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경쟁력이다>(13)대학의 교육인프라(하)

 오후 6시, 대학 2학년생인 P씨는 학교 정문 길 건너에 위치한 PC방으로 간다. 리포트 작성에 필요한 자료를 인터넷에서 찾기 위해서다. 교내 경영대학 정보검색실이나 전산실을 이용할 수도 있지만 오후 5시면 문을 닫기 때문에 학교 인근 PC방으로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다.

 PC방에서는 늦은 밤 시간에도 PC를 이용할 수 있으며 뿐만 아니라 PC기종도 펜티엄4로 대학 전산실에 있는 펜티엄급보다 훨씬 고급기종인 데다 인터넷 회선속도도 빠르다.

 최고급 인재를 양성하는 대학의 PC환경이 중고생들이 게임이나 채팅 목적으로 사용하는 PC방의 PC환경보다 뒤처지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이는 올초 교육인적자원부와 한국교육학술정보원이 펴낸 ‘2001 교육정보화백서’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지난해 4월 현재 국내 193개 대학이 보유한 PC는 38만6500대. 이중 학생용이 29만2502대, 교직원용이 9만3998대다.

 이를 이용자수로 나눈 PC 한대당 평균 이용자수는 학생용 5.6명, 교직원용 1.0명이다. PC 한대당 이용학생수가 5.6명이라지만 수업 및 연구용 등을 제외하면 아직도 학생들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PC는 제한적이다.

 국내 최고의 국립대학인 서울대의 경우 학생들이 하루평균 8시간 이상 개인학습 목적으로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공공PC 한대당 이용자수는 30.6명으로 조사됐다. 서울대 자체 목표치인 PC 한대당 10명에 비하면 3배 이상이나 초과하는 수준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중고PC 시장에서조차 찾는 이가 별로 없어 천덕꾸러기 신세를 면치 못하는 펜티엄급 PC가 대부분이다.

 펜티엄Ⅲ가 가정용 PC로 자리잡은지 이미 오래고 최근 들어서는 펜티엄4 PC가 가정용 수요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현실에 비춰보면 부끄러운 형편이다.

 대학의 인터넷 인프라 수준 역시 부끄럽긴 마찬가지다.

 비대칭디지털가입자회선(ADSL) 또는 케이블모뎀 등 초고속인터넷 회선보급은 올들어 800만을 돌파하면서 초고속인터넷 부문 세계 최고의 가입률을 기록하고 있지만 대학의 인터넷 인프라는 중위권을 맴돌고 있다.

 매년 아시아권 국가 115개 대학의 정보화 순위를 발표하는 아시아위크에 따르면 2000년 현재 경북대, 서울대, 전남대, 포항공대, KSIAT 등만이 10위권에 들었을 뿐 나머지 국내 대학들은 중위권에 처져 있다.

 이를 세부적으로 들여다보면 경북대가 학생당 인터넷대역폭 기준으로 29.76Kbps, KAIST가 23.86Kbps를 기록해 동률 2위에 올랐고 서울대가 17.14Kbps로 6위, 포항공대가 14.96Kbps로 7위, 전남대가 13.52Kbps로 9위를 기록하면서 10위권에 들었다.

 반면 고려대, 경희대, 서강대, 성균관대, 연세대, 이화여대, 전북대 등 나머지 대학들은 아시아 115개 대학 중 22∼46위에 머무르면서 학교 간 큰 격차를 드러내 우리나라가 인터넷 대국임을 무색케하고 있다.

 2001년 기준으로 인터넷 한포트당 평균 학생수를 조사한 교육정보화백서에도 3.3명으로 나타나 있어 학습연구 및 인재배출의 중심인 대학의 인터넷 인프라는 여전히 개선해야 할 과제로 남아있다.

 이처럼 대학의 PC 및 인터넷회선 등의 기본적인 교육인프라가 답보상태에 있는 것은 대학이 벌어들인 돈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대학이 디지털시대에 걸맞은 인재를 길러내기 위해서는 인재양성의 토양이 되는 직접적인 교육인프라 확충에 과감히 투자해야 하지만 기여금이나 기성회비 등이 교사(校舍) 신축, 인건비 보조 등 간접적인 환경개선에 투입되고 있다.

 감사원이 지난해 5월부터 5개월간 교육부를 비롯해 전국 국립대학에 대한 특별감사를 벌인 결과 각 대학의 2000년도 기성회 회계집행액 7307억원 중 32%에 해당하는 2332억원이 교직원들에게 업무장려금, 학사지도비 등 명목의 급여보조성 수당으로 지급됐으며 추가 4%에 해당하는 289억원은 업무추진성 경비로 부적절하게 사용됐다.

 본래 기성회비는 교육여건 개선을 위해 학생들로부터 등록금에 포함해 징수하는 것이지만 기성회비의 사용대상과 범위 등에 대한 규정이 마련되지 않아 당초 취지와는 거리가 먼 용도로 사용되고 있다.

 기부금에 대한 처리 관행도 대학의 교육인프라 개선에 별 도움이 되지 못한다. 최근 모 대학은 동문들을 대상으로 수백억원의 발전기금을 모아 제2창학을 준비 중이다. 모아진 기부금의 대부분은 교수회관, 연주홀 등 대학 내 건물신축에 쓰여질 예정이며 이미 새건물의 공사는 상당히 진척됐지만 최신식 교사에 부합하는 교내 정보통신 인프라 확대 구축계획은 우선순위에 밀려 아직 확정되지 않고 있다.

 전문가들은 인재양성에 가장 기본이 되는 정보통신 인프라 구축을 촉진하기 위해 대학예산 감사기능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우선 예산 편성초기부터 대학 내 교육인프라의 균형적인 발전을 꾀할 수 있도록 관심을 가져야 하며 책정된 예산이 제대로 쓰이고 있는지 확인하는 감독기능이 강화돼야만 예산의 부당집행을 막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정부가 세계수준의 고급인력 양성을 위해 매년 2000억원씩 투입하는 ‘두뇌한국(BK)21’ 프로젝트를 추진하며 지휘감독, 감사기능을 강화했더라면 수십억원의 지원금이 부당한 용도로 쓰이는 결과를 막을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대학이 학교발전을 위해 돈을 모으는 것도 중요하지만 적재적소에 사용할 수 있도록 이를 효율적으로 배분하는 기능, 집행과정에서 계획대로 처리되는지 감시하는 기능 등을 복합적으로 강화해야만 대학이 진정한 우수인재 양성의 장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최정훈기자 jhchoi@etnews.co.kr>

 

[표]아시아권 115개 대학 중 국내 대학 인터넷 편의도 순위(2000년 기준). 자료:아시아위크

 학교명 학생당 인터넷속도(Kbps) 순위

 경북대 29.76 2

 KAIST 23.86 2

 서울대 17.14 6

 포항공대 14.96 7

 전남대 13.52 9

 전북대 5 22

 부산대 3.99 24

 한양대 3.16 30

 성균관대 2.82 32

 이화여대 2.46 33

 고려대 2.04 39

 연세대 1.40 42

 경희대 1.36 43

 서강대 1.09 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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