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어떻게 한 해를 버티지?’
많은 경영인들이 새해를 맞을 때마다 계획 설정을 두고 고심하지만 올해는 정도가 더욱 심한 것 같다. 안팎으로 경제악재가 쌓인 가운데 새해 매출성장을 뱃심좋게 100%, 200%씩 더 올리겠다고 장담하는 CEO는 찾기 힘들다.
대규모 신규투자에 선뜻 나서는 기업은 더욱 찾기 힘들고 그저 경기가 좋아질 때까지 리스크를 최소화하면서 ‘버티기’ 전략으로 나서는 회사가 대부분인 듯하다.
생존이 기업경영의 화두로 떠오른 시대. 환경변화에 따른 빠른 변신은 기업의 지속적인 유지, 성장에 필수적인 요소다. 여기서 변신이란 전가의 보도처럼 직원, 조직을 줄이는 구조조정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새로운 IT기술을 적극 수용해 기존 사업의 생산성을 최대화시키고 전통적인 기업활동을 새로운 시각에서 다시 규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한때는 IT기술이 기존 경제체제의 판도를 송두리째 뒤집어놓는 요술단지로 간주하는 시각도 있었으나 한바탕 IT 거품이 사라진 이후, 전통적인 경제활동을 강화시키는 도구로써 IT기술을 바라보는 시각이 주류로 대두되기 시작했다.
특히 생산·제조분야에서 IT기술과 결합은 e매뉴팩처링이란 새로운 흐름을 낳았다.
이것은 ‘내 물건은 내가 만든다’는 전통적인 제조업 생산양식이 한계에 접어들면서 스피드 경영을 위해 국내 전자업체들도 제조 부문의 슬림화를 적극 추진하고 정교한 통신네트워크를 통해 산하 협력업체와 마치 하나의 공장처럼 움직이는 단계에 진입한 것이다.
후발업체라도 제조기술을 통째로 구입하거나 관련 인력을 스카우트해 짧은 시간내 기존업체를 따라잡을 수 있게 됐는데 이는 제조기술이 향상되고 보편화되면서 물건만들기가 경쟁력을 보장해주는 시대가 지났음을 의미한다.
이는 대기업이 주도하는 부품조달(SCM)분야의 개혁을 통해 가장 먼저 활성화되고 있는데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본격적인 e매뉴팩처링에 근접해가는 사례가 구체화되고 있다.
이같은 변화는 해당기업 운영에 직접적인 비용과 시간을 절감하는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오고 있으나 국내산업계에 보편화되려면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우선 상당수 기업 내에는 IT기술과 접목이 가져올 환경변화를 두려워하는 직원들이 많은 상황이다. 고용시장이 위축된 현실에서 기업의 효율성 향상에 따른 해고위험의 증대를 반기는 직원은 아무도 없으며 이는 기업변혁을 저해하는 내부의 벽이 되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최근 IT업계의 화두로 떠오른 EMS(Electronic Manufacturing Service)의 도입을 두고 더욱 두드러진다.
대부분의 국내 제조업체와 정부, 민간연구소의 관계자들은 첨단 IT관련 제조업분야에서 미국의 경쟁력을 되살린 EMS에 대해 한국도 적극적인 관심을 가져야할 시기라는데 동의한다.
그러나 아직 국내 어느 대기업도 생산부문을 외부에 아웃소싱하는 EMS를 도입할 경우 자체 생산조직의 엄청난 반발을 의식해 EMS에 대한 논의자체를 꺼내는데 매우 조심스런 모습을 보이고 있다. 물론 세계적인 브랜드파워, 원천기술도 변변치 못한 국내기업이 생산부문까지 외부업체에 내주면 도대체 어디서 수익을 얻느냐는 반론도 설득력을 갖고 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기업활동을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보고 변화를 시도할 상상력을 스스로 제약하는 것은 급변하는 경영환경에서 매우 위험하다는 것이다.
경쟁업체끼리도 필요하다면 상호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을 해주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것이다.
삼성전자가 LG전자의 가전제품을 대신 만들어주고 이에 합당한 대가를 받는 것도 불필요한 개발비를 줄이고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이미 중국경제권의 대두로 인한 산업공동화현상은 한국경제의 최대 위협으로 떠오른 상황에서 고통스러운 변화의 물결에 스스로 몸을 맡기지 않는 기업에 올해는 매우 어려운 시기가 될 것이다.
<배일한기자 bailh@etnews.co.kr>
◆`e비즈 대상` 삼성SDI 경영혁신 성과
지난해 말 ‘e비즈니스 대상’을 수상하면서 전통산업의 e트랜스포메이션 가능성을 제시한 삼성SDI(대표 김순택 http://www.samsungsdi.com)의 e비즈니스 토대는 관련 개념조차 생소하던 지난 95년 마련됐다.
