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정대로라면 올 11월경에는 무선인터넷 표준플랫폼 ‘위피(WIPI)’를 탑재한 단말기를 볼 수 있게 된다. 각 이동통신사는 현재 협력업체를 통해 위피 규격을 수용한 플랫폼을 개발중이다.
하지만 위피를 탑재한 단말기가 출시된다 하더라도 플랫폼 표준화가 순조롭게 진행될 것인가에 대한 회의론을 쉽게 불식시키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이통사들이 시장에서 검증되지 않은 위피를 모든 단말기에 탑재하기에는 위험부담이 따른다. 결국 1, 2종 정도의 신규모델에 위피를 탑재할 가능성이 높다. 이는 위피가 기존 플랫폼과 시장경쟁을 거쳐야만 생존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신생 플랫폼인 위피가 수년간 시장에서 단련된 기존 플랫폼에 맞설 수 있을지는 지켜봐야 할 문제지만 여러가지 걸림돌로 인해 전망은 어두운 편이다.
콘텐츠가 플랫폼의 생명을 좌우한다고 봤을 때 위피 확산의 걸림돌로는 우선 위피 기반 콘텐츠의 부족을 들 수 있다. 현재 브루, GVM, SK-VM 등 기존 플랫폼은 몇백만대씩 시장에 뿌려진 상태다. 콘텐츠업체들이 몇백만명에 이르는 사용자를 보유한 기존 플랫폼을 두고 시장성이 불투명한 위피 기반 콘텐츠 개발에 적극적으로 나서기는 힘들다. 물론 위피 위에서 구동될 여러가지 애플리케이션 개발을 위한 기술개발 과제가 진행되고 있지만 이동통신사가 위피에 대해 강력한 의지를 보이지 않는 한 콘텐츠업체들의 참여를 끌어내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이동통신사가 위피 확산에 얼마만큼의 의지를 보여줄 것인가도 미심쩍다. 이동통신사들은 위피를 수용하겠다고 밝히면서도 독자 플랫폼 개발과 업그레이드 작업을 늦추지 않고 있다. SK텔레콤은 위피를 수용한다는 전제를 내세우고 있긴 하지만 위탑이란 새로운 플랫폼을 개발해 놓은 상태다. KTF도 브루 업그레이드 작업을 계속 진행하고 있다. 문제는 이동통신사내 개발조직이 위피보다는 이같은 독자 플랫폼에 더 익숙하다는 사실이다. 새로운 플랫폼보다 독자 플랫폼 개발에 더 공을 들일 것은 뻔하다.
해외상황도 위피에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다. 특히 국제 표준 전략의 1차 타깃으로 삼았던 중국 차이나유니콤이 최근 퀄컴의 브루 채택을 공식화함에 따라 위피의 해외진출에 적신호가 켜진 상태다. 물론 지역별로 사업자가 다르고 실제 무선인터넷 서비스에서는 포털업체나 콘텐츠업체들이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중국 상황을 고려해볼 때 차이나유니콤의 브루 채택만으로 브루가 안정적으로 중국 시장에 안착할 것이란 보장은 없지만 말이다. 유럽이나 북미 지역에서는 각각 자바와 브루가 세를 넓혀가고 있는 상황이다.
현재의 이동전화와는 다른 새로운 형태의 단말기, 이른바 ‘스마트폰’ 개발에 가속도가 붙고 있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마이크로소프트, 노키아, 삼성전자 등이 새로운 형태의 이동전화 단말기와 그에 탑재되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고 있음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어떤 형태의 단말기가 나올지, 새로운 단말기가 현재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단말기를 대체할 수 있을지는 예측하기 힘들지만 중요한 것은 시장주도 기업들이 시장판도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시점에서 현재의 이동전화 단말기에 최적화된 플랫폼 표준화에 매달리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질 수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플랫폼 표준화가 나름대로 명분을 가지는 것은 맞지만 현재 무선인터넷 시장은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어 결국 시장논리와 사업자 및 사용자의 선택에 따라 ‘사실상의 표준’이 정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인진기자 ijin@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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