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IT기업 CEO를 만난다>(8)배리 슐러 AOL 회장

 뉴저지 태생으로 당당한 풍채에 턱수염을 기른 AOL의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 배리 슐러(48)는 화려한 의상을 즐겨 입는다. 종종 꽃무늬가 날염된 셔츠에 어두운 색깔의 정장으로 악센트를 준다. 하지만 그는 인터넷 업계에서 패션감각보다는 기계를 좋아하고 또 잘 다루는 인물로 유명하다. 몇 가지 에피소드도 있다.

 그는 집안에 애플컴퓨터의 매킨토시 최신형 컴퓨터 ‘G4’ 3대와 게이트웨이의 PC ‘프로파일’을 놓고 필요에 맞게 이용한다. 외부에서는 삼성전자의 휴대폰을 수시로 활용하고 또 AOL 본사가 있는 버지니아 근교에는 어느 지역에 있든 디지털 음악 및 사진 등을 모을 수 있도록 무선 네트워크도 구축해놓고 있다. 이밖에 초창기 마이크로 컴퓨터 ‘IMSAI’를 본사 사무실에 놓고 틈이 날 때 들여다 보기도 한다.

 이같은 기계 사랑에 대해 주변 사람들은 AOL의 책임자로서 장점도 있지만 나쁜 점도 있다고 지적한다.

 AOL의 한 관계자는 “슐러는 회사의 매출이나 수익 등 숫자와 목표보다는 인터페이스나 기계에 대해 관심이 더 높은 편”이라고 말한다. 긍정적으로 보면 슐러가 창의적인 마인드의 소유자라는 말인 동시에 기계 만지기를 즐기며 제품개발에 몰두하는 스타일이라는 의미다.

 하지만 이는 반대로 비즈니스에 대한 통찰력을 갖고 있지 못하고 자신의 일이 필요로 하는 기술적 전문성도 갖추지 못했다는 혹평으로도 볼 수 있다. 미디어 업계 최대 업체 AOL타임워너의 핵심 부문으로 야심찬 프로젝트를 벌이고 있으며 월가의 요청에 대해 책임있게 나서야 하는 AOL의 수장이 앉아있기를 좋아한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이처럼 상반된 평가를 받고 있는 슐러는 룻거스 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하고 졸업 후 하이테크 기업들의 광고를 주로 다루는 회사 CMP를 설립했다. CMP를 그만둔 슐러는 크리켓 소프트웨어를 거쳐 대륙을 횡단, 캘리포니아로 날아가 메디어(Medior)라는 회사를 만든다. 메디어는 컴퓨서브와 프로디지에 이어 온라인 업계에서 3위였다가 95년 AOL에 합쳐지는데 이때 슐러 역시 자연스럽게 AOL의 일원이 됐다.

 슐러에 대해 CMP의 공동 설립자였던 에리 골렘보는 “주장이 강하고 본능을 따르는 성격”이라고 말한다. 실제 AOL의 성공은 마케팅 부문에서 그의 저돌성에 힘입은 바 크다.

 슐러의 단순하고 명쾌한 성격은 신뢰를 얻기도 했다. AOL의 스티브 케이스 회장도 “슐러와의 첫만남은 매우 인상적”이라며 메디어를 인수키로 했던 이유도 슐러의 솔직 담백성 때문이라고 회고했다.

 합병이래 AOL타임워너에는 ‘통합과 혁신’이라는 회사의 미래 리더십을 놓고 논란이 불거졌다. 제럴드 레빈 CEO는 장기간 야전생활을 해온 리처드 파슨스를 후계자로 지명했다. 합병이전 AOL의 사장이었던 로버트 피트먼이 유력시됐으나 막상 뚜껑을 열자 파슨스가 새로운 인물로 떠올랐다. AOL타임워너에 대한 미래를 양사간 ‘통합’에 두고 파슨스가 역할 수행에 더 적합하다고 평가했기 때문이었다.

 비슷한 잣대가 슐러에게도 들이닥쳤다. 그의 리더십이 ‘혁신’이라는 AOL의 당면과제를 제대로 수행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실제 AOL은 올해 다이얼업 온라인 서비스 제공업체에서 벗어나 새로운 역할을 요구받고 있다. 단순한 e메일 전달업체를 넘어 고속 인터넷 엔터테인먼트 및 전자상거래 허브로서 변신이 필요한 시점에 다다랐다.

 슐러의 역할은 네트워크 업그레이드를 수행하면서도 AOL의 가입자들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

 그러나 풀어가기가 쉽지는 않은 과제다. 슐러가 AOL을 책임진 이래 만만치 않은 징조가 나타나고 있다. 광고부문 매출이 늘지 않고 있는데다 다이얼업 온라인 서비스 가입자 신장률이 둔화되기 시작했다. 지난해 4분기동안 170만명밖에 가입자를 늘리지 못했다. 이는 전년 같은 기간의 200만명에 비해 크게 줄어든 수치다.

 이같은 둔화세는 물론 AOL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슐러의 책임이 면제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일부에서는 “슐러가 희생양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한다. 일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을 경우 회사는 전형적으로 누군가를 새롭게 교체해야 하고 이는 슐러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다”라는 설명이다.

 그러나 슐러는 낙관론을 펴고 있다. 그는 “AOL이 퇴조기에 접어들지 않았다”고 강조한다. 실제로 슐러가 어려움에 빠졌다는 증거도 아직은 없다.

 그는 “광고시장 침체로 AOL이 예상치 못했던 경기침체를 겪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그렇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지속되는 침체로 사업이 타격을 입을 것으로 보는가에 대해서는 결단코 ‘아니다’라고 답할 것”이라는 말로 AOL에 대한 자신감을 보였다.

 <허의원기자 ewheo@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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