 기술이 많다. 날마다 하이테크에 대한 드림만 생각해 진짜 시장을 잃어서는 안된다. 슈퍼하이테크가 아니더라도 조금 지난 기술도 통용되는 진짜 컨슈머 시장은 미국에도 많이 비어 있다.

 사실 한국에 초청되는 유명 컨설턴트나 전문가들은 미국시장의 70%가 모뎀을 사용한다는 사실을 잘 말하지 않는다. 하이테크와 미래를 위주로 말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미국이 최고로 잘하는 것과 우리의 최고를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리얼마켓대 리얼마켓으로 맞닥트려 놓고 판단을 해야 한다.

 벤처캐피털도 이런 상황을 주시했으면 좋겠다. 지금 실리콘밸리에 백인자본은 없다는 것이 정설이다. 자금의 공백을 중국계 자본이 메우고 있다. 중국계 사람들은 살아남기 위해서 유지하는 차원에서 회사를 매입해 운영하는 상황이다. 과거 수백만달러, 수천만달러 하던 기업매물이 하루가 멀다하고 헐값에 나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미래를 생각한다면 미국기업들을 대상으로 투자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서진구(코인텍 사장)=작금의 IT산업 위기는 발전속도가 너무 빨랐기 때문이라고 본다. 서두르면 실수를 많이 하게 되는데 현재의 부작용이나 실수가 어쩌면 당연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주제발표에서도 언급됐듯 90년대 후반 코스닥 시장은 업체를 유치하기에 급급한 실정이었다. 진입장벽이 낮을 수밖에 없는 것이 당연하고 검증되지 않은 아이디어를 가지고 등록된 기업들도 적지 않다. 시장의 메인스트림이 아니었기에 시장을 쫓아가는 업체들이 많아진 것은 당연하고 실제로 모순된 상황이 연출된 것이다. 지금 현상황에서는 벤처기업들도 뭔가를 해야 한다. 기술위주의 경영에서 일반 경영적인 메커니즘으로의 전환도 필요하다. 관계기관들도 신상필벌의 제도를 정착시키는 것이 시급하다. 정해진 룰을 지키지 않았을 때 반드시 제재가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주지시켜 장외기업이나 향후 코스닥 등록을 시도하는 기업들의 타산지석으로 삼게 해야한다. 이런 과정을 거쳐서 자연스럽게 정화되는 선순환이 이루어질 것이다.

 플레이어가 너무 많은 상황에서 요즘 논의가 활발하게 되고 있는 M&A에 있어서도 당사자인 두 기업간에 포지션을 다소 유지해 나가면서 M&A가 이루어지는 방법이 없다.

 ◇문규학(소프트뱅크 벤처스코리아 사장)=M&A는 결국 시장논리로 귀착된다. 우리보다 법률이 치밀한 미국에서 M&A가 잘 이루어지는 것은 성공한 기업들이 자신의 과거에 비춰 유망한 아이템을 사들였기 때문이다. 과거 개발한 경험과 비용과 아이템을 매입하는 것을 저울질해 비용절감 효과가 많다는 경험이 기반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 성장한 벤처기업이 전략적인 견지에서 M&A를 따져볼 겨를이 없이 시장이 무너졌기 때문에 M&A가 효율적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문제는 과거 인텔이나 시스코 등과 같은 역할을 담당할 기업들이 그렇게 많지 않다는 사실이다. 우리나라도 M&A시장을 견인할 수 있는 스타플레이어가 필요한 시점이다.

 ◇한상기(벤처포트 사장)=문제는 M&A를 원하는 기업은 많지만 M&A를 할 기업이 많지 않다는데 있다. 살 사람이 없다면 거래는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다. 현재의 상황이 지속된다면 더더욱 그렇다. 때문에 비슷한 업종을 묶는 결합(consolidation)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얼마전 벤처기업 흥망사에 대해 관심이 많아 외부에 기고를 한 적이 있다. 이유가 뭔가를 곰곰히 생각해 보기도 하고 업계 관계자와 의견을 나눈 결과 결론은 경험부족이라는 것이다. 특히 인사문제는 심각하다. 좋은 인력을 확보하는 것은 운영을 효율적으로 하느냐와 직결된다. 하지만 코스닥에 빨리 진출하기 위해 사람을 늘리고 이런 아마추어리즘이 시장을 왜곡시키는데 공헌을 했다. 또 금융가이드들의 잘못도 있다. 사실 벤처기업의 경영인들은 이들의 금융논리에 의해 감염이 잘되는 속성이 있다. 벤처위기의 한 원인도 이런 이유에서 찾을 수 있다.

