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기업들의 해외 자본시장 진출이 기지개를 켜고 있다.
코스닥시장만 쳐다보던 국내 벤처와 이미 코스닥에 등록한 업체들이 올들어 미국 나스닥 및 장외시장을 비롯한 해외 증권시장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지난 99년에도 벤처열기를 타고 나스닥 진출 희망업체들이 봇물을 이루기도 했지만 역량이 부족해 실적을 만들어내지는 못했다.
그러나 올들어선 나스닥 상장기준에 근접한 업체도 늘었고 정부 및 민간 차원에서 지원 프로그램이 속속 마련돼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벤처캐피털 전문가들도 피투자업체들의 코스닥 진입경쟁 과열, 미국 증시 진출에 따른 해외 시장개척 효과 등을 고려해 나스닥 및 OTCBB(Over The Counter Bulletin Board) 상장을 적극 추진중이라는 설명이다.
◇해외증시 진출 기업 현황=현재 해외 증시에 상장된 국내 IT기업은 뉴욕증시에 한국전력·SKT·KT·두루넷·하나로통신·미래산업, 런던증시에 삼성전자·삼성SDI 등이 있다. 이 중 해외증시에 직상장된 기업은 두루넷 한 곳이며 나머지 기업은 주식예탁증서(DR) 형태로 상장돼 있다.
지난 99년 한국기업으로는 유일하게 나스닥시장에 직상장한 두루넷은 기관을 대상으로 한 공모에서 당초 예상보다 6달러나 높은 주당 18달러(액면가 2500원)에 110만주를 발행, 총 1억8000만달러의 자금을 조달했다. 등록후 첫 거래에서도 공모가보다 95%나 폭등하는 등 돌풍을 일으켰다.
두루넷 주식은 한국증시에 상장하지 않은 채 곧바로 나스닥시장에 상장한 데다 한국전력·포항제철 등 뉴욕증시 상장 주식이 DR로 분류된 것과는 달리 미국기업과 동등한 조건으로 거래됐다. 두루넷의 나스닥상장이 성공하자 미래산업과 하나로통신도 미국DR(ADR)를 나스닥시장에 상장했다.
퇴출이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는 e머신즈도 삼보컴퓨터(20.18%로 최대주주)와 KDS(19.92%)가 지난 98년 9월 PC판매를 위해 합작법인 형태로 미국에 설립, 지난해 3월 나스닥시장에 상장시켰다.
이후 나스닥 진출에 대한 국내 IT기업들의 시도는 끊임없이 이어졌지만 성공적인 진출을 이뤄낸 기업은 없다. 데이콤·에이스테크놀로지·프로칩스·한글과컴퓨터·한별텔레콤·다음커뮤니케이션 등이 대표적이다.
◇나스닥 상장 추진업체들=코스닥 등록기업인 한신코퍼는 지난 15일 공시를 통
해 “현재 나스닥 상장을 추진중이며 이를 위해 외국 회계법인의 기업실사를 거쳐 미국증권업협회(NASD)에 서류를 제출하기 위해 회계감사를 준비중”이라고 밝혔다.
프리코스닥 벤처인 신테크는 지난해말 정식으로 NASD로부터 한국의 장외시장에 해당하는 OTCBB 등록승인을 받고 거래를 앞두고 있다. 한방바이오 벤처기업인 메르디안 역시 OTCBB 등록과 관련해 최종 승인을 앞두고 있다.
벤처캐피털의 경우 KTB네트워크는 기존 투자업체 2개사를 미국 나스닥에 상장시키기 위한 프로젝트를 가동, 올해중 결실을 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무한기술투자는 이미 지난해에 투자한 언아더월드를 미국 장외시장격인 아멕스(AMEX) 상장업체와 합병하는 방식으로 우회등록시켰다.
지금까지 상황을 보면 대체로 코스닥 등록기업은 미국 나스닥 시장을 직접 공략하고 있으며 프리코스닥 업체들은 OTCBB·AMEX 등 미국 장외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나스닥 상장지원 프로그램=국내 벤처의 미국 증시 진출에 가장 적극적인 정부부처는 정보통신부. 정통부는 연초에 총 5000만달러 규모의 ‘나스닥 IT 인큐베이팅 펀드’ 결성계획을 발표한데 이어 지난달 15일 산은캐피탈·스틱IT벤처투자 등을 업무집행 조합원으로 선정했다.
산은캐피탈 관계자는 “올해에는 국내 벤처의 해외 진출 기반을 조성하는 데 비중을 두겠지만 미국 벤처캐피털 협력사를 통해 2∼3개 중견 벤처의 나스닥 등록도 추진할 방침”이라고 올 사업계획을 밝혔다.
