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위성방송 ‘스카이라이프’가 난항을 겪는 가장 큰 요인으로 셋톱박스(수신기)의 수급이 최대 이슈로 떠오르면서 이를 둘러싸고 사업자와 제조업체의 책임 공방이 한창이다. 사업자는 제조업체가 개발이 늦어져 납기를 제대로 맞추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반면 제조업체는 무리한 서비스 일정과 수신기의 필수 기능인 수신자제한시스템(CAS)의 인증이 늦어져 이미 예견된 상황이었다는 입장이다.
◇스카이라이프의 힘겨운 출발=디지털 위성방송 개국과 함께 사업자인 KDB는 온갖 비난을 감수해야 했다. 예약 가입자는 50만명에 달하는 데 반해 위성방송 시청에 반드시 필요한 수신기는 7000여대로 수요에 비해 공급이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 위성 안테나 역시 필요한 물량을 공급하지 못해 수급에 차질을 빚기는 마찬가지였다.
이에 대해 KDB는 인프라를 제대로 갖추지 않은 상황에서 무리하게 서비스 일정을 강행한 점도 있지만 수신기 제조업체의 납기지연과 사업관행 때문이라고 제조업체에 화살을 돌렸다. 그동안 제조업체는 사업자에 납품하는 판매방식보다는 ‘오픈마켓’을 겨냥해 시장개척에 나섰고 이 때문에 개발은 물론 납기에 차질을 빚었다는 설명이다.
KDB 박선규 부단장은 “사업자와 공급 계약을 체결하고 원하는 사양에 맞춰 개발에 착수하기는 국내 셋톱박스 업체 역시 처음일 것”이라며 “이런 면에서 제조업체도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제조업체의 ‘항변’=이에 대해 제조업체는 다소 상반된 주장을 펼치고 있다. 삼성전자·현대디지탈테크·휴맥스 등 수신기 공급업체는 사업자와 계약대로 제품을 이미 납품했으며 초기 계약한 물량 30만대가 모두 공급되는 시점은 5월경이라고 반박했다. 실제로 휴맥스·현대·삼성은 이미 계약대로 적어도 5만대 정도를 납품한 것으로 알려졌다. 단지 수신기를 일반 가정에 설치하기 위해서는 수신자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CAS 인증이 끝나야 하는 데 원천 소스업체인 영국 NDS와 KDB의 라이선스 계약이 늦어져 수신기 수급에 차질을 빚었다고 맞서고 있다. CAS 인증을 위해서는 적어도 6개월 정도의 기간이 필요한데 사업자가 이를 미처 고려하지 않은 데 근본 원인이 있다는 주장이다. 제조업체 측은 “계약서에 따라 차질없이 수신기 공급이 끝났다”며 “단지 사업자가 정확하게 초기 가입자 규모를 예측하지 못해 빚어진 사태”라고 말했다.
◇전망=출발부터 난항을 겪은 위성방송의 책임 여부를 떠나 당분간 수신기 수급문제는 풀리지 않을 전망이다. 오는 5월까지 30만대가 차질없이 공급되더라도 이미 예약된 가입자규모 150만명을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수신기는 위성방송 서비스를 시청하는 핵심장비다. 아무리 서비스가 완벽하더라도 정작 이를 쓸 수 있는 장비가 없다면 서비스 자체는 무용지물이 될 수밖에 없다. 사업자와 제조업체가 파행 서비스의 책임 여부를 따지기 전에 지금부터라도 현실성 있는 시장 조사, 제조업체 다변화와 같은 위성방송용 수신기와 관련한 종합대책을 수립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강병준기자 bjkang@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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