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산업은 높은 전문성을 가진 분야다. 사용되는 약품이나 장비가 다양하고 복잡해 구매업무를 담당하는 인력의 전문성이 필요하다. 구매업무는 실수요자인 의사를 포함해 구매과, 의공학과, 진료과, 원무과, 총무과 등 다수의 부서가 관여하고 있다. 재고관리를 실사용 부서와 계약부서, 관리부서가 개별적으로 수행하고 있어서 리드타임이 길고 효율성이 떨어진다. 또 정보화 기반시설이 구매과정에 적용되지 않아 구매신청에서 입찰에 이르는 과정이 수작업으로 이루어진다.
뿐만 아니라 병원은 약품, 특수장비, 시약, 식료품에 이르는 다양한 품목을 구매하지만 소량구매 특성으로 규모의 경제를 기대하기 어려워 비용절감의 효과를 얻기 힘들다는 게 중론이다.
이같은 상황에서 서울대병원 구매과의 경우 순환보직 형태로 업무를 수행했기 때문에 전문성이 결여될 수밖에 없었다. 또 구매정책 수립 및 구매업무 수행과정에서 자체적인 시장조사를 통해 정보를 취득하기보다는 업체정보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았다. 더욱이 제약, 의료장비, 의료재료 업체가 병원 납품과정에서 지급하는 리베이트는 투명하지 않은 병원의 구매관행을 대변한다.
서울대병원은 정부로부터 감사를 받는 특수기관이기 때문에 감사를 위한 형식적인 업무가 많아 업무의 비효율성이 더한 실정이었다. 따라서 변화하는 진료환경에 대한 대책의 일환으로 국가 중앙병원으로서 인터넷 등 차세대 의료정보기술 활용을 통한 의료서비스 개선과 공공복지 증진을 다각적으로 모색해 왔다. 이를 위해 지난 2000년 3월, 서울대병원 e비즈니스에 관한 세미나를 시작으로 6월부터 B2B 전자상거래 구축을 위한 외부자문을 의뢰했다.
서울대병원은 자문결과를 토대로 병원 내외부에 뿌리깊게 자리잡고 있던 관행을 규정하고 부정적인 관행들의 제거를 통해 수익구조를 개선한다는 판단아래 B2B 전자상거래를 도입키로 했다. 서울대병원의 구매대행 아웃소싱을 맡고 있는 이지호스피탈이 출범한 것도 이때다.
전자상거래를 통한 구매대행 결과 일부 품목은 더 비싸게 구매를 한 경우도 발생했지만 대부분의 품목은 이지호스피탈을 도입하기 전보다 싸게 구매할 수 있게 됐다.
이지호스피탈이 지난 1월부터 서울대병원에 대한 구매대행을 실시해 6월까지 317억원의 누적 구매대행액 중 약 218억원의 실제 구매계약 성사를 이뤄 약 69%의 계약성사율을 보였다. 이는 구매 금액면에서는 서울대병원 측이 추정한 구매금액인 231억원의 94.4% 수준으로 5.6%의 구매금액 절감효과를 이끌어 낸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8월에는 서울대병원의 구매과가 없어지고 전체 구매비용의 3%를 차지하는 구매과 직원들에 대한 비용이 다른 업무의 효율성 제고를 위한 활동에 이용될 수 있게 됐다.
구매과의 폐지가 의미있는 성과이긴 하지만 성공적인 e마켓플레이스 정착을 위해서는 여전히 풀어야할 일들이 남아있다. 실거래가 상환제와 같은 정부의 정책이 수요와 공급에 의해 가격이 정해지는 시장 메커니즘을 저해하고 있고 제약업체나 도매상 등 이해당사자들의 이권싸움이 지나치게 과열돼 있다. 특히 이들 중 여전히 거래가 투명해지길 원하지 않는 다수가 분명 존재하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현재 구축된 e마켓플레이스는 서울대병원의 기존 오프라인 거래 행태를 온라인상에 옮겨놓은 것에 불과해 병원간 공동구매를 통한 규모의 경제실현이나 이를 통한 병원의 비용절감, 공급사측의 구매선 다변화 등 B2B 전자상거래 본래 취지와는 아직 거리가 있는 상황이다.
이지호스피탈은 지난 9월로 출범 2년이 됐지만 설립당시 계획했던 서울 5대 병원이 참여하는 공동사업의 꿈은 이루지 못하고 있지만 내부적으로는 구매수탁 금액이 400여억원에 이르고 500억원 규모의 분당 서울대병원 장비 구매업무도 총괄하고 있다.
<주문정기자 mjjoo@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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