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디지털 문화유산

 ◆고은미 IT리서치부장 emko@etnews.co.kr

 

몇년 전 한 기업이 ‘조선왕조실록 CD롬’을 만들어놓고 그 제작비 때문에 경영에 타격을 받았다는 말이 있었다. 선지적이고 사명감 있는 경영자는 은색 반짝이는 CD롬 4장에 조선왕조실록이 모두 수록됐으니 뿌듯함을 느꼈음직하나 만만치 않은 제작비로 인해 경영상의 위기를 감내해야만 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희생이 있었기에 그 후 학자, 연구자, 관계자들은 ‘조선왕조실록 CD롬’ 덕을 톡톡히 볼 수 있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우리 선조들의 문화유산인 ‘팔만대장경CD롬’과 ‘디지털 한국민족문화백과사전’ 등도 민간차원의 노력으로 만들어졌다. 팔만대장경CD롬은 팔만대장경의 한자 5200만자를 7년여 동안 CD롬에 담는 지난한 작업이었고, 디지털 한국민족문화백과사전도 30권 분량의 사전을 디지털화하는 작업이었다니 얼마나 힘든 일이었는지 짐작하고도 남는다.

세상이 온통 인터넷과 정보화를 부르짖어도 그것은 비즈니스적인 측면이 중요했고, 우리의 정신 문화유산을 디지털화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기에는 우리 역량이 부족했다. 문화유산의 디지털화는 제작기간, 기술, 비용, 전문인력부족 등 여러가지 문제로 단시간에 쉽게 이루어지기 어렵다. 더구나 기업이나 민간차원에서 국가 문화유산의 디지털화 작업을 한다는 것은 너무나 큰 희생을 강요하는 일이 될 수 있다. 다행히 이제 우리가 IT강국이 되었으니 국가적인 차원에서 문화유산의 체계적인 디지털화에도 관심과 역량을 기울일 때가 되었다.

지난 18일 문화관광부는 ‘국가문화유산 정보화전략계획’을 발표했다. 올해부터 5년간 총 1667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그동안 분야별로 실시해 온 문화정보화 사업을 통합해 보다 완벽한 국가문화유산 관리체제를 구축하기로 했다. 이번 계획으로 우리 문화유산에 대한 DB구축도 종합적이고 체계적으로 진행된다니 그 의미가 크다.

문화유산 정보화 전략은 기존의 DB구축과 함께 동영상을 비롯한 다양한 형태로 콘텐츠를 제작해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고 문화유산에 대한 중요성을 부각시키며 종합적이고 체계적으로 정리해 보다 포괄적인 비전을 제시한다는 데 그 뜻이 있다. 이를 통해 관련산업과의 연계 및 해외 여러 나라와의 교류를 실현함으로써 우리 문화유산의 세계화를 이룬다는 취지도 있다. 문화유산의 정보화로 문화적 정체성에 바탕을 둔 창의적인 국가를 실현하고 문화유산의 향유를 통한 국민의 창의성과 삶의 질을 높인다는 방침은 다행한 일이다.

IT인프라가 구축됐다 하더라도 독특하고 고유한 우리만의 콘텐츠가 부족한데 우리가 가지고 있는 문화유산을 디지털화한다면 세계적으로도 자랑할 만한 우수한 콘텐츠가 될 것이다. 문화유산을 디지털화해 CD롬이나 인터넷으로 쉽게 접할 수 있다면 모든 사람이 편리하게 선조들의 정신적 가치를 나눌 수 있다.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우리의 우수한 문화를 알리고 자부심을 갖게 하는 교육적 효과도 무시할 수 없다. 우리 학생들이 컴퓨터 화면 속에서 본 고려청자와 이조 백자를 박물관에서 직접 다시 한 번 더 보게 된다면 더 깊은 이해를 통해 우리 민족의 우수성을 깨달을 것이다.

 디지털 문화유산은 IT기술의 힘을 빌려 선조의 문화유산을 영구보존함과 동시에 소수의 사람만이 볼 수 있었던 것을 인터넷상에서 누구나 볼 수 있게 한 찬란한 우리 문화를 알리는 중요한 작업이다. 선조들의 문화유산을 디지털화하고 원형을 영구보존하는 일은 IT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 후손들이 꼭 해야 할 일이다. 문화국민은 그냥 되는 게 아니다. 투자와 정성만이 우리 문화를 지키고 다듬는 길이다. 지금 디지털 문화유산을 만들고 지키지 않으면 후손들에게 무엇을 남겨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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