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노기술을 육성하기 위해 국가지원의 나노종합팹을 설치하는 것이 과연 나노기술 발전을 위한 길일까요.”
최근 모 대학의 초청으로 나노 관련 국제 행사에서 기조연설을 하기 위해 내한했던 미국 MIT 전자공학과 헨리스미스 석좌교수는 “국가가 나서서 나노팹을 만드는 것은 창조적인 나노기술의 발전을 저해할 수 있다”며 강한 우려감을 나타냈다. 스미스 교수는 “위대한 과학자는 세익스피어와 같이 자유롭게 생각하고 표현할 수 있는 예술가”라며 “나노팹과 같은 획일화된 공간에서 ‘로미오와 줄리엣’을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한마디로 나노팹 설립이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영감을 막는 장애 요소가 될 공산이 크다는 지적이다.
이같은 스미스 교수의 지적은 어쩌면 편협한 생각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40년 넘게 나노기술 개발에만 몰두해온 노 과학자의 시각을 결코 가볍게 보아 넘겨서는 안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달 말 나노팹을 설립할 기관이 선정되기 때문에 스미스 교수의 지적들은 어쩌면 별 의미가 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향후 국가 과학에 엄청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요한 사안인 만큼 철저한 검증과 대책이 필요하다. 스미스교수가 강조하는 것은 과학자들의 창의성과 예술성이다. 나노팹이 만들어질 경우 손쉽게 연구를 수행할 수는 있겠지만 독창적이고 획기적인 기술을 기대하기는 힘들어진다. 또 나노팹의 주도권을 차지하기 위한 경쟁이 벌어질 수 있으며 가진 자와 갖지 못한 자의 갈등도 예상된다. 이같은 우려는 벌써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유치 신청서를 제출했던 기관들은 마치 서로를 원수처럼 대하고 있다고 한다. 공식 석상에서 만나도 예전처럼 반갑게 악수하는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며 서로를 비방하는 말들이 난무하는 등 진흙탕 싸움을 연출하고 있다.
순수함과 열정, 그리고 창의성을 가장 값지게 생각하는 과학자의 모습으로는 왠지 어울리지 않은 현상들이다. 나노팹 설치는 기정사실화된 것이고 주사위도 이미 던져졌다. 그 결과 최종 경쟁에 나선 4개 기관 중에 한 곳에 나노팹이 설치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는 스미스 교수가 우려했던 ‘획일화’된 연구 풍토가 만들어지지 않도록 정부와 연구기관·대학·산업체 등이 한 마음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산업기술부·김인순기자 insoon@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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