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니기타 히사유키 소니컴퓨터엔터테인먼트코리아 전문
올해 3월부터 서울에 살면서 한일 관계에 대해 느끼는 바가 많다. 이번 2002 한일 월드컵에서 한국팀이 결승에 진출하지 못한 점은 참으로 안타깝다. 준결승전에서 독일을 꺾고 요코하마로 건너가 결승을 겨룬다면 백제인이 대한해협을 건너 일본에 많은 기술과 문화를 전수한 것과 같이 현재 의욕없는 일본인들에게 한국인의 끓어오르는 에너지를 충전해 줄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줄 수 있으리라 기대했기 때문이다.
월드컵 한일 공동개최는 한국과 일본에게 많은 것을 가져다 주었다. 월드컵 한일 공동개최가 결정된 이후 99년과 올해를 ‘한일 국민교류의 해’로 결정했고 일본에서는 지난해 말부터 한국과 관련된 TV드라마와 영화가 쏟아졌다. 또 한일 교류를 위한 다양한 행사가 개최되기도 했다. 이러한 영향으로 1년 사이에 일본인의 한국에 대한 인지도도 상당히 높아졌다.
이러한 결과에는 직접적으로는 월드컵이라는 대형 이벤트 때문이지만 2000년 1월 일본에서 개봉된 한국 영화 ‘쉬리’의 대히트도 한몫을 했다고 본다. ‘쉬리’를 영화관에서 처음 본 후 상당히 마음에 들어 영화관에서 다시 한번보고 DVD가 발매되자마자 살 정도였다. ‘쉬리’가 그렇게 마음에 들었던 이유는 ‘쉬리’에서 어딘지 모를 ‘절실함’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영화 연구회 소속이었던 대학생 시절부터 지금까지 세계 각국의 영화를 보아왔지만 ‘절실함’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어디까지나 일본 영화뿐이었다.
일본어의 ‘세츠나이(절실하다)’가 한글로 제대로 전달될지 모르겠다. 이 단어는 일반적으로 소중한 사람이 죽거나 멀리 떠나버려 무엇인가를 해주고 싶어도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 쓰는 단어다. 영화 ‘쉬리’에는 국가적 사명과 개인적 감정 사이에서 흔들리는 북한공작원 김윤진과 한국정보기관원 한석규의 감정묘사가 잘 되어 있고 서로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연인의 ‘절실함’이 잘 나타나 있다. 많은 일본인들이 이러한 ‘절실함’을 느꼈고 이는 쉬리의 ‘대히트’로 이어졌다.
일본영화 이외의 영화에서, 그것도 한국영화에서 ‘절실함’을 느낀 것은 의외를 넘어서는 충격이었다. 한국과 일본은 지리적으로 가까운 나라지만 언어·문화·관습·교육환경 등에서 많이 다르기 때문이다. 식사 습관만 봐도 일본에서는 밥그릇을 손에 들고 젓가락만으로 먹는 것을 예의바르다고 생각하지만 한국은 밥그릇을 식탁에 놓고 숟가락으로 먹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이 때문에 한국에는 열이 잘 통하는 스테인리스로 된 밥그릇이 많고 그것을 손에 들고 먹느라 나는 아직까지도 애를 먹는다. 이러한 단순한 습관 차이가 한 때 서로의 오해와 불신을 낳기도 하고 커다란 국제적인 문제로까지 발전하기도 했다.
한국와 일본의 거리는 심금을 울리는 한국영화의 탄생과 일본에서의 대히트, 한일 월드컵, 한일 국민교류의 해 등으로 그 간격이 많이 줄어들고 있다. 특히 양국의 젊은 세대들은 ‘쉬리’를 보고 서로 감동하고 월드컵을 보고 서로의 팀을 응원하지 않았던가. 양국의 젊은 세대에게서 한국인과 일본인의 새로운 만남을 실감하고 있다. 그들은 어떠한 편견도 오만도 없이 서로를 이해하는 국제적 감각도 더불어 갖추고 있다.
비디오 게임 분야에서도 한일 양국의 비슷한 점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캐릭터나 건물 디지인, 스토리 설정 등에서 한국의 게이머의 취향은 미국 게이머의 취향과는 전혀 다르고 오히려 일본 게이머의 취향과 비슷하다. 따라서 양국의 여러가지 지리적·문화적 환경 차이에도 불구하고 양국의 게임소프트웨어 사업도 ‘쉬리’가 그러했던 것처럼 비슷한 종류와 취향의 소프트웨어 비즈니스가 가능하다고 본다. 생각해보면 전 세계에서 봄에 신학기가 시작되는 것은 한국(북한도 포함)과 일본뿐이다. 봄이란 새로운 것이 시작된다는 북동 아시아 특유의 사고 때문일 것이다. 새로운 새대의 한국인과 일본인은 북동 아시아의 이웃나라로서 새로운 미래를 함께 개척할 수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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