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포럼>IT 두뇌를 키우자

◆최양희 서울대 컴퓨터공학부 교수 yhchoi@snu.ac.kr

 지금 세계는 미국이라는 초일류 국가의 경제적·정치적·문화적·군사적 영향 아래에 놓여 있다. 이에 맞서는 유럽연합·일본·중국·러시아는 부분적으로는 영향력을 가지지만 미국과 같이 광범위하고도 전반적인 통제력을 지니고 있지는 못하다.

 역사도 짧은 미국이 이렇게 20세기 이후 세계의 지배자로 급부상한 원인은 무엇보다도 개척정신이라고 본다. 그리고 우수한 인재를 세계 각지로부터 끌어모으는 블랙홀과 같은 강력한 흡인력을 들 수 있다. 특히 과학기술의 우수 인재들은 미국의 좋은 교육환경·연구시설 그리고 직장을 찾아 끊임없이 몰려들고 있다.

 미국의 고등교육기관·우수연구기관을 보면 구성인원의 절대 다수가 인도·중국·한국 등에서 온 외국인이다. 미국은 우수인력을 바탕으로 많은 기술을 개발하고 이를 기반으로 막강한 경제를 구축했으며 나아가서 정치·사회·문화·군사도 장악하게 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정보기술(IT) 분야는 미국으로의 인력 집중도가 더욱 심한데 이같은 IT의 발전에는 미국의 자유스럽고 경쟁적인 환경이 타 분야보다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최근 인도의 우수교육기관인 인도공과대학(IIT)을 방문했는데 80% 이상의 졸업생이 미국으로 떠나며 다시 귀국하지 않는다고 한다. 중국도 수십만명의 고급두뇌를 미국으로 유학을 보냈으나 공부가 끝난 뒤에 귀국한 경우는 10%를 밑돌고 있다. 중국의 공대 졸업생의 최고 직장은 외국 기업이다. 최근 서울대학교에서 맥킨지에 의뢰해 나온 보고서에 따르면 서울대 공학계 졸업생 다수가 유학 내지 미국으로의 취업을 계획하고 있다고 한다. IT 분야 학과의 경우 국내 최고 수준의 대학에서조차 석사 및 박사의 신입생 선발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IT 분야의 국내 고급인력 양성이 어려움을 겪자 여러 가지 방안이 정부·기업으로부터 강구되고 있다. 특히 IT대학원 정원을 확충하는 데 필요한 재원보조, 미국 대학으로의 유학비용 지원, IT 인력양성 대학 신설, 국제 공인 IT자격증 교육기관 지원 등이 시행되고 있다. 또한 고등학교에서도 선발된 학생을 외국으로 유학보내는 프로그램이 등장했다. 이러한 광범위한 인력양성 방안이 국내의 고급 IT인력을 공급하는 데 매우 반가운 소식임에 틀림이 없으나 한편으로는 그 효과를 기대할 만큼 볼 수 있을지 대단히 미지수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학생을 포함한 국내의 IT 고급두뇌의 미국 진출이 최근 급증하는 이유는 몇 가지가 있다. 먼저 외환 위기 이후 국내의 기업이나 직장이 안정적이지 못해서 외국 기업이나 외국 직장을 선호하고 있다. 국제화의 세찬 바람이 기업은 물론 교육기관에도 불고 있어서 국내 대학들이 국제화를 시도하고 있다. 국내 대학에서 외국인 교수를 채용하고, 외국 학생을 선발하며, 영어로 강의해 국제화를 추진한다고 해도 단기간에 미국의 최고 수준의 대학을 쉽게 따라잡을 수 없는 것은 분명하다. 학생들은 이러한 반쪽만 국제화된 국내의 대학을 가느니 차라리 바로 외국 대학으로 진학하려고 할 것이다.

 즉 국제화의 추진은 과도기적으로 국외로의 두뇌 송출을 수반하지 않을 수 없으며 이 점을 어떻게 현명하게 극복하는가가 우리에게 주어진 숙제인 셈이다.

 점점 하나로 묶이는 세계화의 환경에서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IT 고급두뇌 확보전략은 과연 무엇인가. 한편으로는 무조건 IT선진국으로 많이 내보내서 학위 취득도 시키고 취업도 하게 하면 결국 이 중에서 조금은 귀국하거나 한국 기업에 종사해서 우리나라 IT 발전을 책임지지 않을까 하는 전략이 가능하다.

 지금의 중국이 이와 비슷한 처지다. 인도는 많이 내보내지만 아주 조금만 돌아오거나 또는 인도 기업에 종사하므로 큰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위의 전략과는 정반대로 국내의 고등교육기관 수준을 한껏 높여서 여기에서 배출된 두뇌로 국내의 기술력을 고도로 성장시켜 해외에서 훈련받지 않은 두뇌로도 충분히 국제 경쟁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이 있을 수 있다. 일본을 이와 유사한 처지다.

 그러나 이 모델이 성공하려면 일단 국내의 경제 규모가 충분히 크고 안정돼 있어야 하는데 이 점에서 한국은 일본과는 거리가 멀다.

 우리가 원하는 목표는 단순하다. 즉 국제 경쟁력을 가진 고급두뇌가 한국의 IT 분야에 많이 종사하게 하는 것이다. 외국인의 고용은 막대한 재원이 소요되므로 근본적인 해결책이 안된다. 국내에서 우수한 학생을 선발해 외국에서 공부시키고 강제로 귀국시키는 방안도 좋으나 마찬가지로 많은 재원이 들며 너무 관 주도적이다.

 결국 위의 방안을 추구하되 근본적으로는 국내에서 IT 고급두뇌를 많이 배출하는 고등교육기관을 체계적으로 육성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미국·유럽·싱가포르와 같은 선진국에서 시행하고 있는 IT관련 학과의 자율적 운영, 학생 선발, 등록금 책정, 교수 선발 및 처우를 시행하지 못하고서는 국내 IT학과 수준 향상은 요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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