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생체인식기술 이야기>(4)영화,적대적 동반자

 ‘악당이 훔쳐간 소프트웨어를 되찾아라.’ 소프트웨어는 악당의 본부, 그 중에서도 2중 3중의 보안장치가 설치된 곳에 있다. 어김없이 지문인식과 망막인식 출입통제장치가 등장한다. 잠입이 불가능한 상황이 컴퓨터 그래픽으로 설명되고…. 그러나 3인조 미녀 첩보원은 술병에 묻은 지문을 채취해 손가락 모형을 만들고 몰래 찍은 망막 사진을 콘택트렌즈에 인쇄, 유유히 통과한다. 영화 ‘미녀삼총사(Charlie’s Angels)’의 한장면이다.

 생체인식기술은 첩보영화에서 단골로 등장하는 메뉴다. 사람마다 다르고 복제하기 힘든 신체특징을 이용해 보안성을 높인다는 매력적인 아이디어와 재미가 쏠쏠한 볼거리를 제공한다는 점이 관심을 불러일으키기 때문. 사람들이 생체인식기술을 접하는 대부분의 경로가 영화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그러나 영화에서의 생체인식은 항상 ‘주인공에게 주어진 (최고의 난이도이지만 결국은 극복의 대상인) 하나의 장애물’이라는 관습적인 레토릭에 그친다. 생체인식을 널리 알리는 데는 수십번의 광고나 보도보다 효과적이지만 번번이 스타일을 구기는 것이 마음에 들 턱이 없다. 어떻게든 장애물을 넘어서고 마는 주인공의 활약에 관객들은 박수를 보내지만 생체인식을 업(業)으로 하는 입장에서는 은근히 부아가 치미는 장면이다.

 “생체인식기술에서 가장 중시하는 것 중 하나가 생체여부의 확인(live detection)입니다. 100% 완벽하게 침입을 막는다고 할 수는 없지만 간단한 아이디어 차원에서도 충분히 막을 수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 지문인식업체 연구소장의 강변이다.

 이를테면 지문인식창에 가벼운 전류를 흘리거나 실핏줄의 혈류를 감지해 생체인지를 확인하거나(지문인식), 홍채의 미세한 떨림이 있어야 인식을 하고(홍채인식), 녹음기 사용을 방지하기 위해 그때마다 다른 단어를 요구하는(음성인식) 따위의 방법들이다.

 그래도 전류가 통하는 실리콘을 써서 지문 모양을 뜬다든지 빛이 투과되는 필름을 이용한다든지, ‘제아무리 대단한 생체인식기술이라도 뚫고 들어가야겠다’는 쪽의 아이디어도 만만치 않다. 생체인식업체들은 흔히 알려진 방법으로는 절대 뚫을 수 없는 ‘최후의 비책’을 가지고 있노라고 장담한다. 물론 어떤 방법인지는 ‘영업상 최대 비밀’.

 생체인식업체들에 영화는 ‘적대적 동반자’와도 같다. 영화는 생체인식기술이 유명세를 얻게 하고 생체인식은 영화와 독특한 소재를 주고받는 동반자지만 기술을 대하는 입장은 정반대이기 때문이다. ‘실제로는 난공불락’이라는 생체인식업체들의 장담에도 불구하고, (주인공 앞에 무력한) 생체인식기술은 스크린을 쉽사리 떠나지 않을 태세다. 그래도 그들의 ‘적대적 동반자 관계’는 생체확인기술의 확보를 자극하는 자양분이 된다는 점에서 최소한 ‘부적절한 관계’는 아니다.

<김용석기자 yskim@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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