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근의 정보통신 문화산책>(44)인류진화와 정보통신(Ⅳ)

  

 인류의 진화과정에서 불과 언어, 문자와 함께 크게 영향을 끼친 것 중 하나가 전기(電氣)의 발명과 활용이다. 전기가 일종의 기의 흐름이라고 할 때 발명이라는 용어가 적절한 지에 대한 문제를 배제한다고 해도, 전기의 효용성은 인류진화에 매우 크고 강력한 영향을 끼쳤다. 더욱이 그 특성이 정보통신에 이용되면서부터 전기는 수십 배 강력한 힘을 부여받게 되었고, 그를 통해 인류진화에 더욱 더 큰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BC 600년경 그리스의 탈레스는 호박(琥珀)을 마찰하면 대전(帶電)하여 가벼운 물체를 흡인하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것이 전기 현상의 최초의 발견이지만, 당시는 전기와 자기(磁氣)가 반드시 구별되어 있었다고는 볼 수 없다. 전기와 자기를 명백히 구별한 것은 16세기 말로, 자기와 마찰전기에 대한 과학적인 연구가 시작되었다. 그 후 전하에 음양(陰陽)의 구별이 있다는 사실이 발견되고, 전지가 발명되는 등 전기현상이 정밀과학으로서의 체계를 갖추게 되었다.

 19세기에 접어들면서 많은 과학자들이 전기를 연구하게 되어 많은 법칙들이 발견되었다. ‘옴의 법칙’ `전자기유도의 법칙’ ‘전기분해의 법칙’ ‘전류의 자기작용’ 등 전기적 특성이 정형화되었으며, 이를 통해 산업혁명을 주도하는 안정된 에너지로 활용되고 수많은 전기기기의 발명으로 이어졌다. 이어 영국의 물리학자 J 톰슨이 발견한 ‘전자(電子)의 존재’는 원자물리학의 발전에 의한 물질구조의 규명과 연결되어, ‘전자공학(electronics)’이라고 하는 전자의 응용분야 즉, 진공관이나 트랜지스터를 이용하는 길을 개척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전기를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소개한 책자는 이수광(1563∼1628)이 지은 ‘지봉유설(芝峰類設)’이다. 이수광은 서양과학기술을 소개하는데 힘써 실학의 선구자라 일컬어지는 인물이며, ‘지봉유설’은 현재의 백과사전으로 당시에 많은 관심을 끌었던 책이다.

 “우뢰(電)라는 글자를 옛날 글자로는 우(雨) 밑에 회(回)자를 써서 용과 뱀이 구불구불서린 형상으로 하였다. ‘역경(易經)’에 ‘우뢰는 지중(地中)에 있다. 우뢰는 땅에서 나와서 떨친다’고 한 글이 있는 데, ‘있다’고 말하고 ‘나와서’라고 말한 것은 분명히 무슨 물(物)이 있어서 일 것이다.(중략)

 우뢰는 화(火)의 혹독하고 포악한 정기를 갖고 있다. 그런 까닭에 그 기가 돌에 부딪치면 파열하고, 나무에 닿으면 부러지고, 가옥을 치면 파손된다. 그 기운이 생물에 닿으면 부러지고, 당장에 죽지 않는 것이 없다. 사람이나 가축이 벼락에 죽은 것은 다 몸이 타서 무늬가 부전(符篆)과 같다. 이것은 화기가 태운 것이다. 그것은 죽은 자가 우연히 벼락과 서로 만난 것이지, 벼락이 일부러 친 것은 아니다. 간혹 그것이 가까이 있으면서도 부상하지 않은 자가 있는 것은, 그 화독(火毒)이 몸에 닿지 않았던 때문이다. 이것을 미루어 말한다면, 벼락이라는 것은 음양이 서로 치는 기운을 이룬 것이고, 죄있는 자를 벌주어 죽이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모두 억설인 것이다.”

 이수광은 우뢰가 전기에너지 현상이라는데 까지는 이르지 못하고 일반적인 인식에 그치고 있다. 그러나 벼락은 음양이 서로 치는 기운을 이룬 것이지 죄가 있는 자를 벌주어 죽이는 것은 억설이라고 말한 것은 현상학적 이해에서 좀더 진일보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후에 나타난 실학자들은 정전기나 전기현상에 대한 뚜렷한 개념적 이해를 진보시키지 못하다가 실학과 개화사상의 교량적 역할을 수행한 최한기(1803∼1865)의 ‘전기론’에서 좀더 구체적인 인식이 나타나 자기와 정전기 현상이 거론되기에 이른다.

