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천덕꾸러기 김치냉장고

 지난해 가전업계 최대 효자품목으로 총애를 받았던 김치냉장고가 올해 들어 천덕꾸러기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삼성전자·LG전자·만도공조 등이 에어컨을 한 대라도 더 팔기 위해 김치냉장고를 덤으로 얹어주는 예약 판매행사를 앞다퉈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김치냉장고는 이제 소비자들에게는 ‘미끼상품’ 정도로 인식될 수밖에 없다.

 김치냉장고를 프리미엄 상품으로 키우겠다고 해놓고선 이제와서 끼워팔기 상품 정도로 치부해버리는 제조업체들의 변덕스런 상술에 판매상들조차 어안이 벙벙할 뿐이다.

 물론 사은품 가격이 주력상품의 10%를 넘지 않도록 규정하고 있는 공정거래법을 피하기 위해 업체들은 사은품이 아니라 패키지상품이라는 이름으로 에어컨과 김치냉장고를 판매하고 있다.

 주부들이 가장 선호하는 김치냉장고가 이처럼 미끼상품으로 전락한 데는 이들 업체간의 비뚤어진 경쟁 심리가 불러온 결과다.

 유통업체의 한 관계자는 “이제까지 십수년간 장사를 해오면서 김치냉장고와 시장규모(수량)가 비슷한 TV조차도 김치냉장고처럼 보조상품으로 판매된 전례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김치냉장고의 위상 추락은 업체들의 불필요한 과당경쟁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실토한다.

 그러나 이같은 현상에 대한 책임에 대해 제조업체들은 서로 경쟁업체탓으로 돌린다. LG전자는 경쟁사가 김치냉장고를 먼저 에어컨의 패키지상품으로 파니 어쩔 수 없이 대응한 것이라고 말한다. 삼성전자는 김치냉장고의 재고물량이 너무 많아 이를 처분하기 위해 40% 할인권을 내놓았는데 경쟁사가 통째로 줘 대응할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한다.

 삼성전자와 LG전자가 김치냉장고를 에어컨 패키지 상품으로 팔 때 양사를 비난하던 만도공조도 뒤늦게 김치냉장고를 에어컨의 덤상품으로 팔면서 ‘오십보 백보’라는 비난을 면치 못하고 있다.

 이유야 어떻든 김치냉장고 덕분에 3사는 에어컨 예약판매기간 동안 35만여대를 판매하는 호황을 누렸다. 그러나 예약판매 수치엔 상당한 허수가 존재한다. 공짜인 김치냉장고에서 이윤을 챙기기 위해 대리점들이 의도적으로 예약실적을 높였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들 물량이 흘러나오면 김치냉장고 가격이 폭락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가전업체들이 김치냉장고 성수기인 하반기에 지금의 잘못을 뼈저리게 느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기우인가.

 <생활전자부·안수민기자 smahn@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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