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월드]유럽:英 직장내 e메일 의무 공개방침 기업주‥근로자 긴장

영국 정부 산하 정보위원회는 정보시대 근로자보호책의 일환으로 근로자와 관련된 회사 내 모든 e메일을 본인 요청 시 의무적으로 공개하도록 만들 방침이다. 이에 따라 근로자들은 자신의 인사기록에서부터 주위 동료·상사들이 자신을 두고 한 시시콜콜한 험담 내용에 이르기까지 e메일로 처리된 정보라면 어떤 것이든 알아볼 수 있는 권리가 생겼다.

 이런 정부의 방침이 알려지자 대다수 기업주는 물론 상당수 근로자들도 아연 긴장하는 모습이다. 자칫 주위 동료나 부하 직원을 대상으로 오해의 소지가 있는 e메일을 만들어 보냈다가 이것이 공개되면 본인은 물론 회사에도 치명적인 손실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 과정에서 회사의 의사결정과 관련된 각종 비화(?)가 공개될 경우 그 파장 또한 예측불허다.

 실제로 런던의 유명 법률회사의 찰스 러셀은 지난달 동료 변호사간에 사사로이 주고받은 e메일이 공개되면서 한바탕 곤욕을 치렀다. 한 중견변호사가 흑인 여비서의 교체문제를 놓고 담당 동료에게 “이번에는 정말로 풍만한 금발을 뽑는 게 어때? (지금 여비서보다) 골치일 리도 없고, 적어도 여흥감은 되지 않겠어”라는 e메일을 보냈다가 이것이 그만 해당 여비서의 손에까지 들어간 것이다.

 여비서는 이 e메일을 복사해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고, 찰스 러셀은 이를 무마하느라 1만파운드의 손해배상금을 지불해야 했다. 또한 문제의 e메일을 보낸 변호사는 자신의 행위가 “몰지각하고 분별없는 농담”에서 나온 실수였으니 이를 용서해 달라고 여비서에게 공식사과를 해야 했다.

 그러나 찰스 러셀 사건도 최근 영국을 떠들석하게 만든 이른바 조 무어 e메일 건에 비하면 그리 심각한 편이 아니다. 사건의 발단은 지난해 뉴욕 비행기 테러사태가 있던 바로 그날 시작됐다. 당시 영국 교통부 장관의 특별보좌관역을 맡고 있던 조 무어는 동료들에게 “오늘은 우리에게 좋은 날일 수도 있다. 이 참에 (정부에) 해가 되는 뉴스는 모두 사장시켜 버리자”라는 e메일을 평소처럼 별 생각없이 보냈다. 그러나 한 동료가 이 e메일을 언론에 흘렸고, 이것이 공개되자 그 파장은 심각했다.

 언론은 수많은 사상자를 낸 비극적 사건을 이용해 정부의 실정을 가리자고 주장한 이 여성 보좌관의 사고방식에 연일 비난을 퍼부었고, 야당은 노동당을 통해 낙하산식으로 임명된 특별 보좌관이 현정부를 망치고 있다며 그녀의 즉각적인 해임을 요구했다. 이에 따라 그녀는 비록 해임되지는 않았지만 TV 카메라 앞에서 거의 울먹이는 목소리로 자신의 실수에 대해 참회하는 말을 해야만 했다.

 그러나 사건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지난주 영국 마거릿 공주의 장례식을 기화로 그녀가 전번과 똑같은 내용의 e메일을 동료들에게 다시 보냈다고 이를 언론이 폭로한 것이다. 이에 대해 조 무어는 자신은 그런 e메일을 보낸 적이 없으며, 언론에 공표된 내용은 누군가 자신을 음해하기 위해 e메일의 일부를 조작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녀도 살아남지 못했다. 수상실이 직접 사건에 개입해 사실 여하는 불문하고 그녀와 그녀의 e메일을 언론에 흘린 것으로 추정되는 또 다른 동료 보좌관 한 명의 사임을 받아낸 것이다.

 많은 전문가는 사람들이 e메일을 쓸 때는 다른 때보다 훨씬 더 격의없이 자신을 표현하는 경향이 있다고 믿는다. 일반 편지를 쓸 때 그 누구보다 세심한 신경을 쓰는 영국인이 이처럼 e메일에 관련돼 곤욕을 자주 치르는 것을 보면 과히 틀린 주장도 아닌 것 같다.

 이번 정보통신위원회의 결정으로 영국인들의 e메일 쓰는 태도가 달라질지 우리로서도 관심이 가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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