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기를 잘 타야 흥행도 따른다.’
잘 만들고 재밌는 영화는 흥행에 성공하고 그렇지 않은 영화는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은 상식이다. 그러나 잘 만들고도 흥행 참패를 면치 못하거나 썩 대단치 않은 영화인데도 크게 인기를 누린 영화도 있다. 신만이 알 수 있다는 흥행성공 여부에서 가장 중요한 변수는 뭐니뭐니해도 시대적인 흐름이나 사회적인 이슈를 잘 타느냐 하는 것. 최근 개봉됐거나 개봉될 영화를 보면 이러한 흥행변수가 크게 작용했음을 알 수 있는 작품이 적지 않다.
먼저 김대중 납치사건을 다룬 ‘케이티’. 지난 3일 개봉된 이 영화는 일본 사카모토 준지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1년 이상의 촬영기간과 60억원의 제작비가 투입된 블록버스터였다. 대중적인 인기는 아니더라도 오래간만에 나온 정치영화인데다 대선 정국과 맞물리면서 최소한 10만∼20만명 정도의 관객은 유치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결과는 참담한 수준. 전국에서 6000여명의 관객을 동원하는데 그치며 개봉 며칠만에 간판을 내려야 했다. 투자대비 99%의 손실을 기록한 셈이다. 결코 못 만든 영화가 아닌 케이티의 이같은 흥행 참패는 역시 DJ아들 비리가 사회적 이슈로 부각된 데 따른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이에반해 ‘결혼은 미친 짓이다’는 지난달 26일 개봉돼 3주만에 전국 87만명 관객이라는 기대밖의 흥행성적을 거뒀다. 출판 당시 화제가 됐던 김민교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긴 했지만 이를 영상으로 담는 어려움과 함께 영화계에 처음 입문하는 감우성과 가수의 이미지가 더 강한 엄정화를 주연으로 내세운 것이 위험요인으로 지적됐다. 그러나 결과는 대성공. 18억원의 순제작비를 동원한 ‘결혼은 미친 짓이다’의 손익분기점은 관객 60만명 수준. 이미 짭짤한 수익을 순익구조로 달려가고 있는 셈이다. ‘결혼은 미친 짓이다’의 성공요인은 탄탄한 각본과 공감가는 대사, 주연배우들의 더 없이 자연스러운 연기지만 성과 사랑에 대한 이중적인 가치관이 공감대를 얻는 사회적인 분위기가 없었다면 이 같은 성공은 가능하지 않았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오는 31일 개봉되는 ‘미워도 다시한번 2002’는 그런 면에서 뚜껑을 열기도 전에 전혀 예상치 못한 직격탄을 맞은 케이스. 주연배우인 이경영이 14일 원조교제 혐의로 긴급 체포되는 등 각종 악운이 끊이지 않으면서 영화흥행의 전도를 불투명하게 만든 것. 제작사인 제이웰엔터테인먼트는 당초 일정대로 개봉 결정을 내렸지만 극장배급이 원활할지는 물론 개봉되더라도 흥행기대는 미지수다. 특히 ‘미워도 다시한번2002’가 최루성 멜로 영화인만큼 혐의사실 진위여부를 떠나 영화 이미지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이 영화 개봉시기를 좀 더 빨리 잡았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영화사 주변에 맴돌고 있다.
<조인혜기자 ihcho@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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