OTCBB 지원 프로그램은 주로 민간 벤처컨설팅업체를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다.
신테크와 메르디안의 OTCBB 등록을 추진했던 월드캐피털(구 팬캐피탈)을 비롯해 월스트리트캐피털 등이 OTCBB 전문 컨성팅업체로 각각 지원 프로그램을 선보이고 있다. 특히 월스트리트캐피털은 OTCBB와 미국 중소기업 기술지원 프로그램(SBIR)을 연계한다는 구상으로 국내 벤처 가운데 10여개 업체를 선정, 3∼4월에 미국 버지니아주에서 기업설명회(IR)를 가질 예정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 국제협력재단측도 연초에 나스닥인터내셔널측과 제휴관계를 맺고 상반기중 나스닥 진출가능성이 큰 업체를 대상으로 미국에서 IR행사를 가질 계획으로 알려졌다.
◇해외 현지화 전략 지원 프로그램=해외 증시 진출을 위한 현지화 전략이 새로운 트렌드로 부각되면서 각종 지원 프로그램도 봇물을 이루고 있다.
벤처캐피털 등 민간기업은 물론 정부기관도 현지진출 지원 전략의 무게중심을 현지화 및 현지 자본유치 쪽에 두고 있다. 즉 현지 인큐베이팅 작업이 선행되고 있는 모습이다.
한국산업기술재단은 산자부, 호주 빅토리아 주정부, KOTRA 무역관, Austrade 등 한호 정부기관과 정국경제인연합회, 대한상공회의소 등 경제단체 및 유관기관의 후원으로 다음달 22일부터 24일까지 호주 멜번과 시드니에서 ‘2002 한·대양주 기술투자 상담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전경련 부설 국제산업협력재단이 운영하는 한국벤처거래소도 올해 해외 주요 벤처자문기관 등과의 제휴를 통해 국내 벤처기업의 해외 진출을 지원키로 했다.
이를 위해 미국 상공회의소 벤처자문단을 시작으로 인도의 제조업연합회(CII)와 벤처캐피털협회(IVCA), 홍콩의 아시아벤처캐피털저널(AVCJ), 이스라엘의 벤처협회(IVA), 호주의 벤처캐피털협회(AVCA) 등과 업무제휴해 국내기업의 해외진출과 관련한 모든 컨설팅 및 실질지원 네트워크를 형성했다.
중소기업청은 오는 21∼22일 싱가포르에서 벤처캐피털과 이들이 투자한 기업의 자본유치 및 해외진출을 위한 공동 로드쇼를 개최할 예정이다. 한국벤처캐피탈협회(KVCA), 싱가포르벤처지원센터(KVAC)가 주최하고 중기청과 싱가포르경제개발원(EDB)이 후원하는 이번 행사에는 한국벤처캐피털 10개사와 이들이 투자한 15개 안팎의 유망벤처기업이 참여할 예정이다.
코리아벤처포럼은 국내 벤처기업의 해외진출을 도모하기 위해 오는 18일 현대 계동빌딩에서 ‘중소·벤처기업 해외진출 및 제휴·협력 설명회’를 갖는다. 코리아벤처포럼은 이번 설명회를 계기로 다양한 지원 프로그램을 만들어 추진할 계획이다.
◇향후 전망=벤처붐이 최고조에 달했던 시점에 비하면 미미한 수준이지만 좀더 신중하고 치밀해졌다는 점에서 성공 가능성은 오히려 많아 보인다.
특히 국내에서 성장기반을 다진 뒤 주식만 상장시키는 전략보다는 시작단계부터 현지에 법인을 설립하거나 현지투자를 유치하는 등 철저한 현지화 전략을 시도하고 있다는 점이 눈에 띈다.
해외 진출에 임하는 기업들의 분위기도 달라졌다. 단순히 해외증시 진출을 통해 대규모 자금을 모은다거나 국내 주가 관리 차원의 쇼에 그치지 않는다.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기 위한 필수단계로 여기고 있다. 성공에 이르는 과정은 더 힘들겠지만 세계 시장에서 자리잡기 위해서는 피해갈 수 없는 선택이라는 게 벤처기업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현지화가 되지 않는 기업은 자본시장으로 인정받을 수 없다는 점을 뼈저리게 느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증권사 관계자들도 “마케팅력이나 기술력없이 무리하게 나스닥상장을 추진할 경우 오히려 주가가 하락할 가능성이 높고 상장실패에 따른 기업 이미지 실추, 막대한 상장유지비용 부담으로 경영악화를 초래할 수 있다”고 조언하고 있다.
<홍기범기자 Kbhong@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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