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인 더 뉴스>전자무역추진위원장 현명관

 “정부의 역할은 항상 수동적이어야 합니다.”

 지난 10일 공식 출범한 민간 전자무역추진위원회의 현명관 위원장(62)은 추진위와 정부간 긴밀한 협조체제를 강조하면서도 정부의 역할은 추진위의 활동을 측면에서 지원하고 보좌하는 수동적 입장을 견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본지 9월11일자 1·3면 참조>

  현 위원장의 대정부 발언은 계속된다.

 “사실 정부부처와 공무원의 역량은 민간기업의 경쟁력을 따라올 수 없습니다. 이제 공무원들도 군림하거나 계도하려는 자세를 탈피, 일선 민간기업을 향해 낮은 자세로 봉사하는 모습을 보여야 합니다.”

 현 위원장의 이같은 ‘날선’ 발언은 국가전자무역추진위원회의 국무총리실 산하 편입을 앞 둔 시점에서 위험수위를 넘나드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현 위원장은 전자무역의 추진 자체가 우리나라 경제분야 각 요소에 산재돼 있는 잘못된 제도나 후진적 관행을 세계화·정보화 시대에 맞게 고칠 수 있는 기회이자, 일종의 ‘구조개혁’임을 강조했다.

 추진위가 출범하기 전까지 국가전자무역의 활성화를 위한 핵심전략은 기존 수출입 프로세스의 완벽한 온라인화였다. 즉 거래알선에서부터 대금결제에 이르는 무역의 일반적 절차와 흐름을 그대로 온라인화해 놓는다면 전자무역은 바로 완성되는 것으로 생각됐다. 하지만 이같은 발상은 추진과정에서 ‘제도’와 ‘관행’이라는 암초에 걸리게 됐다. 선적서류, 신용장 등 수십종의 수출입 관련서류를 전자문서화해 온라인으로 완벽히 주고받을 수 있게 시스템을 구축해 놓아도 ‘원본 가져오라’는 지급은행의 말 한마디면 수십, 수백억원 들여 만들어 놓은 전자무역 시스템은 무용지물이 된다. 각종 수출입 관련 인·허가권을 갖고 있는 정부 각 부처와 관련 법규 및 제도 역시 첨단시스템으로는 넘을 수 없는 큰 벽이다.

 “의약품 수출입은 보건복지부·식약청, 농산물 수출입은 농림부 등 제품의 종류에 따라 관련 부처가 모두 다릅니다. 물류·운송은 건교부·해양부·해운항만청, 관세·통관은 관세청, 대금결제는 재경부 등과 같이 무역단계별로도 해당 관청과 법규가 수십개에 달하죠.”

 일견 불가능해 보일 정도로 산적한 과제가 많은 만큼 시간이 오래 걸리는 작업이라는 게 현 위원장의 설명이다. 따라서 장기간의 시간적 여유를 갖되 중간 중간 업종별·업체별 전자무역 성공사례를 만들어 나갈 계획이다. 현 위원장은 “모든 사업은 장기화되면 주위는 물론 자신도 쉽게 지친다”며 “프로젝트 추진과정에서 의도적으로라도 성공사례를 지속 발굴할 것”이라며 언론의 지속적인 관심을 당부했다.

 특히 현 위원장은 총리 임명동의안이 국회를 통과하는 대로 국가전자무역추진위원회의 총리실 직속 편제작업을 조속히 마무리할 작정이다. 이미 출범한 민간 전자무역추진위 산하 워킹그룹에서 분야별로 논의된 각 과제들이 범부처별로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전달되기 위해서는 총리실의 도움이 필수이기 때문이다. 또 현 위원장은 각종 법규와 제도의 통합적 개선을 위해 전자무역 촉진에 관한 특별법의 제정 여부도 적극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정부 각 부처의 획기적인 발상의 전환과 그에 따른 유기적 협조 없이는 전자무역의 실현은 요원하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현 위원장. 정부를 상대로 애정어린 고언을 마다않는 그 자신 역시 10년 넘게 국가의 녹을 먹었던 태생적 배경이 있다.

