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제의 주체로 각광받던 벤처산업이 풍전등화의 위기를 맞고 있다. 벤처에 대한 불신이 커지면서 코스닥 진출과 투자유치가 어려워졌을 뿐 아니라 벤처기업에 몰려들었던 고급두뇌의 유출현상도 가속화되는 추세라고 한다. 벤처기업인의 모럴해저드와 게이트 파문 등 악재가 중첩되면서 한때 한국경제를 이끌어 나갈 성장엔진으로 주목받던 벤처가 천덕꾸러기 신세로 전락한 것이다.
더 큰 문제는 벤처생태계에 켜진 적신호다. 전세계적인 정보기술(IT) 열풍과 정부의 육성정책이 맞물리면서 지난해 4월 1만개를 넘어섰던 벤처기업 수가 급감하고 벤처기업의 주요 자금원인 벤처캐피털과 벤처 집적시설 수도 감소하는 추세라니 걱정이다.
실제로 지난해말 1만1392개였던 등록벤처기업 수는 14개월 만에 1만개사 정도(9993개사)로 줄었고 시도지사가 지정해오던 벤처기업 집적시설 수는 지난 2000년 162개에서 146개로, 벤처캐피털 수는 지난 2000년말 154개에서 6월말 현재 139개사로 감소됐다. 벤처기업·투자기관·벤처 육성시설 등 벤처산업의 토대가 되는 벤처생태계가 붕괴될 위기에 직면했다는 것은 심각한 위기상황이라 아니할 수 없다.
한국경제의 새로운 희망으로 자리매김하던 벤처에 이처럼 먹구름이 드리워진 것은 세계적인 IT경기 침체가 주 원인이다. 하지만 한탕주의에 빠져 각종 게이트에 연루되거나 세계 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지 못했던 벤처기업인에게 더 큰 책임이 있다고 본다.
그렇다고 지난날의 잘못을 탓하면서 신세한탄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 냉철하게 원인을 규명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보다는 꺼져가는 불씨를 다시 키우는 것이 국익은 물론 기업의 대외경쟁력 강화 및 새로운 산업협력 차원에서 바람직하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정부가 벤처기업 인증요건 강화에 나선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중소기업청이 입법예고한 ‘벤처기업 육성에 관한 특별조치법 시행령’ 개정안은 ‘벤처기업으로 지정받으려면 연구개발비가 연간 매출액의 5%(매년 5000만원 이상)를 넘어야 하며 벤처캐피털로부터 투자를 받은 기업은 인증을 신청하기 전 최소한 6개월 이상 투자액을 보유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 주요 골자로 오는 11월부터 시행하게 된다. 벤처기업 옥석가리기야말로 벤처살리기의 첫걸음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시의적절한 조치라고 본다.
물론 벤처기업 인증요건을 강화한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엄밀히 말하면 간섭보다는 시장자율에 맡기는 것이 바람직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절한 규제가 필요하다고 보는 것은 벤처가 기업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제반사항을 보완해주는 벤처캐피털, 코스닥과 M&A 등 회수시장, 정부와 지자체의 각종 지원제도 등 벤처의 자양분이라 할 수 있는 벤처생태계가 붕괴될 위기상황에 놓였기 때문이다.
잘 알다시피 벤처는 ‘위기’와 ‘기회요소’가 공존하고 있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자금조달의 어려움과 수익성 확보, 그리고 대기업으로의 인력 유턴현상에 따른 인력난 등은 이미 예견됐던 위기로 초심을 잃지 않고 기본에 충실하면 충분히 극복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벤처를 싹 틔우고 미래한국경제의 주역으로 성장시킬 수 있었던 토양은 국민들의 이해와 지지다. 따라서 벤처기업인들은 이번 위기를 경영성과는 물론 투명성과 건전성을 세계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계기로 삼았으면 한다.
정부도 벤처가 기술기반의 강화 및 기술수준의 향상, 고용 창출, 기술개발을 통한 생산의 효율성 향상, 중소기업의 활성화 등 국가경쟁력 강화에 기여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해 지금부터라도 벤처불씨 살리기에 적극 나서야 한다.
<박광선 논설위원 kspark@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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