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가리켜 사회적 동물이라고 한다. 한 개체로 볼 때 유약하기 짝이 없는 인간이 지구상의 다른 모든 동물들을 압도하게 된 것도 그 사회적 결합이 가족단위에서 멈추지 않고 부락, 국가, 지구촌 차원으로 계속 확대됐기 때문이다. 무리를 지을수록 강해지는 생존의 법칙에선 로봇도 예외가 아니다. 최근 과학자들은 지능을 갖춘 로봇을 한데 모아 나름대로 사회를 이룰 경우 어떤 현상이 일어날지에 대해서 흥미로운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핵심주제는 독자적 인지능력을 갖춘 로봇이 스스로 만드는 문명이 어떤 방향으로 진화할 것인가 미리 짚어 보는 것이다.
계속되는 실험의 결과 로봇들이 구성하는 사회도 권력구조에 따른 서열과 갈등, 생존경쟁 등 사람사는 세상과 놀랍도록 흡사하다는 점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먼저 일정한 공간에 여러 대의 지능로봇을 풀어놓는다. 로봇들은 특정임무를 완수해야 새로운 먹이감(전기)을 차지할 수 있기 때문에 상대 로봇무리와 끝없는 생존경쟁을 벌인다. 이 과정에서 기동성과 지능이 뛰어난 로봇이 자연스럽게 무리를 이끌고 시간이 지나면 또 권력다툼이 일어나는 등 실제 생태계에서 흔히 벌어지는 상황이 그대로 재현된다.
옛말에 사람 셋이 길을 떠나면 반드시 스승이 나온다고 했던가. 로봇사회가 돌아가는 법칙도 인간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더라는 사실은 21세기에 접어든 우리 세대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영국 북부 로더럼 지역에 위치한 마그나 과학센터에선 로봇생태계에 관련, 역사상 가장 흥미로운 실험이 지난 5개월간 진행되고 있다. 이곳에선 12마리의 지능로봇들이 포식자로봇과 먹이로봇군으로 나뉘어 매일 치열한 서바이벌 게임을 벌인다. 포식자로봇이 즐기는 식사감은 먹이로봇의 본체안에 저장된 충전식 배터리. 불쌍한 먹이로봇들은 포식자로봇을 피해다니며 경기장 곳곳에 숨겨진 전기공급원을 찾느라 정신이 없다. 각 포식자로봇이 체득한 먹이사냥의 노하우는 팀의 모든 로봇이 공유하며 다음번 게임 때는 한층 더 교묘한 합동사냥술을 시험하게 된다. 먹이로봇측도 시간이 갈수록 도망치는데 이골이 나긴 마찬가지다. 이처럼 살아있는 로봇생태계의 진화 모습을 보기 위해 매일 구름처럼 많은 관람객이 과학센터에 몰리고 있다.
그런데 지난 6월 24일 이곳에선 놀라운 사건이 발생했다. 한 포식자로봇이 관람객들로 둘러쌓인 경기장을 몰래 빠져나가 수백미터나 떨어진 과학센터 출구까지 진입하는 `대탈출`을 감행한 것이다. 본래 평평한 경기장에서만 움직이게 설계된 로봇이 어떻게 계단과 복잡한 복도를 지나서 도망갔는지 센터 관계자들은 경악하고 있다. 혹시 매일 반복되는 서바이벌 게임을 통해 머리가 굵어진 이 로봇에게 자신의 삶을 찾겠다는 자유의지가 생긴 것은 아닐까.
<배일한기자 bailh@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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