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국과 한국에서 ‘따로 또 같이’ 벌어졌던 IT업계의 최대 관심사가 일단락됐다. HP와 컴팩의 합병, 하이닉스와 마이크론의 매각 협상이 바로 그것이다. HP와 컴팩은 합병성사로, 하이닉스와 마이크론은 협상 불발로 각각 결말을 맺었다.
전 세계인들의 촉각을 곤두세웠던 이 두 빅딜 협상은 여러가지 면에서 공통점과 차이점을 드러냈다.
공통점이라면 우선 두 빅딜이 컴퓨터업계와 반도체업계 사상 최대규모의 초대형 M&A 협상이었다는 점이다. 180억달러 이상의 규모라고 추산되는 HP와 컴팩의 합병은 이 분야 최대업체인 IBM을 능가할 정도다. 마이크론과 하이닉스의 인수·매각 협상도 세계 메모리반도체 업계의 서열을 뒤흔들 정도의 위력을 지녔다.
두가지 빅딜이 해당 업체의 생존과 발전은 물론 업계 전체에 미치는 파급력이 워낙 컸던 만큼 당사자들이 내분과 외압에 시달렸다는 점도 똑같다. HP는 이사이자 창업자의 아들인 휴렛과 법정소송에 휘말려 곤욕을 치렀다. 하이닉스는 채권단과 이사회간에 심각한 갈등을 빚었다. 두 회사는 소액주주들로부터 거센 반발을 샀다는 점도 비슷하다.
다른 점이라면 한쪽은 성사가 됐고 다른 한쪽은 실패했다는 사실이다. 물론 협상의 총대를 짊어졌던 두사람의 운명도 달라졌다. 피오리나는 영웅이 됐고 박종섭은 실패의 책임을 지고 CEO 자리에서 물러나야 했다. HP와 컴팩은 미국업체들간 협상이었고 하이닉스와 마이크론은 각각 한국과 미국이라는 다른 국적의 업체들간 M&A였다는 점도 차이점이라면 차이점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가장 큰 차이점은 따로 있다. 빅딜을 앞둔 두 회사의 대응자세다. HP는 경영진과 이사회가 힘을 합쳐 협상을 이끌어나갔다. 이사회나 주주중 일부의 반대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사회가 경영진을 신뢰했다는 데에는 의문이 없다. 반면 하이닉스는 경영진과 이사회간에 혼선은 물론 채권단과의 반목과 대립을 일삼았다. 하이닉스가 이처럼 적앞에서의 분열상태에 놓여 있었던 만큼 협상에서 성공을 거두기는 애초부터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여기서 생겨나는 의문은 ‘경영진의 자질, 그리고 부실회사의 실제 주인은 누구인가’하는 부분이다.
HP의 경우 경영진의 위상은 대단했다. 칼리 피오리나라는 걸출한 인물이 있었기에 가능했는지는 모르지만 이사회나 주주들 모두 경영진의 의사를 존중해주었다. 따지고 보면 피오리나라는 세기적 경영자를 만들어낸 것도 피오리나 자신이 아니라 전문 경영인의 판단을 믿고 따라주는 주주들인 셈이다.
하이닉스 이사회와 주주들은 그러나 최고경영자인 박종섭 사장의 이중적 행동으로 혼선을 빚었다. 박 사장은 경영진과 이사회와 함께 채권단의 매각우선방침에 반대했다. 그러면서도 채권단과 정부입김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결과적으로 매각의향서에 도장을 찍었다. 그리고 돌아와선 이사회에서 매각반대쪽의 입장에 섰다.
매각조건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면 애초부터 MOU에 동의하지 말던가 그도 아니면 그당시 사표라도 제출했어야 했다. 결국 박 사장의 이같은 행동으로 매각협상 결렬은 물론 한국의 대외신인도에 타격만 준 셈이 됐다.
하이닉스의 실제 주인이 과연 누구인지도 헷갈린다. 빚더미에 올라앉은 사람에게 채권자가 집을 팔아서라도 빚을 갚으라고 종용한다. 그러나 채무자는 집이 팔리지 않는다며 ‘배째라’식으로 버틴다. 다급해진 채권자는 집을 살사람을 찾아 데려오지만 조건이 좋지않다며 팔지 않겠으며 차라리 돈을 벌어서 갚겠다고 우긴다. 채권자는 어쩔 수 없이 법원경매를 신청한다. 경매에 들어가면 십중팔구 헐값에 팔리기 때문에 둘다 손해지만 이렇게 해서라도 채권의 일부라도 건지든가 아니면 빚받기를 포기하는 수밖에 없다. 하이닉스 이사회 즉 주주의 태도는 이 채무자와 조금도 다르지 않다. 채권단과 이들에게 돈을 대준 국민만 답답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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