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7년 런던. 할란드울프조선소 사장은 화이트스타 정기여객선의 사장 브루스 이즈메이와 대화를 나누면서 미국과 영국을 오가는 그 어떤 배보다도 더 크고 더 화려한 여객선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이즈메이는 그것이야말로 자신이 운영하는 회사가 북대서양 노선의 지배권을 빼앗아 오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동의했다. 당시 미국과 영국을 연결하는 북대서양 노선은 가장 중요하고 경쟁이 심한 국제여객선 노선이었다. 화이트스타사는 J P 모건이 관리하는 기금을 이용할 수 있었고, 이를 활용해 세계 최고의 여객선이 만들어졌다. 바로 타이타닉호였다.
타이타닉호는 당시로서는 가장 호화롭고 안전한 구조로 건조되었다. 내부 장식은 당대 최고의 제품으로 치장되었고, 선체를 가르는 열다섯개의 방수 칸막이로 벽을 만들고 브리지에서 전기스위치 하나로 잠그는 것이 가능하도록 설계되었다. 위급 상황에서도 부분적인 침수에 그쳐 배가 침몰하지 않게 한 이 자동 방수 칸막이를 각 언론에서는 특집기사로 다뤘고, 이 때문에 타이타닉호는 ‘결코 가라앉지 않는 배’라고 인식되었다. ‘거의’라는 부사를 생략하고 절대로 가라앉지 않는 타이타닉호라는 오만불손한 신화를 만들어냈던 것이다.
1912년 4월 10일. 영국의 사우샘프턴 항구는 전송나온 사람들로 들끓고 있었다. 타이타닉호가 건조되어 뉴욕을 향해 처녀항해를 준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해외여행은 배를 이용하는 수밖에 없었고, 그 역할을 기선이 담당하고 있었다. 그 중에서 영국을 중심으로 하는 유럽과 미국을 잇는 북대서양 횡단 항로는 가장 인기 있는 루트였다. 북대서양 횡단 항로는 블루리본으로도 유명했다. 블루리본은 이 항로를 가장 빨리 달린 배에 주어지는 명예의 상으로, 1894년까지는 거의 영국이 독점했지만 그 이후 1907년까지 독일이 차지했다. 이에 맞서 영국의 큐너드사는 증기 터빈을 추진기관으로 하는 3만톤급 여객선 2척을 건조했고, 이 두척의 배가 블루리본을 따내어 타이틀을 유지했다. 이 과정에서 큐너드사와 치열한 경쟁관계에 있던 화이트스타사는 속도경쟁을 포기, 크기와 호화로움으로 경쟁사를 압도할 방침을 세우고 4만톤급 여객선을 건조했다. 그 배 타이타닉호가 첫 출항을 하는 날이었다. 그만큼 요란스런 행사가 이어졌다.
타이타닉호는 길이 약 260m, 너비 약 28m, 총 톤수 4만6328톤, 배 밑바닥에서 4개의 연돌 꼭대기까지의 높이는 약 53m였다. 타이타닉호는 크기뿐만 아니라 설비의 호화로움에서도 단연 세계 최고였다. 1등 선실은 다양한 시대양식으로 장식되었고, 1등 선실과 2등 선실에는 각각 전용 엘리베이터가 있었다. 호화로운 메뉴를 갖춘 레스토랑과 수영장, 흡연실을 갖추고 있었다.
타이타닉 호의 1등 선실에는 대부호, 고관, 사교계의 스타 등 유명인사들이 많이 타고 있었고, 그 밑의 3등 선실에는 신대륙 아메리카에서의 새로운 꿈을 안고 이민을 떠나는 사람들이 가득 타고 있었다.
영국의 ‘선데이타임스’가 영국 남극관측본부의 말을 빌어 거대한 빙산이 남대서양을 북상하고 있으므로 주변 해역을 항해하는 어선 등에 빙산주의보를 내렸다는 소식을 전했다. 당시 주의의 대상이 된 빙산은 세로 83㎞, 가로 55㎞의 엄청나게 큰 것이었고, 그 빙산이 동쪽으로 계속 움직인다면 북대서양의 일반 항로에 접근, 짙은 안개 발생 등으로 선박의 항해에 큰 위험을 끼칠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한 경고였다. 하지만 타이타닉호와 그 빙산을 연계시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타이타닉호의 항해는 너무나 평온했다. 존 스미스 선장 이하 승무원은 모두가 항해경력이 많은 전문가들로 구성되었으며, 그들이 제공하는 서비스에 승객들은 더할나위 없이 즐거워했다. 세계 최대·최고의 여객선에 숙련된 구성원, ‘침몰하지 않는 배’로 널리 알려진 선체. 모든 것은 최상이었다.
