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특집>사람이 경쟁력이다-글로벌시대 지식강국 파워

 “도쿄대생은 머리가 비었다.”

 얼마전 일본 최고의 대학 도쿄대 학생들이 바보가 됐다는 통렬한 비판이 일본 내부에서 제기돼 충격을 주었다.

 본인도 도쿄대 출신인 다치바나라는 거물 저널리스트가 불을 지핀 무식한 ‘도쿄대 학생론’은 일본은 물론 전세계의 관심을 모으기에 충분했다. 고교때 생물도 안배우고 의학부에 들어온 학생, 뉴턴 역학도 모른 채 기계공학을 전공하는 학생이 즐비하고 심지어 지구둘레(4만㎞)를 46만㎞나 4000㎞라며 어이없는 대답을 하는 이과 지망생도 수두룩하다는 것이다.

 다치바나는 도쿄대가 엘리트의 산실이라는 것은 많은 부분이 환상이며 무능한 도쿄대 출신이 기업에서 제역할을 못하는 예가 많다고 꼬집었다. 그래서 최고의 엘리트 수재집단의 현실과 일본의 장래를 걱정하는 많은 지성인의 공감을 얻었다.

 일본이 도쿄대 학력저하론으로 들끓고 있을 때 서울에서도 비슷한 사례

가 공개됐다. 서울대가 세계수준보다 20년 이상 뒤져있고 학생 10명 가운데 4명은 수업시간을 제외하고는 하루 1시간도 공부하지 않는다는 블루리본 패널보고서가 발표됐다. 또 미국, 일본, 유럽의 석학 6명이 작성한 이 보고서에 따르면 서울대 자연과학계열 교수들의 10년간 1인당 발표논문이 하버드나 도쿄대의 4분의 1 수준에도 미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가주도의 강력한 계획경제, 대기업에 의존한 국제경쟁력 확보, 원천기술이 아닌 응용기술과 생산기술을 앞세운 산업구조 등 ‘닮은 꼴’ 성장으로 세계경제사를 장식했던 일본과 한국에서 공교롭게도 비슷한 시기에 이같은 내부 반성의 목소리가 터져나온 이유는 무엇일까.

 해답은 간단하다. 21세기 디지털 지식정보시대에는 더 이상 과거 산업사회 시절의 경쟁력이 통하지 않게 됐다는 기본 인식에서 비롯된 문제의식이다. 바로 모든 경쟁력의 원천이 ‘사람’인 시대, 그 사람에 대한 경쟁력이 약화되고 있다는 뼈아픈 지적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폴 크루그먼 MIT 교수의 일본경제 진단은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그는 사상 최강의 산업경쟁력을 자랑했던 일본이 10년 불황을 탈출하지 못하고 허덕이고 있는 이유를 금융구조조정의 미흡 탓이라고 말한다. 불경기를 타파하는 지름길은 이자율을 내려 소비를 자극하고 경제 중심축의 구조조정을 동시에 진행해야 하지만 일본은 이자율만 인하한 채 핵심인 금융구조조정이 지지부진, 반전에 실패했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금융구조조정을 단행할 주체, 즉 관료와 정치인들의 정치적 시각, 아날로그적 사고 때문이라는 지적이 숨어있다. 똑같은 구조조정을 추진해도 외국인이 지휘한 닛산은 재기 신화를 이뤘지만 일본정부와 기득권세력이 담당한 금융권은 여전히 대세를 읽지 못하고 있다는 분석이 뒤따른다.

 정보화시대 모든 것을 좌우하는 단 하나의 열쇠, 키워드가 있다면 그것은 ‘사람’이라는 논리가 된다. 정치도 경제도 비즈니스도 연구개발도 결국은 사람의 몫이다. 고부가 지식산업으로 갈수록 사람 개인의 경쟁력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 슈퍼스타 한 두명이 경제를 쥐고 흔들며 뛰어난 창의력을 앞세운 몇몇 인물이 산업과 기술을 재배하는 세상이 된 것이다.

 이를 잭 웰치는 “안타를 잘 치는 10사람보다 1명의 홈런타자를 기르는 것이 기업성공의 지름길”이라고 표현한다. 어디 기업뿐이겠는가. 국가경영 전반에도 같은 등식이 성립한다.