 “이 대지에는 전기라는 것이 있어 모든 삼라만상 속에 골고루 부존(賦存)되어 있는데, 그 것이 없는 물체가 없고 작용하지 않는 때도 없다. 그러나 생물계에 있는 생기(생명력)와 같은 종류의 것은 아니다. 이것이 모여 움직이면 전기와 불이되고 조용히 숨어들면 흩어져서 은밀한 곳에 감추어진다.

 대기가 운동하고 변화하는 속에는 절로 당기고 미는 두가지의 성질이 갖추어져 있거니와 전기 또한 당기고 미는 두가지의 성질이 있다(혹 당기고 미는 것을 음양이라고 하나 틀린 것이다). 곧 기물 속에 하나는 당기는 힘이 되고 하나는 미는 힘이 되는데 그리되면 당기는 힘은 반드시 미는 힘과 합치려 들고 미는 힘은 반드시 당기는 힘과 합치려하여 피차간에 반드시 회합되려고 힘을 써서 마침내 하나의 기(氣)로 조화됨에 귀착된다. 그것은 마치 두 조각의 구름과 같아 하나는 당기는 힘을 가진 구름이 되고 하나는 미는 힘을 가진 구름이 되어, 두 조각의 구름이 서로 접근되면 꼭 전기가 밀고 당기게 되는 관계로 부딪쳐서 소리를 내는데 그 불빛을 번개(電)라 하고 소리를 우뢰(雷)라 한다. 이것은 바로 전기의 밀고 당기는 힘이 조화를 이루지 못한 증거다.”

 ‘전기론’에는 이어 도체와 부도체, 전기의 발생 등에 관해서도 기술하고 여기서 좀더 나아가 전신을 이용한 통신방식도 소개하고 있다.

 “영국과 불란서의 두 수도는 일천여리나 멀리 떨어져 있는데, 전기를 이용한 통신방식이 발명되고부터는 두나라 간 통신이 몇 십분만 되면 즉시로 통하게 되고, 말을 마주보고 하듯이 한다. 그 방법으로는 영국의 수도에 전기국 하나를 세우고 불란서의 수도에는 전기국 하나를 세운다. 그 전기국에 각각 전기기기 하나씩을 설치하고 피차간을 철선으로 연결하여 영국에서 불란서까지 가는데, 육지에서는 기차길을 따라 백보마다 기둥을 세우고 참(站-역)마다 후(候-돈대 변전소)를 설치하여 전선을 접속하였다.(중략)

 통신하는 방법은 전기로 점과 획을 만들어 문자를 알려주는 것인데, 문자를 보내기 전에 먼저 전기의 힘에 의하여 종을 울려 신호를 하면 수신자는 그 소리를 듣고 종이쪽지를 가지고 가서 바늘이 써주는대로 따라가 이를 이어 맞추어 보낸 문자를 확인한다. 또한 그 빠르기는 직접 말로 하는 것과도 같다.

 근년에 들어 유럽의 나라들은 대부분 직할 지방도시에 전기국을 설치하여 나라의 일에 있어서는 우역(郵驛)을 통하여 전달하는 번거로움을 덜고 상매(商賣)들은 물가를 조속히 알아내는 이점이 있게 되었다. 한번의 수고로 길이 편안하게 되니 관공서나 백성들이 이에 득을 보고 있다.”

 전기의 본질과 전기를 이용한 통신방식에 대한 최한기의 선구적인 이해는 이후 개화기의 선각자들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또한 ‘한번의 수고로 오랫동안 편안하게 되어 정부나 백성들이 이익을 보게 된다’는 기본인식은 현시점에서 세계 정보통신사업을 선도하고 있는 우리민족의 힘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전기를 이용한 통신이란 두 지점 또는 그 이상의 지점 사이에서 부호·음향·영상 등 모든 정보를 전기 또는 전자기적 방식을 통하여 송수(送受)·교류하는 작용의 총칭으로 정의된다. 현대의 모든 통신방식은 이러한 전기적 특성을 이용하고 있다. 빛을 이용한 통신방식 조차도 빛의 전송과 수신과정에서는 전기적 특성을 이용하고 있다. 전기적 특성을 이용하여 통신을 수행하는 방식에서는 송신과 수신 양 지점 사이를 선로에 의한 전류로 연결하는 유선통신과 전자기파를 매개로 하는 무선통신으로 크게 구분되고, 전송되는 정보의 형태에 따라 문자를 전송하는 전신과 음성을 전달하는 전화를 바탕으로 발달되어 왔으며, 이를 통해 인류는 또 한번의 획기적인 진화를 이룩하게 되었다.

 특히, 이러한 전기적 특성을 이용한 정보통신이 컴퓨터와 결합되어 정보의 가공과 전달과정에서 축적이 이루어지면서 인류진화는 급격하게 이루어졌다. 더하기 개념이 아니라 곱하기 개념, 자승의 개념으로 이루어지게 되었다.

 

 

 작가/한국통신문화재단(KT 과학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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