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16년인 1583년이다. 율곡 이이는 경연에서 10만 양병론(養兵論)을 역설했다. 그렇지만 선조를 비롯한 당시 조야는 귓전으로 흘려들었다.
9년 뒤 임진년에 왜란이 터졌다. 결국 물리치기는 했으나 민족 역사에 큰 상처가 되었다.
사람들은 유비무환의 중요성을 얘기할 때 10만 양병론을 곧잘 끄집어낸다. 조선이 율곡의 경고대로 군사를 길렀다면 전란에 휩싸이지도 않았을 것이며 승리도 앞당겨졌을 것이라는 게 역사의 가설이다.
10만 양병론이 420년 만에 또 다시 등장했다. 이번엔 병사가 아닌 정보기술(IT)인력이다.
업계는 물론 학계와 정책당국 모두 IT인력 양성을 소리높여 외친다. 이번 전자신문이 실시한 IT대통령 설문 조사에서도 가장 많은 응답자가 이를 IT 대통령의 가장 큰 책무로 꼽았다.
호소의 절박함은 선조 앞에 업드린 율곡의 그것을 뺨칠 정도다.
IT는 이미 국가 경쟁력의 척도다. IT전쟁에서 지면 후진국으로 떨어지지는 않더라도 절대로 선진국에 오르지 못하게 돼 있다.
경제대국 일본이 다시 미국에 주도권을 빼앗긴 것도 IT전쟁에서 완패했기 때문이다. 일본은 전쟁이 벌어진 것도 나중에야 알았다.
국내 IT업계 전문가들은 우리가 명실상부한 선진국으로 발돋움하려면 IT강국을 만들어야 하며 이를 위해선 인력 양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그런데 각론에 들어가면 의견은 흐트러진다.
한쪽에선 ‘파워엘리트’들을 집중 발굴해 육성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반대편에선 대중적인 저변 확대의 시대가 왔다고 맞선다. 또 대기업에 맞는 인력이냐 벤처기업에 맞는 인력이냐 논란이 인다. 기업이냐 대학이냐 양성 주체를 놓고서도 옥신각신한다.
이러한 논란들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것은 우리의 IT인력수급 구조가 얼마나 엉망인 채 방치됐는가를 보여준다.
특히 전체적인 IT인력 구조를 한눈에 파악하고 방향을 잡아가는 책임있는 정부기관이나 부처간 협의체도 없어 해결이 쉽지 않다.
IT산업이 국민 경제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 때엔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문제 삼을 이유도 없었다.
그러나 좋든 싫든 IT산업이 핵심 산업으로 떠오른 이상 이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신중하면서도 신속한 해결책이 나와야 한다.
사람들이 해결책으로 IT인력 양성을 외치지만 이유는 사뭇 다르다. 기업들로선 ‘좀 쓸 만한 사람을 길러 달라’는 요청이며 대학들은 ‘제발 취업난을 해소해 달라’는 요구다.
IT대통령은 이처럼 다양한 요구를 한정된 자원으로 풀어가야 하는 부담이 생겼다.
이러한 문제는 선택과 집중으로 풀 수 있다. 국내 IT산업의 장기적인 발전을 위해 꼭 필요 인력에 대해선 지나치다는 비판을 받더라도 적극 투자해야 할 것이다. 물론 어떤 분야를 선택할 것이냐는 문제가 남으나 인력 수급에 대한 데이터베이스(DB)의 구축과 이를 바탕으로 세부 정책을 만들 전문가 그룹을 만들면 된다.
지금은 방법보다는 의지가 절실히 요구된다. 대통령이 직접 챙겨야 한다는 요구가 빗발친다는 것은 역으로 현 구조로는 IT인력 양성이 요원하다는 뜻이다.
<신화수기자 hsshin@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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