1912년 4월 14일. 타이타닉호는 더없이 고요한 바다를 계속 질주하고 있었다. 최고 속도였다. 타이타닉호에는 그 배의 주인인 화이트스타 정기여객선의 사장 브루스 이즈메이가 타고있었기 때문에 모든 것이 최상의 것이 되어야 했다. 배의 속도도 그 중 하나였다.
오전 9시(이하의 시간은 타이타닉호의 시각) 부근을 항해하고 있던 배에서 최초의 유빙에 대한 정보가 무선통신을 통해 메시지로 전달되었다. 이 시기에 북대서양 횡단 항로에는 매년 종종 빙산이 흘러들어오고 있었다. 이들 빙산은 그린란드 등의 빙하에서 미끄러져나온 얼음이 해안선 부근에서 분리되어 해상에 떠다니는 것들로, 래브라도 해류를 타고 남하하여 4월께 뉴펀들랜드섬에서 그랜드뱅크에 도달, 북대서양 횡단 항로를 가로지르곤 했다.
타이타닉호에서는 같은 내용의 경계 통신메시지를 여러번 받았으나 속도를 줄이지 않고 22노트(시속 약 41㎞)라는 전속력에 가까운 속도로 항해를 계속했다. 이들 통신메시지는 모두 타이타닉호의 진로 전방에 거대한 빙원이 있다는 것을 알리는 내용이었다.
오후 8시 타이타닉호는 뉴펀들랜드섬의 레즈곶에 있는 통신기지의 유효범위 안에 들어섰다. 통신사는 갑자기 바빠졌다. 승객이 요청한 통신문을 통신기지로 보내기 위해서였다. 발신메시지와 수신메시지가 바쁘게 통신기지와 차례로 교신되고 있었고, 타이타닉호의 통신사는 그 처리에 열중하고 있었다. 오후 9시 40분에도 항해중의 선박에서 경계 무전메시지가 날아들었지만 이 메시지도 통신실에 그대로 방치되었다.
오후 11시 30분. 타이타닉호로 또 한번의 경계 무선메시지가 들어왔다. 그것은 타이타닉호의 항로에서 겨우 19해리(약 35㎞) 북쪽에 있던 캘리포니안호에서 보내온 것이었다.
캘리포니안호는 유빙에 갇혀 꼼짝할 수 없게 되자 그 주위의 배들에게 계속 경고메시지를 보내고 있었다. 서로의 배 위치가 가까웠기 때문에 캘리포니안호로부터의 통신은 레즈곶과의 통신을 방해하는 결과가 되었다. 타이타닉호의 통신사는 승객들의 전문을 보내고 받는 데에 정신이 없고 애가 타서 경고에 귀를 기울이지 못했고, 반대로 통신방해가 된다는 내용의 전문을 캘리포니안호로 보내기도 했다.
당시 타이타닉호에 승선한 승객들은 10단어에 3달러씩 하는 무선 메시지를 경쟁적으로 보냈다. 일상적인 사업관련 메시지였지만, 과시하듯 무선통신을 이용했다. 때문에 타이타닉호에서는 막대한 폭리를 취할 수 있었고, 그 작은 이익 때문에 결국 배의 운명이 바뀌게 되는 비극을 맞이했던 것이다.
같은 시각. 타이타닉호의 돛대에서는 두명의 감시원이 망을 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쌍안경 없이 전방을 주시하고 있었다. 너무나 당연하게 있어야 하는 그 쌍안경이 없었다는 것은 아직까지도 풀리지 않은 타이타닉호에 대한 수수께끼 중 하나로 남아있다.
오후 11시 40분. 돛대에 올라있던 감시원이 전방에서 거대한 물체 하나를 발견했다. 빙산이었다. 그것은 순식간에 눈앞으로 다가왔다.
“전방 오른쪽에 빙산!”
감시원은 벨과 구내전화로 조타실에 연락했다.
충돌 37초 전이었다.
작가/한국통신문화재단(KT과학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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