호황을 누리던 브라운관 시장이 공급과잉이라는 악재를 만나면서 삼성SDI는 살아남기 위해 품질·원가·납기·서비스의 종합경쟁력 강화를 위한 경영혁신(Process Innovation)과 이를 지원하는 새로운 정보시스템 구축을 시작한 것이다.
삼성SDI는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제품을 적시적소에 값싸게 공급할 수 있는 글로벌 경영체제(세계화) △제품 생산에 관한 의사결정을 어디에서나 할 수 있는 체제(복합화) △경영정보를 어디서나 실시간으로 확보해 활용하는 실시간경영체제(정보화) 확립이라는 목표를 세웠다.
물류 프로세스 부문에서는 ‘16주 연동 주간계획체제’를 도입해 월 단위 생산계획을 주간단위 생산계획으로 변경시킨 결과, 수주·출하 시간을 4분의 1로 단축시켰으며 ‘생산좌석제’를 도입해 고객으로부터 들어온 문의에 즉각 응답하는 시스템을 갖췄다.
제품개발에 있어서도 EPI(Engineering Process Innovation) 활동을 추진, 상품기획에서 양산단계에 이르는 설계단계를 병행처리해 기존에 22개월 걸리던 신기종 개발 기간을 8개월로 단축시키고 50%밖에 안 되던 초기수율도 90% 이상으로 개선시켰다.
이러한 PI 활동을 기반으로 삼성SDI는 본격적으로 ‘ERP를 기반으로 한 인터넷 비즈니스 체제 구축’에 들어갔다. 삼성SDI는 ‘e세상에서의 가치 창조자’라는 e비즈니스 비전을 수립하고 경영관리의 전략정보화(SEM), 고객지향형 정보서비스 차별화(CRM), 공급망관리로 자원흐름 최적화(SCM), 인터넷기반의 정보인프라 확충 등 네가지 전략을 세웠다.
지난해부터 삼성SDI는 경영효율화와 대외 경쟁력 강화를 위한 ‘e비즈니스 성과 가시화’라는 목표하에 관련 시스템 구축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삼성SDI는 인터넷 기술의 발전이 폭발적인 변화를 일으키고 있는 21세기 기업환경에서 디지털 경영은 선택이 아닌 필수적 기반이라는 판단하에 일시적인 프로젝트로서의 e비즈니스 체제 구축에서 벗어나 경영전략과의 연계하에 시스템을 지속적으로 개선해 나갈 계획이다.
<정진영기자 jychung@etnews.co.kr>
◆"FA기기 유통분야 굴뚝 이미지 벗는다"
지난해 말부터 전통산업의 대명사라 할 수 있는 공장자동화(FA) 기기의 유통에도 e비즈니스 도입이 필수로 대두되고 있다.
제조업체 생산라인에 들어가는 기계부품, 자동화기기 등은 납품만 하면 끝나는 소모성자재(MRO)와 달리 고도의 기술지식이 필요하기 때문에 전문대리점과 제조업체가 사안별로 직거래하는 것이 관행이었다.
그러나 날로 치열해지는 시장상황에서 가격경쟁력을 확보하려는 대기업들이 온라인상의 B2B 전문 계열사를 활용해 FA기기의 일괄납품을 추진하면서 일부 업체는 품목별로 최고 30%까지 납품 단가를 낮추는 등 성과를 거뒀다.
삼성SDS에서 분사한 밸류비(대표 박경원 http://www.cadnpart.com)는 삼성전기에 납품되는 모터·진공펌프 등 FA부품 유통 수요의 절반 이상을 장악하고 있으며 180여 국내외 FA업체와 직접 공급계약을 맺고 삼성전자, 삼성테크윈 등에 부품을 공급하고 있다.
밸류비는 자체 FA기술인력을 대폭 보강하고 반도체, LCD장비 업계를 겨냥한 엔지니어링 서비스도 함께 제공하는 등 FA기기 B2B사업의 영역을 확대해 올해 450억원의 매출을 올린다는 목표다.
LG유통(대표 강말길)도 기존 MRO사업이 본궤도에 오른 데 이어 고객기업들에 모터, 센서, PLC 등 FA부품까지 함께 판매해 지난해 100억원대의 기계부품 B2B 거래를 성사시켰으며 LG산전·LG전자 등 계열사에 대한 영업을 강화할 계획이다.
대기업 계열 B2B 업체들의 성공과 함께 2년 안에 B2B기반 FA기기 유통시장이 1200억 규모를 거뜬히 넘어설 것이라는 전망이 나와 파텍21(대표 김재하 http://www.partec21.com)과 메카트로넷(대표 김현명 http://www.mechatro.net) 등도 올 해 본격적인 사업계획을 세우고 있다.
FA기기 유통의 B2B화에서 볼 수 있듯 앞으로는 온라인기업과 오프라인 기업, IT산업과 제조업, 중소기업과 대기업에 관계없이 모든 분야에서 e비즈니스 활용이 두드러질 전망이다.
<정진영기자 jychung@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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