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세계 정보기술(IT) 산업의 고성장을 실질적으로 이끈 PC와 휴대폰 두 축이 지난해 말 맥없이 주저앉기 시작했다. 수요가 포화 상태에 달했는데도 고성장에만 길들여져온 업체들이 생산을 조절하지 않아 제품이 과다하게 넘치면서 시장 질서가 뒤틀렸기 때문이다. 그 여파는 반도체·LCD 등 부품을 거쳐 전자·정보통신 산업계 전반으로 빠르게 번져갔다. 그리고 지난 1년 동안 산업계에서는 대량 감원에 대대적인 사업 정리까지 구조조정 바람이 거세게 휘몰아쳤다.
2001년의 구조조정은 사상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극심했다. IT 불황의 시발점이 된 PC와 휴대폰에서 반도체를 비롯한 전자부품과 인터넷 분야에 이르기까지 IT 관련 산업 전반에 걸쳐 대대적으로 진행될 뿐 아니라 기업의 사업 골격은 물론 시장 전체 구도까지 뒤흔드는 변화들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구조조정에서 최대 초점은 역시 IT 불황의 근거가 된 생산 과잉의 처리 문제다. 수요가 위축되는 시장 환경에 맞게 생산을 줄이는 동시에 불필요해진 생산 인력을 잘라내는 감량이 불가피한 것이다. 또한 우선 당장의 비용 절감을 겨냥해 간접 부문과 그 인력의 정리 작업도 병행될 수밖에 없었다.
이와 함께 예전에 수익원이었다 해도 전망이 불투명한 사업 부문은 깨끗이 찍어내는 과감한 사업 조정도 대대적으로 추진됐다. 물론 이런 가운데도 유망 분야에 대해서는 오히려 투자를 늘리고, 시장점유율 확대를 위해 공급을 늘리거나 저가 공세를 펼치는 적극적인 움직임도 나타났다.
컴퓨터업계에서는 PC업체를 중심으로 감산과 감원의 구조조정이 극심했다. 이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컴팩컴퓨터·델컴퓨터·HP·게이트웨이·IBM 등 메이저들이 모두 생산을 억제하고 전체적으로 직원의 약 10%를 줄였다. 게이트웨이의 경우는 아시아와 유럽 시장에서 철수, 미국에만 주력하는 방향으로 사업을 정리키로 했다. 델은 오히려 시장 침체를 기회로 삼아 저가 전략을 펼쳐 컴팩을 제치고 세계 선두 자리를 차지했다. 컴팩과 HP는 PC 등 컴퓨터 시장의 저가화 추세에 대응해 규모의 경제를 통한 시장 장악을 위해 합병이라는 극단의 조치를 결정했다. 다른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중국에서도 최대 업체인 레전드홀딩스가 비용 절감을 위해 사무직의 약 10%(약 500명)를 해고하는 조치를 취했다.
반도체를 비롯한 전자부품 분야의 구조조정은 주로 일본업체들에서 이뤄졌다. NEC·도시바·후지쯔·미쓰비시전기·히타치제작소 등 5대 반도체 업체들은 모두 메모리 생산 비중을 대폭 줄이고 사업력을 고부가 제품인 시스템LSI에 집중하는 결정을 내렸다. 이들 5대 업체의 감원 규모는 반도체 부문만으로 수만명에 달한다. 이중 NEC는 아예 D램 사업에서 철수키로 하고, 해외를 시작으로 이미 생산 부문의 정리에 들어갔다. 또 TDK·교세라·무라타제작소 등 일반 전자부품 대형 업체들도 가동률을 생산능력의 50% 정도로 떨어트려 대규모 감산을 벌이는 동시에 합계 1만명이 넘는 직원을 해고하고 있다.
휴대폰 등의 통신기기 분야 역시 감원과 생산 조정이 두드러졌다. 특히 새 수요를 일으킬 것으로 기대해 온 제3세대(3G) 이동통신 서비스의 상용화가 지연되면서 관련 업체들의 구조조정은 더욱 심화됐다. 아시아에 비해 유럽과 미국의 구조조정이 심했는데, 휴대폰 부문에서만 독일 지멘스는 2000명을, 모토로라는 7000명 정도의 감원을 결정했다. 스웨덴 에릭슨은 전세계에서 전 직원의 10% 정도를 해고하며, 핀란드 노키아도 소규모지만 감원에 나섰다. 특히 에릭슨의 휴대폰 단말기 사업을 떼내 일본 소니와 합작사를 설립했다. 네트워크장비 업체인 미국 시스코시스템스와 캐나다 노던텔레콤 등도 통신사업자를 비롯한 기업들의 설비투자 격감으로 합계로 수만명에 달하는 사원을 해고키로 하는 등 긴축 경영을 벌이고 있다.
한편 소프트웨어와 서비스 분야에서도 구조조정이 활발하다. 특히 올 봄 거품 붕괴와 함께 몰락의 길로 들어선 인터넷 분야에서는 기업들의 파산이 잇따르면서 산업 자체의 구조조정 국면을 맞이했다.
<신기성기자 ksshin@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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