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스토리>(22)레카(2)

 기획 초기단계부터 이 작품에 영향을 준 것은 ‘팬터지’와 ‘퓨전’이다.

 팬터지 장르는 그 특성상 캐릭터와 등장 배경의 변화가 많고 그 치장 요소가 다양하다. 또 특수효과들이 많이 요구되므로 준비를 단단히 해야만 했고 이는 마지막까지 큰 부담으로 다가온다. 팬터지 모험 드라마라는 장르가 줄 수 있는 수많은 등장인물. 그리고 각각의 화려한 마법, 개인기술, 다양한 모험의 경로들. 여기에다 음모, 희생, 사랑, 우정, 수수께끼, 승부 등으로 가득찬 세계 그리고 거의 매회 바뀌는 다양한 스테이지 등을 구현해야 했기 때문이다.

 캐릭터들은 그저 나름대로의 매력적인 개성을 갖고 드라마 속에 존재하기만 해도 충분했다. 여기에다 팬터지와 세계 시장을 겨냥한 무국적 캐릭터라는 두가지 일반적인 무기로 무장했었다. 그러나 가장 큰 무기가 된 것은 재미있는 애니메이션을 만들어 보자는 욕심이었다.

 어린시절 비록 국산 작품이라 굳게 믿었던 일본 애니메이션들인 ‘마징가 Z’나 ‘이겨라 승리호’처럼 시작시간을 TV앞에서 기다리던 그 설레임과 열정을 어린이들에게 느낄 수 있게 해주고 싶었다. ‘레카’는 그런 의도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레카를 만드는 일이 그리 즐겁지만은 않았다. 흔히 생활에 지칠 때 도대체 남들은 어떻게 사나 기웃거리게 되듯 동종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동료나 선배들에게 귀찮을 정도로 관심을 갖았다. 또 국내 첫 3D 26부작 팬터지물이라는 타이틀은 쉽게 딸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방송과 제작 스케줄, 제작비 그리고 이직률 그리고 40여명이 넘는 제작인원간의 크고 작은 토닥거림 등 이루 열거하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우여곡절이 많은 프로젝트가 성사되는 것을 한번도 보지 못한 터라 제작을 진행하면 할수록 자신감이 사라져 가기도 했다. 그러나 제작은 계속됐다. 1부가 14편으로 일단락돼 그간 문제됐던 작업상의 장애요소들에 대한 보수정비 기간을 맞아 한숨 돌리려 했으나 가쁜 숨 그대로 계속 나갈 수밖에 없었다.

 2부를 기다리는 시청자들의 글 때문에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제작 스케줄, 편성 스케줄에 또 도전하게 됐던 것이다. 당시 2부 스케줄표에 ‘우린 미쳤어!’라는 부제를 달았다. 정말 말 그대로 2부 작업은 미친 듯이 진행됐다. 너무나도 짧은 예비기간이었지만 지금이 아니면 안된다는 생각으로 일단 데이터베이스 문제는 눈물을 삼키며 그냥 넘기고 파이프라인 수정에 들어갔다. 그간 문제시됐던 전반작업자들의 파트를 통합하여 작업 리턴분량을 줄이고 키 애니메이터 작업물 검수작업을 이차로 간소화시키며 포스트 작업에 비중을 둔 레이어별 렌더링작업과 셀 문법을 이용한 비주얼 구성으로, 전체 프로세스의 시간을 단축시켰다. 결국 데이터베이스의 끊임없는 방해에도 불구하고 작업은 스케줄대로 진행되어 나갔고 향후 프로젝트에서의 파이프라인에 대한 자신감도 생겼다. 21화를 마치고 이젠 5편만 하면 된다 싶었을 때 우리에게 큰 장애물이 발생했다. 바로 님다바이러스였다. 이 영향으로 캐릭터 두명의 대사 신 한 장을 렌더링하는데 2시간이 걸리는 등 작업시간이 5분의 1 이하로 떨어졌다. 결국 네트워킹을 막은 상태에서 합성팀은 10여년간 경험하지 않았던 초치기 작업에 돌입해야만 했다.

 <육현수 드림픽쳐스21 제작실장 suns12@hanmi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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