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양자컴퓨터시대 준비하자

 ◆카이스트 물리학과 이순칠 교수 sclee@mail.kaist.ac.kr

 

 우리나라는 자타가 공인하는 IT선진국이다. 인터넷과 PC보급률, 휴대폰기술 등에서 벌써 세계수준에 올랐는데 불과 10년 전과 비교해봐도 놀라운 발전이 아닐 수 없다. 이같은 성공은 우리가 원천기술을 보유했기 때문이 아니다. 한국은 상업화에 유망한 성숙단계로 진입하는 특정기술분야에 재빨리 끼어들어 투자를 집중하는 전략을 취해왔다. 지금 우리 경제를 먹여살리는 반도체·LCD는 한국식 끼어들기 산업정책이 성공을 거둔 사례로 볼 수 있다.

 그러나 21세기에도 이러한 전략이 그대로 성공한다고 믿는 것은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사회적·산업적인 파장은 엄청나지만 외국에서 기술을 확보한 다음에 뛰어들면 시기를 놓치는 전략기술들이 점차 구체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IT분야에서 대표적인 차세대 전략기술이 양자컴퓨터(Quantum Computer)다.

 선진각국은 지난 90년대부터 나노단위의 미시세계에서 일어나는 양자적 특성을 이용해 전혀 새로운 정보처리기술·양자컴퓨터기술을 초보적이나마 개발하고 있다. 지금의 컴퓨터는 0과 1이라는 두 개의 숫자로 세상을 표현하지만 양자컴퓨터에서는 양자역학의 중첩원리에 의해 하나의 입자가 0과 1 모두를 한꺼번에 표시한다. 즉 양자컴퓨터는 정보처리를 순차적이 아닌 병렬식으로 한꺼번에 수행하기 때문에 기존 컴퓨터와 비교할 수 없는 연산능력을 제공한다.

 특히 양자컴퓨터가 전략기술로 간주되는 가장 큰 이유는 특히 현존하는 모든 암호체계를 순식간에 파괴할 정도로 연산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정보사회에서 암호는 국방분야뿐만 아니라 인터넷상거래·온라인뱅킹·신용카드 등 우리의 일상생활에 깊이 관여돼 있다. 따라서 암호체계가 무너지면 곧바로 우리 사회는 대혼란에 빠져든다.

 현존하는 컴퓨터로 약 300년이 걸려야 풀어내는 암호체계도 똑같은 속도로 돌아가는 양자컴퓨터는 4분 만에 해독할 수 있다. 열심히 저축해둔 은행계좌가 불과 4분 만에 해킹당해서 인출된다면 착실하게 월급받으며 일하려는 사람이 적을 것이다.

 현재 우리가 쓰는 암호체계는 모두 미국 국가안보국(NSA)에서 개발한 것인데 혹자는 NSA가 이 모든 암호들에 대해 마스터키를 가졌다는 의심도 한다. 이런 마당에 양자컴퓨터의 개발까지 뒤진다면 우리나라는 앞으로 일방적인 정보유출을 막을 수 없다. 양자컴퓨터의 기술개발에 있어 시장성을 논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양자컴퓨터는 한 대만 갖고 있어도 그 나라는 세계 제일의 정보강국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혹자는 양자컴퓨터는 앞으로 20년이 지나야 실용적인 것이 개발된다고 이야기하지만 벌써부터 양자컴퓨터에 대한 국제기술특허는 쌓여가고 있다. 따라서 다가오는 국가간 특허전쟁에 대비해서라도 양자컴퓨터의 개발은 더이상 늦출 수 없는 과제다.

 선진각국은 군사·경제전략 차원에서 양자컴퓨터 연구에 많은 정부예산을 쏟아붓고 있다. 양자정보기술에서 가장 앞선 미국은 공식적으로 1년에 약 300억달러를 투자하고 있다고 밝히지만 비공식적인 투자액은 한 단위가 더 클 것이라고 한다. 미국은 이 분야에서 많은 신진 연구인력을 모집하면서 거의 시민권을 요구하고 있다. 유럽각국도 정부 차원의 지원은 물론 EU전체가 공동의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다. 일본과 이스라엘·인도·호주·중국 등도 국가 차원의 양자컴퓨터 개발계획을 진행하고 있다. 문제는 IT선진국이라는 한국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양자컴퓨터에 대한 정부 차원의 연구지원 계획이 없을 뿐만 아니라 산업계의 인식도 미비한 상황이다.

 필자를 비롯한 일부 대학연구소에서 아마추어 수준의 양자컴퓨터 연구가 진행될 뿐 아직까지 체계적인 개발계획은 부재하다. 우리는 전통적인 정보통신산업에서 운좋은 성공에 안주한 나머지 닥쳐올 양자정보통신(QIT:Quantum Information Technology)시대의 심각성을 외면하는 것이 아닌지 매우 걱정스럽다. 미래 IT한국을 좌우할 양자컴퓨터기술에 대한 정부 차원의 관심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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