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6년 개발된 최초의 컴퓨터인 애니악은 한번 전원을 연결하면 필라델피아 지역의 전기가 전부 나갈 정도였다고 한다.
속도는 지금 PC의 80만분의 1에 불과했지만 크기는 어마어마했다. 반도체기술의 발달로 컴퓨터는 손안에 들어올 정도로 작아졌지만 현재와 같은 기술로는 곧 한계점에 다다른다. 4∼5년 후면 반도체를 더이상 미세화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나노기술은 이러한 문제점을 없애준다. 기존의 반도체는 수천개의 전자가 이동함으로써 작동하지만 나노기술을 이용하면 원자나 전자 하나하나에 정보를 저장하고 재생하는 것이 가능하다. 이렇게 크기가 작아지면 에너지효율이 증가한다. 손바닥만한 슈퍼컴퓨터가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나노기술은 전자통신에서부터 재료·의약·생명과학·환경·에너지·우주·안보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분야에 응용될 수 있다.
현재 해외에서 진행하고 있는 연구 중에는 인간의 몸속에서 만들어지는 유기화합물인 ATP에 나노크기의 기계를 부착하는 연구가 있다. ATP 머리부분에 니켈프로펠러를 부착해 만든 ‘생체모터’다.
이 생체모터를 응용하면 유기화합물이 프로펠러에서 만들어낸 에너지로 몸속을 여행하며 여러 질병을 치료하는 것이 가능하다. 여기에 더 나아가 스스로 원자를 조합해 하나의 세포로 성장하고 기관을 만드는 생물의 자기조합(self assembly)기능이 적용될 수 있다. 인간이 만들어내는 나노물질에 생물학적 조합능력을 프로그래밍할 수 있다면 그 파급력은 엄청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스스로 진화하는 나노로봇이 꿈만은 아니다.
이같은 미래사회를 구현하기 위한 나노기술 성과들이 하나씩 실현되고 있다. 과학자들은 나노기술이 지난 수십년간 발전을 거듭, 조만간 분자를 조립할 수 있는 기기를 만들 수 있는 단계에 도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초기 나노기술은 군용이나 화학용 혹은 재료를 만드는 회사에서 사용될 전망이다. 이어 바이오기술 업계가 바이오센서, 치료기기, 의약전달시스템, 조직치료 및 재생 등 다양한 분야에서 나노기술을 활용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리고 전자·컴퓨터·전자기계 등이 나노기술을 적용할 전망이다.
업계에서는 바야흐로 나노기술이 혁명기로 접어들었다고 강조한다. 단기적으로 보더라도 나노기술은 기존 기술의 발달에 의해 개선될 뿐만 아니라 여기서 더 나아가 기존 시장을 붕괴시킬 정도의 위력을 갖는 새로운 기술로 부상할 것으로 예상된다.
때문에 나노기술은 가히 ‘혁명’이라고 불릴 수 있을 것이다. 다만 현재는 혁명의 아주 초기단계이며 어느 정도 모습을 드러내는 데는 10년 이상의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나노기술분야에서 우리나라는 아직 기초적인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이미 지난 80년대 초부터 나노분야에 대한 연구를 시작한 미국 등 선진국에 비해 훨씬 늦은 90년대 중반부터 나노기술 연구를 본격화한데다 인력과 장비도 크게 부족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해에는 국내에서도 나노기술과 관련된 수많은 기초적인 성과들이 나왔다. 포항공대 김광수 교수팀은 0.4나노미터로 세계에서 가장 가늘고 집적도가 높은 나노선을, 서울대 현택환 교수는 균일한 나노자성체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또 삼성종합기술원 최원봉 박사팀도 차세대 메모리로 꼽히는 탄소나노튜브를 상용화하는 길을 여는 등 성과가 속속 나타나고 있어 나노분야에서 앞서 있는 선진국을 따라잡기는 시간문제일 뿐이다.
<권상희기자 shkwon@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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