 66년 행정고시(4회) 합격후 부산시 시정과 근무로 시작된 그의 공무원 생활은 78년 감사원 부감사관 때까지 10년 넘게 계속됐다. 당시 삼성그룹 계열이었던 전주제지(현 한솔제지) 총무부장직으로 자리를 옮기고 나서도 얼마간은 공직을 떠난 것에 대한 회한이 교차했다는 게 현 위원장의 술회다. “공직자는 법과 대의명분에 따라서만 행동하면 됩니다. 하지만 민간업체에 나와 보니 내가 하는 업무의 원칙과 기준이 전혀 틀리더군요. 때로는 다소 법에 어긋나고 명분이 안서는 일이라도 회사의 이익을 위해서는 해야만하는 경우도 있습디다.”

 관 주도의 경제성장이 한창이던 20여년 전 당시 이미 현 위원장은 앞으로 우리 사회의 견인차 역할은 민간부문이 될 것임을 감지했다고 한다. “그게 공직을 그만둔 가장 큰 계기입니다. 또 생활인으로서 물질적 혜택에 대한 필요성도 절박했던 시기였죠. 예나 지금이나 공무원 하려면 자기 집이 좀 부자여야 한다고 생각해요.(웃음)”

 전주제지를 시작으로 삼성그룹에 입성한 현 위원장은 호텔신라와 그룹 비서실장을 거쳐 지난 97년부터 작년까지 삼성물산 대표이사를 역임해 왔다. 이때 현 위원장은 국내 인터넷·IT·벤처산업의 부침을 직접 체감했다. 당시 현 위원장은 ‘삼성물산은 무역업체가 아니라 인터넷기업이다’ ‘3년내 3000억원을 인터넷산업과 벤처기업에 투자하겠다’는 등의 발언으로 세상을 놀라게 했던 장본인이다. 실제로 이때 삼성물산내 많은 인터넷·IT관련 팀들이 분사했다. 그중에는 현재까지도 성장가도를 달리고 있는 곳이 있는 반면, 이미 문을 닫고 사리진 업체도 많다.

 “지금 생각해 보면 너무 낙관적으로 생각했던 것 같아요. 차분히 하나씩 풀어가야 했었던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하지만 인터넷·IT산업에 대한 기본적 소신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최근 다소 침체기를 보이고 있지만 산업경쟁력의 원천인 정보기술에 대한 관심과 투자는 지속돼야 한다고 봅니다.”

 현재 삼성그룹에서 현 위원장의 공식 직함은 ‘일본담당 회장 겸 라이온즈야구단 구단주’로 돼있지만 그룹의 경영일선에서는 한 발 물러나 있는 상태다. 그런 현 위원장이 전자무역 못지않게 최근 관심을 갖고 있는 게 있다. 바로 ‘제주도’다. 제주 성산에서 태어나 고교진학을 위해 단신 상경했던 섬소년 현명관은 지금껏 앞만 보고 달려왔다. 그 결과 ‘출세했다’는 얘기까지 듣는 자리에 도달했지만 ‘수구초심’, 언제나 마음속 한구석은 바다 건너 제주를 향해 있다. 지난 1월 국제자유도시포럼 공동대표를 맡게 된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좀 건방진 얘기지만 저만해도 이제 우리 사회의 ‘상류층’에 속합니다. 상류층 인사로서 국가와 사회에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다시금 생각해 봅니다. 전자무역의 추진을 전담하게 된 것 역시 지금의 저를 있게 해준 우리 한국경제에 대한 일종의 보답이자 환원인 셈이죠.”

 현 위원장의 ‘노블레스 오블리제’ 찾기 작업에 새삼 관심이 집중되는 대목이다.

  

 △41년 제주 출생 △59년 서울고 졸업 △63년 서울대 법학과 졸업 △66년 행시(4회) 합격 △67년 부산시 시정과 △68년 감사원 부감사관 △74년 일본 게이오대학원 경제학 석사 △78년 전주제지 총무부장 △81년 호텔신라 관리담당 이사 △89년 호텔신라 대표이사 부사장 △91년 삼성시계 사장 △93년 삼성종합건설 사장 △93년 삼성그룹회장 비서실장 △97년 삼성물산 총괄 부회장 △2001년 삼성물산 회장 △2002년∼ 삼성 일본담당 회장 겸 삼성라이온즈야구단 구단주

 <류경동기자 ninano@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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