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불평등
허버트 실러 지음/민음사 펴냄
‘21세기 정보시대’로 시작하는 화두가 이제 식상할 정도로 정보화는 빠르고 복잡하게 진행되고 있다.
전사적자원관리(ERP)·고객관계관리(CRM)를 언급하면 모르겠지만 ‘정보화’라고 통칭하기에는 그 범위와 층위가 세분화됐다. 현대사회의 양상과 비교할 수는 없지만 구텐베르크 이후 사람들은 정보를 사고 팔았다. 굳이 현세기를 정보시대라고 부르는 이유는 이것이 하나로 묶여서 보관·관리·유통된다는 의미다.
여기에 한 가지 더한다면 정보의 대중화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평등한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는 믿음이 보태져 있다. 아무리 촉각을 곤두세운다 해도 미디어·개인용 휴대통신·사이버공간 네트워크에서 하루가 다르게 뿜어내는 정보의 양이나 속도를 따라잡는 일은 쉽지 않다.
‘정보 다이어트’라는 말이 결코 쉬운 말은 아니다. 바야흐로 정보의 옥석을 가려내는 일이 문제인 것이다.
그렇다면 매일 아침 내 손끝까지 도달하는 그 많은 정보는 과연 누구에 의해서 어떻게 만들어지고 있는 것일까. 앨빈 토플러의 공언대로 정보시대는 애초 약속한 행복한 삶을 제공하고 있는 것일까.
미국의 미디어 비평가이자 정치경제학자인 허버트 실러의 ‘정보불평등’은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을 풀어가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책 제목에서 느낄 수 있듯이 현대는 정보의 불평등이 심화된 사회라는 것이다. 이전 세기 부의 불평등이 가져온 문제만큼이나 정보불평등의 문제가 사회적 모순의 주요 원인이라는 지적이다. 이 정도면 정보시대가 정보에 평등하게 접근할 것이라는 견고한 믿음이 무너지는 것이다. 감당할 수 없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그것의 불평등과 결핍이 심화되고 있다는 주장은 언뜻 설득력이 떨어지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 문답에 귀를 기울여 보면 굳이 대도시 도서관이나 박물관에 가지 않고도 어디서나 미술·문학·과학 분야의 보고(寶庫)를 구해볼 수 있다면 물론 좋은 일이다. 그러나 만약 대부분의 사회적 환경이 공허한 오락, 불쾌하기 짝이 없는 선정주의로만 가득 차 있다면 이와 같은 보물들을 어떻게 찾을 수 있겠는가.
이 책에서 가장 우려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이 지적이다. 기존 정보사회에 대한 비판서들이 정보의 수용과 접근만을 문제로 삼았다면 이 책은 정보의 생산과 분배, 소비 메커니즘에 대한 총체적인 분석과 비판을 수행하고 있다. 보이지 않는 길들이기 기능과 공공이익을 위해 이용돼야 할 정보의 결핍이 새로운 사회적 긴장과 불평등을 가중시킨다는 것이다.
특히 정보 생산 과정의 문제가 치유되지 않는다면 전세계 모든 인구는 독점적인 정보의 일방적인 수용자가 된다. 알려져야 할 정보가 제때 알려지지 않거나 잘못 알려짐으로써 개인이나 사회에 돌이킬 수 없는 영향을 미친 예를 찾는 일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유명 담배회사가 흡연과 암 발생의 관계에 관한 자료를 수년 동안 공개하지 않아 결과적으로 한 세대의 건강이 정보 독점에 의해 희생당한 것이 아니냐는 논쟁이나 가깝게는 ‘수지 김’ 사건의 왜곡 보도가 개인의 삶에 가져온 파장을 생각해봐도 좋을 듯싶다.
중요한 것은 누가 정보 고속도로를 건설하고 어디에 건설할지, 그 도로에 누구를 들여보내고 도로를 이용하는 데는 어떤 조건을 요구할지를 결정하는 일이다.
미래에 대한 시각은 낙관론과 비관론이 맞서게 마련이다. 아직 경험해보지 못한 시간이기 때문에 그 상상력의 진폭이 장밋빛 환상과 잿빛 먹구름 사이를 오가는 것은 당연한 일처럼 보인다. 더욱이 인류사에 유례가 없는 속도로 등장한 정보화와 첨단기술이 가져올 미래상에 대한 예측으로 전망하기는 더 어렵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우리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되돌아볼 필요를 느낀다면 그 성찰을 통해 좀더 나은 미래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눈과 귀를 지배하고 있는 정보에 대한 비판적인 독해는 이제 아무도 피해 갈 수 없는 과제일 것이다.
<정진욱 모닝365 사장 ceochung@morning365.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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