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부품·소재산업은 뿌리다

 ◆<모인 산업전자부장 inmo@etnews.co.kr>

휴대폰 가입자 수가 지난달 말 3000만을 돌파했다. 보급률로 보면 세계 22위에 불과하지만 가입자 수만으로 보면 세계 8위에 해당한다. 업무용과 개인용을 따로 쓰는 나라와 비교하면 엄청난 숫자다.

 세계 반도체산업에서 한국의 삼성과 하이닉스가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다. 지난 한해 국내 반도체업체들은 세계 SD램 시장에 13억개 정도(128Mb)를 내다팔았다. 세계 시장의 45%를 점유하고 있는 것이다.

 정보통신에 대한 과감한 투자와 붐 조성으로 IT산업은 이제 선진국 수준에 진입한 느낌이다. 일본이 우리나라를 벤치마킹할 정도로 초고속정보통신망과 인터넷은 세계적 수준이다. 더욱이 인터넷을 사용하는 빈도로 보면 한국은 1등 국가다.

 그러나 이런 화려한 이면에는 취약한 부문이 너무 많다. 정보통신 강국이라고는 하지만 이동통신 장비 등에 들어가는 핵심부품은 외산으로 채워져 있고, 휴대폰 강국이라면서 퀄컴 칩과 RF부품 등 핵심 부품은 외산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반도체의 핵심 재료인 웨이퍼와 소재 또한 마찬가지다. 주요 공정에 사용되는 소재는 외산이 점유하고 있고, 그나마 국산화가 이뤄진 일부 재료는 경쟁력에서 밀려 설 땅을 잃고 있다.

 우리나라가 세계를 제패했다고 평가받고 있는 LCD부문도 소재 쪽으로 내려가 보면 부끄럽기 그지없다.

 세트 중심 수출정책의 산물이기도 하지만 정책 입안자들의 부품·소재산업에 대한 몰이해가 가장 크게 작용했다고 봐야 한다. 이를테면 규모의 경제를 실현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생색도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세트의 경쟁력은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하는 의문을 제기하면 사정은 달라진다. 부품·소재의 가격이 세트의 가격을 결정짓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은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최근 창립 30주년을 맞은 코리아써키트의 송동효 회장은 “세트업체와 협력을 이루지 않고서는 경쟁력을 제고할 수 없다. 특히 정부가 관심을 갖지 않으면 부품산업은 현실적으로 어려움에 처할 수밖에 없다”는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부품·소재산업이 얼마나 정책적인 산업인가를 시사하는 대목이다.

 부품·소재 없이는 세트를 이룰 수 없다. 그런 측면에서 부품·소재산업은 산업의 뿌리라 할 수 있다. 뿌리가 약해서는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없다.

 미 상무부가 80년대 후반 반도체를 비롯한 산업용 기기의 경쟁력이 날로 악화되자 이를 타개하기 위해 추진한 국가 정보기반 프로젝트(NII:The National Information Infrastructure-Agenda for Action)는 사실 산업의 뿌리인 부품·소재산업을 일으켜 세우기 위한 것이었다.

 국방부와 국립항공우주국·에너지부·국립과학재단이 참여한 이 프로젝트를 통해 미 상무부는 기가비트급 차세대 D램과 초전도기술 개발을 완성, 부품과 산업용 기기의 발전에 획기적 전기를 마련했다.

 일본이 90년대 중반 차세대 정보기반 구축을 위한 법제도를 정비하고 독창적 기초연구개발사업에 주력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부품·소재산업을 다듬고 키우지 않으면 국내 IT산업은 사상누각에 머물 수밖에 없다. 미국과 일본처럼 부품·소재산업을 일으키기 위한 특단의 조치를 취할 수 없다면 부품·소재업계가 나름대로 자리를 찾을 수 있도록 환경과 기반을 조성해줘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것은 다름아닌 국산 부품·소재를 많이 써주는 일일 것이다. 그 것만이 세트산업을 살리고 IT산업의 뿌리를 더욱 굳건히 내리는 길일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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