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첨단 정보기술(IT)의 특징으로는 흔히 새로운 기술 및 제품의 생명(라이프사이클)이 극히 짧다는 점을 꼽는다. 신제품을 내놓으며 한창 주가를 높이던 벤처 기업들이 하루아침에 경쟁업체에 밀려 사라지는 사례도 IT업계에는 빈번하게 발행한다. 심지어 기술이 발전하는 속도가 너무 빨라 관련 시장이 오히려 위축되는 경우도 있다.
최근 하드디스크드라이브(HDD) 업체들이 맞고 있는 심각한 경영난도 바로 그러한 경우다. 요즘 컴퓨터 기술이 발전한 덕분에 소비자들은 300달러만 주면 100Gb의 정보를 저장할 수 있는 HDD를 살 수 있다. 이는 MP3 파일로 음악을 저장하는 콤팩트디스크(CD)로 환산하면 무려 3000장에 해당하는 용량이다.
이러한 소식은 물론 음악 애호가들에게는 좋겠지만 그 동안 이들 제품을 개발하는 데 주력했던 시게이트테크놀로지(http://www.seagate.com)와 맥스터(http://www.maxtor.com) 등 저장장치 전문업체들에는 등골이 오싹해질 수밖에 없다.
이제 PC 수요만으로는 전세계 HDD 공장에서 쏟아져 나오는 공급물량을 도저히 소화할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재고가 쌓이고 HDD 가격이 더욱 떨어지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이러한 상황을 반영하듯 전세계 시장에 HDD를 공급하는 시게이트와 맥스터, 두 회사는 최근 만성적인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이들 회사는 90년대 중반만 해도 불황을 타지 않는 초우량 IT기업이라는 평가를 받았었다. 그러나 두 회사는 자신들이 개발했던 뛰어난 컴퓨터 저장기술 때문에 최근 인수·합병설이 나돌 정도로 회사경영이 심각한 위협을 받고 있다.
이러한 상황을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는 것뿐이다. 시게이트와 맥스터도 그 동안 HDD 판매를 PC에 의존하던 것에서 벗어나 최근 HDD를 개인비디오녹화기(PVR)와 개인휴대단말기(PDA) 등 가정용 디지털 전자제품(정보가전) 시장으로 확산시키는 것에서 활로를 찾고 있다.
앞으로 정보가전 분야의 성장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시장조사 회사 캐너스 인스탯그룹(http://www.instat.com)에 따르면 HDD 매출에서 PVR 등 정보가전 제품이 차지하는 비중은 현재 약 2%에 불과하지만 오는 2004년을 전후해 그 비중이 10%까지 수직 상승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 회사가 최근 펴낸 보고서는 또 앞으로 하드디스크를 내장한 TV가 본격적으로 보급된다면, TV용 HDD 시장이 불과 몇년 사이에 PC를 압도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티보(http://www.tivo.com)와 소닉블루(http://www.sonicblue.com)는 최근 2년여 동안 맞춤TV 프로그래밍을 내세우며 PVR 제품을 판매한 결과 약 20만명의 가입자를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시게이트와 맥스터는 이들 회사에 저장기능을 가진 비디오카드를 공급, 나름대로 수익을 올리고 있다. 그러나 두 회사는 최근 HDD의 응용분야를 PVR에 이어 PDA와 MP3 등으로 확대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이를 위해 필수적인 소음제거 및 음향기술을 개발하는 데에만 각각 수백만달러의 연구자금을 쏟아 붓고 있다.
그러나 HDD를 PDA와 MP3 등 이동 단말기에 확대하기까지 앞으로 두 회사가 해결해야 할 숙제도 많다. 우선 HDD의 아킬레스건은 진동과 발열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이는 컴퓨터를 사용할 때에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앞으로 HDD를 PDA와 MP3에까지 확대하는 데에는 가장 큰 걸림돌로 지적되고 있다.
시게이트와 맥스터 등 HDD 업체들이 최근의 어려움을 극복한 후 다시 한번 옛 명성을 회복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내놓기에 앞서 실리콘밸리의 중심 도시 마운틴뷰에 있는 컴퓨터박물관(Computer Musium)을 한번 방문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이 곳에서는 IT 업계에서 화려하게 등장한 후 한 시대를 풍미하다가 이제는 사라져버린 유물들을 한 자리에서 만나볼 수 있다.
이 박물관 제일 앞쪽에 있는 허만 홀러리스 기계는 1890년대 미국 인구 조사 때 동원됐던 컴퓨터의 시조에 해당한다. 그 후 태어난 에니악(46년), 크레이(70년), 그리고 제록스 팰러앨토 연구소가 개발한 최초의 PC인 앨토(72년) 등의 컴퓨터들이 모두 연대순으로 나란히 누워 있다. 어쩌면 현재 자태(성능)를 마음껏 뽐내고 있는 첨단 IT관련 제품 중에서도 명예의 전당(컴퓨터 박물관)에 벌써 자기자리를 예약해 놓은 것이 섞여 있을지도 모른다.
<서기선기자 kssuh@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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