 ◇문규학=금융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다는 미국의 경우도 벤처캐피털이 설립될 때만하더라도 경제의 허약성이 있었다. 다만 역사가 쌓이면서 잘하는 사람과 솔직한 사람, 블랙리스트에 오른 사람의 이름표가 쌓인 것이다. 초기에는 벤처투자 받아 다른 사업하는 사람들도 많았고 심지어는 야반도주하는 사람들도 있었다고 한다. 다만 오랜 연륜이 쌓이면서 나름대로의 노하우와 인적 리스트가 갖춰진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이런 문제는 해결될 것이다.

 단 벤처기업가 중에서 야후의 설립자인 제리양이 새삼 존경스럽다. 95년 회사를 설립해 한때 주식가치가 100조에 이를 정도로 엄청난 부를 축적했음에도 주식을 팔지 않았다. 지금도 털털거리는 차와 투베드룸에서 전전하면서 회사에 무슨일이 있으면 밤에 나와서도 일을 할 정도로 벤처정신이 투철하다. 이런 젊은 친구들의 기저에 깔려있는 건강한 정신이 있으면 기업과 벤처산업은 든든하게 유지되는 것이다. 한국도 이런 건강한 설립자가 필요한 시점이다.

 ◇김홍선(씨큐어소프트 사장)=앞서 M&A가 제대로 되지 않는 이유가 많이 언급됐다. M&A는 결국 자신이 단순 종업원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을 때 파워가 난다. 회사의 역량을 키우기 위한 의지가 있는 사람들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문화가 전혀 다른 조직이 합쳐질 때 제대로 될 리가 없다. 또 경영자의 입장에서는 합치려는 기업의 특정아이템을 제외한 다른 부문은 어떻게 할 것이냐, 그것의 가치는 어떻게 조정할 것이냐가 곤란한 문제다.

 사실 우리문화의 패러다임은 이미 미국것을 대부분 수용했다. 현재의 시점은 시장을 보면서 글로벌하게 기업을 운영하는 방법밖에는 없다. 국내 위주의 시각에서 벗어나 글로벌마인드를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 소수의 종업원으로도 몇개의 나라를 거래하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서진구=극단적이기는 하지만 내수위주의 기업을 기업이라고 볼 수 있느냐의 문제도 있다. 기업은 시장이 존재해야 하는데 우리나라의 시장규모를 봤을 때 최근의 상황은 기업의 목적이 글로벌화에 있지 않으면 기업이라고 정의할 수 없을 것이다. 중국의 경우라면 다를지 모르겠지만 결국 우리의 입장에서는 내수위주의 사고방식은 곤란하다고 볼 수 있다.

 ◇한상기=벤처의 정의를 다시 세워야 할 시점이다. 특히 코스닥은 벤처의 카테고리안에 있으면서 외국것을 들여다 판매하는 유통사들이 벤처인 기업이 많은 상황이다. 벤처가 너무 확대됐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유망한 아이템을 갖추고 도전하는 기업이 진짜 우리가 키워야할 벤처인 것이다. 유통사들은 성장성있는 중소기업일 뿐 벤처는 아니라는 생각이다.

 ◇하원규(한국전자통신연구원 IT정보센터장)=IT는 거대한 패러다임의 전환 시기에 있다. 잘만 도전하면 오히려 기회를 잡을 수도 있다. 과거 사이버코리아니 e코리아도 패러다임의 변화를 잘 이용한 케이스로 볼 수 있다. 현재 PC만을 놓고 본다면 지금까지 PC시장이 비PC 분야로 전환되는 시점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여기에 네트워크가 접목될 경우 단말기 시장이 10배 이상은 커질 가능성이 크다. 앞으로의 5년에 대비해 강한 상상력을 발휘하면 100배 이상의 성장을 거둘 수도 있다. 이런 상황은 새로운 정부가 관심을 갖는다면 충분하다고 본다.

 ◇안철수=원론적이라고밖에 볼 수 없지만 현재로서는 4∼5년 이후를 대비한 장기적인 포석만이 대안이라고 할 수 있다. 회생방안을 논의한다고는 하지만 조급한 회생방안은 있을 수 없다는 생각이다. 이것은 벤처캐피털은 물론, 정부와 업계가 풀어야할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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