 그렇다면 사람의 경쟁력은 무엇이고 그것은 어떻게 길러지는가. 과거에는 소위 교육받고 숙련된 노동력이 경쟁력이었고 곧 국가의 자원이었다. 지금도 이 논리는 어느 정도 유효하다. 영어를 구사하고 컴퓨터를 다룰 줄 알아야 하며 해박한 전공지식으로 무장한 ‘사람’이 요구된다.

 그러나 이는 경쟁력이라기보다는 기본 조건이다. 경쟁력이란 남과는 다른 차별화된 성격의 보유 여부에서 출발한다. 무한경쟁시대 전세계 60억 인구가 모두 경

쟁상대인 판에 남과 비슷한 정도로는 경쟁력을 이야기한다는 것 자체가 우습다.

 시대가 요구하는 경쟁력은 창의력과 불굴의 도전정신이다. 이를 확보한 사람이 곧 경쟁력을 갖추게 되고 그런 사람이 많은 나라와 집단일수록 강한 나라와 공동체가 된다. 또 이를 간파하고 차별화된 인력양성계획을 입안하고 시행하는 관료집단의 사람 경쟁력이 강한 정부의 모태가 된다.

 미국인들은 이미 ‘박스에서 탈피한 사고(thinking of out of box)’를 가진 사람이 진정한 경쟁력이라며 교육체계에서부터 기업의 사원 프로그램에까지 이를 강조한다. 즉 스테레오타입의 고정화된 사고방식으로는 정보사회를 헤쳐나갈 수 없다고 보고 창의력과 도전정신으로 무장된 미래의 사람을 길러내는 것이다. 이는 교육으로 해결해야 한다. 교육이 사람 경쟁력의 첫 화두로 등장하는 이유다.

 사람 경쟁력에도 급이 있다. 전세계 수백, 수천만명의 프로그래머가 있지만 과실은 빌 게이츠 혼자서 독차지한다. 타이거 우즈와 마이클 조던이 경제의 트렌드를 바꿔놓는다. 스티븐 스필버그는 우리가 한 해 동안 자동차를 수출해서 번 돈보다 더욱 큰 달러를 챙긴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들과 같은 스타, 1등급 사람을 길러내고 키워주는 일이다. 3등급, 4등급 사람 경쟁력으로는 지식정보사회에서도 후진성을 면할 수 없다.

 그렇지만 우리 현실은 하늘만 바라보기에는 아직도 갑갑하다. 세계 최고수도 필요하지만 산업 전반에 투입되는 인력 전반의 경쟁력도 함께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직도 한국은 생산경쟁력으로 먹고 사는 나라다. 지금까지 확보해 온 상대적 노동력 우위를 지켜가야 한다. 자연히 국가 차원의 인력육성정책에 눈이 돌아갈 수밖에 없다. 이것이 두번째 화두다.

 전문인력육성에는 조건이 붙는다. 선택과 집중의 원칙에 의해 전체적인 수준을 높이면서도 고급두뇌집단의 경쟁력을 더욱 향상시키는 질적인 변환에 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양적 팽창에 매몰돼 수재를 하향평준화해서는 곤란하다. 교육과 정책의 지렛대가 상향평준화에 맞추어져야 한다. 사람 경쟁력의 세번째 화두다.

 사람을 키우는 일과 그 경쟁력이 인정받기 위해서는 사회적 풍토도 뒷받침돼야 한다. 자연계 최고 수재인 서울대 물리학과 학생들이 너도나도 사법고시에 몰려드는 사회적 분위기로는 이 나라의 미래는 없다. 나라를 경영하는 주도세력이 법대와 경영대 출신으로 꽉 짜여져 있고 이공계 전문가는 찬밥 신세인 상황에서 사람 경쟁력을 논의할 수 없다. 전문가가 대우받고 그래서 나라 경영의 틀이 바뀌어야 한다. 네번째 화두다.

 취업시즌에 사람은 넘쳐나도 정작 쓸 사람은 없다. 비메모리 등 고부가시장에 뛰어들려 해도 전문 고급인력이 부족하다. 기발한 창의력으로 비즈니스에서 성공을 거둬도 깎아내리기 바쁘다. 우리의 현실이다.

 사람에 대한 투자는 미래에 대한 투자다. 우리는 이제 그 미래를 향해 조심스럽지만 힘찬 발걸음을 내디뎌야 한다.

<이희영기자 hylee@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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