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경기침체와 MP3의 영향에 따라 가요에 대한 관심과 음반구매력이 크게 떨어졌다. 그러나 이례적으로 다수의 곡을 모아놓은 편집앨범, 이른바 ‘컴필레이션’ 앨범이 그나마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140만세트가 팔리며 판매선풍을 일으킨 CD 4장짜리 ‘연가’를 위시해 ‘애수’ ‘러브’ ‘동감’ 그리고 ‘첫사랑’ 등 최소한 CD 5장 이상인 컴필레이션 앨범이 줄줄이 쏟아져나와 대형광고로 소비자들을 유혹했고 그만큼 판매량도 늘었다.
이 때문에 음반사들은 가수발굴은 뒷전인 채 오로지 이리저리 곡을 구해 편집앨범을 만드는 데 혈안이 됐다. 과거 리어카 불법상혼을 방불케 할 정도였다.
또한 컴필레이션 앨범은 예외 없이 가수 아닌 스타 배우를 재킷으로 내거는 마케팅을 취했다. 이미연의 경우 ‘연가’의 표지모델이 되면서 스타덤을 공고히 하는 데 큰 힘을 받았다.
그것은 배우와 노래를 결합하는 ‘복합 마케팅’의 의미도 컸지만 값비싼 배우를 끌어들여야 하는 ‘고비용’의 역기능도 나타났다.
고비용구조는 뮤직비디오에서 판을 쳐 중견가수의 경우 앨범제작이 1억원인 데 비해 뮤직비디오 제작에 무려 3∼4억원을 써야 했다. 음반판매량 격감에도 불구하고 음반제작에 돈은 더 들여야 하는 악순환이 거듭되면서 음반제작자들은 “점점 음악장사하기 힘들어진다”는 푸념으로 치를 떨었다.
컴필레이션 앨범의 횡행은 가수의 독집이 약화되는 부작용을 낳았으며 개발에 시간이 요구되는 신인의 발굴은 더욱이나 힘들었다. ‘벌써 1년’으로 풍성한 수확을 거둔 브라운아이즈를 빼놓고 올해만큼 유망신인이 가물었던 해도 없었다.
김건모, 박효신, 박진영, 쿨, 왁스, 이기찬 그리고 god 등 실적이 좋았던 가수는 모조리 중견 또는 이미 수년 전에 데뷔한 인물이었다.
올해 가장 기억할 만한 가요계 성과는 눈에 보이지 않는 ‘변화의 조짐’이란 것이었다. 김건모가 방송차트에서 왜 문차일드에 뒤졌느냐는 강한 의문제기와 함께 방송출연을 거부한 것이나, 그와 동시에 터진 연예제작자협회 MBC 출연거부사태는 가요계 권력인 방송에 대한 도전이자 앞으로는 이에 전적으로 의존하지 않겠다는 선언이기도 했다.
문화개혁시민연대의 가요순위프로 폐지운동은 이 문제를 사회화했다. 올 여름 유난히도 가수의 콘서트가 많았던 것 역시 이제 ‘방송에서 공연으로’ 가수활동의 거점을 옮기려는 변화의 흐름이 빚어낸 결과였다.
가수 이미지도 변화되고 파괴됐다.
갑자기 엽기 이미지가 부상해 이상한 외모와 춤의 생쇼로 무장한 싸이, 음치가수로 스포츠신문에 스타스토리도 연재된 이재수, 그리고 유치한 안경과 복장의 자두 등이 캐릭터시장의 엽기토끼 마시마로와 함께 스타로 발돋움했다.
트랜스젠더 하리수도 가수로 데뷔했고 누드사진집의 정양도 힙합그룹 씨클로의 멤버로 무대에 섰다. 평범한 소재는 더 이상 안된다는 ‘자극시대’의 정점이었다.
‘얼굴 없는 가수’가 잇따라 통한 것은 자극적 흐름을 역으로 관통한 기획의 개가였다. 왁스에 이어 김범수, 브라운아이즈 등은 인기가수가 되려면 TV와 뮤직비디오에 출연해야 한다는 관행을 깨고 도리어 얼굴감추기를 통한 호기심으로 어필했다.
‘다들 영상에 나오니까 안 나와도 된다’는 사고가 먹혀든 것이었다.
변화는 국내보다 해외시장 개척에서 청사진을 제시했다. 클론의 대만 정복에 이어 안재욱, NRG, 베이비복스, HOT, 김현정 등이 중국시장에 진출, 그곳의 ‘소황제’들을 사로잡으면서 한류(韓流)열풍이 몰아쳤다.
