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칼럼>남·북 과학기술네트워크

 ◆한선화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해외정보사업실장 shhahn@kisti.re.kr

 

 독일의 통일 과정은 동서독 양국간의 꾸준한 교류를 바탕으로 이뤄졌다. 72년 12월 동서독 기본조약이 체결된 이후 89년 11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질 때까지 22년간 동서독은 꾸준히 교류의 양과 질을 확장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일 이후 동서독 간의 사회·경제적 격차가 극심하여 독일은 혹독한 통일 비용을 치르지 않으면 안되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독일과는 달리 상대방을 적국으로 간주하며 전쟁을 치른 경험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과거는 남북간의 원활한 교류에 장애로 남아 있다.

 이러한 현실 아래에서 남과 북의 교류는 가장 비이념적인 분야에 한정돼 진행될 수밖에 없다. 비정치적 교류를 통해 서로 교감의 폭을 넓히고 상처를 치유해 가면서 통일을 대비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과학기술 분야는 타분야에 비해 비교적 이념과 정치성이 배제되어 있는 분야다. 또 국제 교류와 공동 연구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으며 동일한 연구 주제에 대해서는 국경이 없이 접근할 수 있다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과학기술의 발전은 경제 발전과 직결되기 때문에 장기적으로는 남북간 경제격차 해소에도 도움이 된다.

 남북간의 원활한 과학기술 교류를 위해서는 우선 상대방에 대하여 잘 알아야 한다. 특히 북한처럼 국제적 학술 활동이 거의 없는 경우 현재의 과학기술 수준, 관심 분야, 활동중인 학자 등을 파악하는 일은 쉽지 않다. 또 국제사회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하지 않는 한 관련 정보수집은 주로 북한에서 발간되는 각종 학술지와 관련 잡지, 그리고 신문 등의 언론 매체를 통하여 분석할 수밖에 없다.

 이를 위해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에서는 과학기술관련 정보를 집대성하기 위한 ‘북한과학기술네트워크(http://www.nktech.net)’를 구축하고 있으며 내년 1월중 일반에 공개할 예정이다. 북한의 과학기술정보를 종합적으로 파악할 수 있게 되면 이를 기반으로 과학기술의 구체적인 현주소를 파악할 수 있다. 또한 남북 상호협력의 접근점과 협력 분야를 발굴하는데 기여할 수 있다. 북한의 과학기술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상대적으로 투자 효율이 높은 방향으로 남북 협력을 강화하게 되면 정해진 자원으로 더욱 우수한 협력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남북은 오랜 분단의 역사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단일 언어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 사용하는 언어는 남북간에 상당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특히 광복 이후 급속도로 발전한 과학기술 분야에 있어서 차이는 매우 심각하다. 남한의 경우 구미의 용어를 채택한 반면 북한의 경우에는 소련의 과학기술 용어를 대부분 채택하였기 때문이다. 또한 북한은 주체사업의 일환으로 추진한 언어순화운동에 따라 많은 외래어를 고유어로 대체하였으며 이 과정에서 용어의 이질화는 더욱 확대되었다. 따라서 과학기술 교류와 병행하여 남북간 용어에 대한 연구와 표준안 설정이 필요하다. 현재 구축중인 북한과학기술 네트워크에서는 남북의 물리 및 화학 분야 용어를 단순 비교할 수 있는 시범적인 사전 검색 기능이 들어 있다. 이 기능은 향후 전 분야로 확대될 예정이다.

 남북 과학기술 협력은 초창기의 단순한 기술 지원 형태에서 벗어나 남북 공동연구를 통한 인적 교류 단계, 기술과 자원이 결합된 산업화 과정을 거쳐 남북 단일 경제권의 기틀을 마련하게 될 것이다. 이는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통일의 전단계로 다양한 분야에서의 남북교류 활성화에 기여하게 되리라 믿는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 그 첫 단추를 조심스레 채우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북한에서 발행한 각종 기술 자료를 인터넷을 통해 검색하고 열람할 수 있는 것처럼 북한의 과학기술자들도 우리의 과학기술 자료를 ‘창광’망을 통하여 자유로이 검색하고 같은 분야의 학자들끼리 e메일을 통해 토론하게 될 때 우리의 통일은 이미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오고 있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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