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을 통틀어 생체인식에 대한 관심을 가장 많이 올려놓은 공로자는? 질문의 정답은 패스21이다. 10여년 전 시끌벅적했던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시작해서 국정원이니 국회, 언론사, 청와대까지 굴비 엮듯 엮어냈으니 모르는 사람 빼고 다 아는 이름이 될 수밖에. 바깥일과 관계없이 묵묵히 땀흘리고 있는 패스21 가족에게 미안한 얘기지만 오명(汚名)을 날린 2001년이었다. 자연스레 “지문인식? 생체인식? 그게 뭐지?”에까지 생각이 이어졌다. 관심까지는 좋았는데 알려진 바가 적었다. “들어본 적은 있는데... 그거 다 허풍 아냐?”라는 의구심 섞인 막말이 튀어나왔다.
허풍과 위대한 발명 사이의 줄타기는 언제나 위태위태하다. 백여년전, 저잣거리에 나가 “날개 달린 원통을 발명했는데 하늘을 날아서 미국까지 가는데 열시간이면 족하다”고 떠들어댄다면 허풍선이 취급받기가 십상이었다. 그러나 100년이 지난 지금 그것이 우리 삶을 바꾼 위대한 발명이었다는 사실은 ‘이제와 말하기도 부끄러울’ 만큼 당연한 얘기다. 중요한 것은 수많은 허풍 사이에서 위대한 발명을 찾아내는 과정. ‘지문인식 시스템에 손가락만 대면 100만명 중 한명을 1초 안에 정확하게 찾아낼 수 있다’고 전면광고를 실어대는 것이 가진 것 없는 허풍이냐, 아니면 위대한 발명을 알리기 위한 용기냐를 구별해내는 것이다. 더구나 광고를 해대는 당사자도 이게 허풍인지 용기인지 구별하지 못하는 상황이라면 말이 안된다.
누구나 다 자신의 시스템이 100% 완벽하다고 자랑하지만 실상은 자신도 알기 어려운 일이다. “실험실에서 잘 훈련된 연구원들이 손가락을 대보는 테스트는 해보나 마나한 것입니다. 사용자가 시스템에 익숙한가, 사용자가 나이가 많거나 어린가, 실내냐 실외냐, 여름이냐 겨울이냐에 따라 결과가 천차만별인 것이 바로 지문인식시스템입니다. 밝기에 민감한 얼굴인식이나 홍채인식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연구원의 지적이다. 따라서 연령, 센서, 시간, 성별 등에 따라 설계된 데이터베이스를 이용해 객관적인 테스트를 해보는 것이 필요하다.
미국과 영국, 독일 등에서는 FRVT2000(Face Recognition Vendor Test 2000), BioIS, FVC(Fingerprint Verification Competition)2000 등의 생체인식 기술 테스트가 있었지만 우리나라에는 아직 데이터베이스 구축도 미비한 상황이다. 세계 각국 업체들의 지문인식 알고리듬 평가로는 처음 열린 FVC2000에는 프랑스, 싱가포르 등 세계 각국의 11개 업체가 에러율과 인증스피드 등을 겨뤘다. 우리나라에서는 인하대학교 연구팀과 지문인식업체 디토가 참가했다. 각각 7위와 9위인 16%, 22%의 평균에러율을 기록했지만 “테스트를 위한 가혹한 조건이었다”는 관계자의 설명을 참고하면 부끄러운 성적은 아니다. 더구나 2년이 지난 지금까지 연구의 박차를 놓지 않고 있는 그들이다.
엉겁결에 화제의 중심에 섰던 생체인식. ‘세계최고 수준의 기술’이라든지 ‘열쇠없이 완벽한 보안’이라든지 하는 레토릭보다 ‘FVC2000 평균 에러율 16%, 등록실패율 10%, 인증스피드 1.36초…’하는 인하대와 디토의 레토릭이 더 화려해 보인다면 억지일까.
<김용석기자 yskim@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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