그것은 가요가 우물안 개구리를 벗어나는 획기적 전기를 마련했다. 이어 김범수는 연말 대망의 미국 빌보드차트에 진입하는 또 한차례 낭보를 전했다. 가수들마다 ‘앞으로는 외국에서 음반을 팔겠다’는 말이 입에 붙어 다녔다.
해외 승전보와 달리 내수시장은 미미한 실적이었지만 대신 논쟁은 풍성했다. 가수의 가창력 소홀과 과다홍보, 신비조장 등의 세태를 꼬집은 가수 이은미의 글은 실명을 거론하지 않았지만 누구나 알 수 있는 상황이어서 서태지 마니아의 집중타를 맞았다.
서태지 마니아들은 또한 음치가수 이재수가 서태지의 ‘컴백홈’을 패러디한 것과 관련, 저작권 승인과정의 문제점을 들어 저작권협회와 충돌하는 등 바쁜 한해를 보냈다. 서태지와 이재수를 둘러싼 패러디 논쟁은 마침내 법정으로 비화돼 더운 여름을 한층 무덥게 했다.
패러디에 의해 고전적인 화두였던 립싱크와 표절은 잠복상태로 들어가는 듯했지만 왁스는 립싱크를 금한 TV프로에서 ‘화장을 고치고’를 잘 부르면서 상대적으로 돋보여 새삼 립싱크가 얼마나 고질적인 문제인가를 알려주었다. 또 표절도 다시 고개를 들어 갈 길이 바쁜 god의 발목을 잡았다.
그들에게 ‘길’을 써준 히트메이커 박진영 또한 성을 노골적으로 암시한 자신의 앨범 ‘게임’으로 청소년불가를 주장한 기독교윤리실천운동과 열띤 섹스논란을 벌이면서 올 가요계가 논쟁의 한해가 되는 데 기여했다.
역시 박진영이 만들어준 ‘또 한번 사랑은 가고’의 이기찬은 올해 R&B 발라드 득세의 가장 확실한 수혜자였다. 꺾기 창법을 특징으로 한 R&B는 박효신, 박화요비, 김범수, 브라운아이즈 등을 발라드 스타로 떠올리며 힙합형 댄스를 누를 정도의 기세를 과시했다. 이 부문 최고스타라 할 성시경이 웅변하듯 늘 댄스에 뒤졌던 발라드가 모처럼 우세승을 거둔 한해였다.
불황 속에서 김건모의 재기는 빛을 발했다. 전작의 부진을 떨쳐내고 전염성이 강한 댄스곡 ‘짱가’ 덕분에 그의 7집 신보는 100만장 이상이 팔려나가며 ‘역시 김건모’라는 찬사를 받았다. 반면 4장의 앨범 내리 100만장신화를 되새김질한 조성모는 ‘잘 가요 내 사랑’이 초기의 강풍과 달리 이내 열기가 식어 위기를 맞았다. 와중에 그는 GM에서 혜성미디어로 소속사를 옮겼다.
HOT가 해산한 것도 특급뉴스였다. 강타와 문희준은 솔로로 성공했고 탈퇴 3인방 토니안, 이재원, 장우혁은 JTL이란 그룹을 만들어 새출발을 알렸다. 여전한 틴 뮤직의 득세로 록, 포크, 인디, 트로트 등 여타 음악은 암중모색을 거듭했고 반전을 꾀한 이선희, 이두헌, 임지훈, 이문세 등 386세대 가수들이 낸 음반도 관심을 끌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음악평론가 임진모(www.izm.co.kr)
많이 본 뉴스
-
1
단독서울시, 애플페이 해외카드 연동 무산…외국인, 애플페이 교통 이용 못한다
-
2
세계 1위 자동화 한국, 휴머노이드 로봇 넘어 '다음 로봇' 전략을 찾다
-
3
국산이 장악한 무선청소기, 로봇청소기보다 2배 더 팔렸다
-
4
삼성 파운드리 “올해 4분기에 흑자전환”
-
5
CDPR, '사이버펑크: 엣지러너' 무신사 컬래버 드롭 25일 출시
-
6
4대 금융그룹, 12조 규모 긴급 수혈·상시 모니터링
-
7
하루 35억달러 돌파…수출 13개월 연속 흑자 행진
-
8
[미국·이스라엘, 이란 타격]트럼프, '끝까지 간다'…미군 사망에 “반드시 대가 치를 것”
-
9
2조1000억 2차 'GPU 대전' 막 오른다…이달 주관사 선정 돌입
-
10
삼성전자 반도체 인재 확보 시즌 돌입…KAIST 장학금 투입 확대
브랜드 뉴스룸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