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수출경제의 기반인 반도체산업이 허리가 잘려나가는 위기에 놓였다. 삼성전자와 함께 반도체산업의 양대 축인 하이닉스의 매각이 임박했다. 하이닉스와 채권단은 하루빨리 협상을 매듭짓기 바라나 반도체산업계는 이로 인한 국내 반도체산업의 기반하락을 걱정한다. 가격이나 부채탕감과 같은 현안처리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하이닉스 경영진과 채권단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간과해선 안될 사안들을 시리즈로 짚어본다.
반도체산업계는 하이닉스와 마이크론의 협상을 보며 하이닉스가 제2의 대우자동차가 되는 게 아닌가 불안해한다.
대우자동차는 미국 GM과의 협상 초반 반대여론에 부닥쳤으며 여러번 무산될 듯하다가 지난해 9월 어렵사리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그러나 곧 헐값매각이라는 비판이 들끓었다. 이후 헐값시비는 잠잠해져 이달 20일인 본계약을 위한 협상시한이 다가왔으나 우발채무와 단체협약 문제로 막판에 진통을 겪고 있다.
자동차업계는 대우자동차 매각의 난항은 결국 채권단의 성급함에서 비롯됐다고 지적한다. 여러 돌발변수에 대한 대책을 갖고 차분히 협상에 임하기보다는 하루빨리 문제를 해결하려는 욕구가 사태를 그르쳤다는 지적이다.
하이닉스의 매각협상도 마찬가지다. 하이닉스와 채권단은 협상을 지나치게 서두르고 있다. 특히 채권단은 아직 MOU도 체결하지 않았는데 협상시한을 못박은 듯 서두르고 있다.
삼성전자의 한 고위 관계자는 “반도체는 그 특성상 사업 통합시 설비는 물론 기술과 인력 등 따져볼 게 너무 많은데 하이닉스의 매각협상은 ‘과속’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말했다.
하이닉스문제에서 해방되고 싶은 채권단의 바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이러한 속내를 상대방에게 그대로 보여줘 협상을 불리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반도체업계의 한 관계자는 “외신에 나온 대로 마이크론이 설비인수 가격으로 20억∼25억달러를 제안했다면 협상 결렬설은 우리 쪽에서 나와야 하는데 오히려 저쪽에서 나온다”면서 “우리의 협상자세가 이러한 터무니없는 가격제시를 불러온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여기엔 외국과의 매각협상에 대한 우리 사회 전반의 부정적인 시각도 일조했다. 대우자동차에서 보듯 협상중엔 “왜 빨리 끝내지 못하느냐”고 다그치다가도 막상 협상이 타결되면 “왜 그렇게 헐값에 넘기느냐”고 매도하기 일쑤다.
하지만 협상은 현실이다. 타결 후 웃고 악수하기 전까지는 ‘샤일록’과 같은 냉철한 접근이 필요하다.
아무리 양보한다 해도 상대방의 제안이 맞지 않다면 어떤 비판을 받더라도 거절해야 한다. 지금까지 하이닉스와 채권단은 이러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그런 채권단이 최근 일부 은행을 중심으로 협상을 원점에서 재검토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은 아직 대세는 아니나 업계로부터 ‘뒤늦게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런데 채권단이 만일 오른 D램 가격만 갖고 이처럼 태도를 바꿨다면 이 또한 문제다. 가격이 다시 떨어질 경우 입장이 궁색해진다.
업계 관계자들은 “마이크론과 대등하게 협상해야 하는 이유는 D램 가격 상승이 아니라 마이크론이 하이닉스의 인수를 절실히 원하기 때문이다. ‘공짜로 얻는 것은 없다’는 것을 마이크론측에 일깨워주는 데 협상팀이 주력해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마냥 협상을 늦추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인텔과 TI가 메모리사업을 정리한 것은 동일하나 인텔은 적절할 때 정리했으며 TI는 때를 넘겼다. 그 결과 인텔은 초일류 반도체업체가 됐으며 TI는 그 자리를 넘겨주고 틈새시장으로 돌아서야 했다. 일본 반도체업체들은 TI의 행로를 답습했다.
하이닉스와 채권단은 매각이 살 길이라고 판단했다면 가장 좋은 시점에 제값에 팔아야 한다. 이를 위해선 제스처라 할지라도 시간에 쫓기지 않는다는 태도를 보여주는 게 필요하다. 실제로도 시간은 많다.
<신화수기자 hsshin@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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