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경비구역 JSA’ 이전 ‘달은 해가 꾸는 꿈’이나 ‘3인조’에서 박찬욱 감독의 작품 세계는 영화광으로서의 재기는 충만하지만 역사와 사회·인간에 대한 폭넓고 진지한 시선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았다. 그의 영화는 ‘웰 메이드 무비(well-made movie)’나 장르에 대한 의도적 비틀기를 즐기면서 조악한 B급 영화의 너울을 쓰고 있는 데다 대중적 코드에 의한 커뮤니케이션보다 마니아간의 밀담을 더 즐기는 듯 보였다.
그런 그가 ‘공동경비구역 JSA’에서 이 땅의 분단 현실과 인간에 대한 고민을 풀어 놓으면서 비로소 대중과 행복하게 만나게 된다. 남북한 병사의 교류와 파국을 통해 민족 화해에 대한 근원적 소망과 분단의 엄연한 현실을 인상적으로 드러낸 이 영화로 감독 박찬욱의 이름은 세인의 뇌리에 각인됐다.
그것이 부담이 되었을까. 신작 ‘복수는 나의 것’에서 박찬욱은 대중으로부터 한 발짝 비켜서서 이야기를 건넨다. 그가 대중과의 거리두기로 채택한 전략은 폭력의 극대화에 의한 매혹적 팬터지의 창출이다. 뒤틀린 운명의 희생자들에게 다가오는 잔혹한 폭력 세례는 일종의 제의로 보여질 만큼 비현실적이고, 그 누구도 그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는 점에서 숙명적이다.
이 영화는 폭력의 편재와 순환으로 이뤄진다. 죽어가는 누나의 수술비를 마련하려는 농아청년(신하균)이 해고와 사기를 당하고 급기야 아이를 유괴한다. 그리고 사고로 아이가 죽고 아이의 아버지(송강호)로부터 보복을 당한다. 또 아이의 아버지에게 다가오는 또 다른 복수의 그림자에 이르기까지 복수는 복수를 낳고, 폭력은 또 다른 폭력으로 되돌아온다.
눈을 돌리고 싶을 만큼 잔혹한 폭력 묘사에서 비롯되는 긴장과 심적 부담을 이완시켜주는 것은 간간히 배치된 블랙코미디적 상황-농아청년의 누나가 아픔에 못이겨 신음하고 비명을 토해낼 때 옆방의 양아치들은 그 소리에 흥분해 자위를 하며 몸을 떤다든가-과 엉뚱한 무정부주의자(배두나)의 존재다. 이들은(또는 이런 상황은) 이 영화가 짊어진 중압감을 상당부분 덜어준다.
‘복수는 나의 것’은 진지하고 품위있는 대중영화감독으로 부상한 박찬욱으로서는 일종의 도발이고 도박이다. 그에게 거는 대중의 기대와 그가 욕망하는 영화의 간극이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화적 재미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이 영화를 거부하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영화평론가 수원대 교수 chohyej@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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