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경제의 더블딥(짧은 경기회복 후 재침체) 가능성, 대이라크 전쟁이 야기할 악영향, 가계대출 급증, 기업투자 부진….
국내 경기전망에 먹구름을 드리우는 부정적 변수들이 안팎에 널리면서 또 다시 경제위기론이 횡행하고 있다. 벌서부터 위기론의 조짐들도 보인다. 기업들은 저마다 ‘불투명한 상황’에 대비해 돈모으기에 들어갔고 이 여파로 증시붕괴 움직임은 물론 상당수의 중소·벤처기업들은 그야말로 고사직전이다. 이처럼 투자는 유보하고 현금확보를 우선시하는 악순환이 진행될 경우 국가경제는 정말 회복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를 것으로 보는 시각도 적지 않다. 최근 대기업의 책임론이 강하게 대두되는 것도 이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그 중에서도 올 상반기 사상 최대의 순익을 기록한 삼성은 현재의 국내 경제상황을 비쳐볼 때 여러가지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첫번째 이유는 삼성이 바로 현재 국내경제에 팽배한 비관론의 진원지라는 점이다. 삼성은 이미 내부적으로 내년도 세계 경제전망을 극히 부정적으로 상정해 최악의 시나리오를 준비중이다. 이건희 회장이 비용감축 및 구조조정을 통한 긴축경영으로 최대한 현금을 확보하도록 계열사 사장단에 주문한 것도 같은 배경이다. 이를 뒷받침이라도 하듯 삼성은 경제연구소를 통해 지난 상반기부터 어두운 경기예측을 선도(?)해왔다. 덕분에 LG·SK·현대자동차 등 여타 대기업집단들도 줄줄이 안정기조의 내년도 사업전략에 동참하고 있다. 재계의 ‘선행지표격’인 삼성이 적지 않은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대목이다. 그러나 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준비경영을 강조하는 삼성의 움직임이 단순히 기업경영 철학이나 대외 여건 때문만은 아닌 것으로 주변에선 보고 있다. 연말 대선에서 정치자금을 둘러싼 조심스런 처신과 구조조정을 빌미로 한 차기 후계구도 인선작업도 맞물려 있다는 것이다.
두번째는 우리나라 경제에서 차지하는 삼성의 양적 비중이다. 단일 계열사에 불과한 삼성전자의 경우 지난 상반기 순익이 무려 3조8000억원으로 전체 510개 상장사 순익(17조여원)의 22%를 넘어섰다. 삼성전자 하나가 벌어들인 수익이 내로라하는 100여개 기업의 순익과 맞먹는 셈이다. 시가총액도 무려 44조여원에 육박한다. 2위인 SK텔레콤과는 배 이상 차이가 나고 상위 10개사 전체의 32%를 웃돈다.
이 정도면 싫든 좋든 대한민국 대표라는 삼성의 자평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그 돌파구를 찾을 책임도 ‘유독’ 삼성에만 강하게 주문하는지도 모르겠다. 특히 정보기술(IT) 업계에서 삼성은 수출과 투자의 양대 버팀목 역할을 해왔다. 근래 몇년간 우리나라가 IT강국의 위상을 심게 된데도 삼성의 지대한 공헌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다행히 긴축경영 기조속에서도 삼성은 전자부문을 중심으로 내년도 연구개발(R&D) 투자를 올해보다 20% 가량 늘린 6조원대로 책정했다고 밝혔다. 경기가 어렵더라도 향후 5, 10년을 내다보며 미래 수종사업을 발굴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하지만 이 정도의 ‘내 집안 챙기기’로는 왠지 부족하다는 느낌이다. 세계속의 IT 대표 브랜드로서 침체의 늪에 허덕이는 국내 IT업계의 또 다른 견인차 역할을 촉구하는 것이다. 이는 방만한 시설투자를 의미하는 게 아니다. 지금의 삼성이 IT업계 전반의 토양을 공유해 자랐다면 역시 공동의 IT 수종사업을 위해 나름의 선도적 역할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세계유력 이동전화 단말기 제조업체인 노키아는 핀란드를 목재로 상징되던 전통산업 국가에서 IT강국으로 단숨에 끌어올렸다. 핀란드 국민들이 갖는 노키아에 대한 자부심을 지금 삼성에 기대하는 것은 위기에 처한 국내 IT업계의 순진한 주문일까.
<김경묵 경영기획실 부국장 kmkim@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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